영어가 더럽히는 우리 삶 (43) 프린트(print)

[우리 말에 마음쓰기 385] ‘노트(note)’, ‘버전(version)’ 손질하기

등록 2008.07.27 12:09수정 2008.07.2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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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버전(version)

 

.. 해마다 같은 기능의 제품이라도 새로운 버전으로 선을 보여야만 한다 ..  《레기네 슈나이더/조원규 옮김-소박한 삶》(여성신문사,2002) 55쪽

 

 ‘매년(每年)’이 아닌 ‘해마다’를 써서 반갑습니다만, “같은 기능의 제품이라도”라 쓴 대목은 아쉽군요. “기능이 같은 제품이라도”로 쓰면 될 텐데요.

 

 ┌ 버전(version)

 │  (1) 어떤 소프트웨어가 몇 번 개정되었는지를 나타내는 번호. 보통 소프트

 │      웨어가 처음 출시될 때 버전이 1.0이고, 추후 기존의 기능이 보완되거

 │      나 새로운 기능이 추가될 때 버전을 올린다. ‘판’으로 순화

 │  (2) 한 소프트웨어를 서로 다른 시스템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각각

 │      제작된 프로그램을 이르는 말

 │

 ├ 새로운 버전으로

 │→ 새로운 판으로

 │→ 새로운 모습으로

 │→ 새롭게 꾸며서

 │→ 새롭게 고쳐서

 └ …

 

 우리는 ‘판’이라고 쓰면 됩니다. 미국말을 쓰는 사람들은 ‘버전’이라고 쓰면 되고요. 미국말 쓰는 사람한테 ‘판’을 쓰라 할 수 없으며, 이런 말을 쓰라고 해도 안 되겠지요. 우리는 우리한테 가장 알맞는 우리 말을 쓰면 될 뿐입니다. 구태여 ‘버전’ 같은 말까지 받아들일 까닭이 없어요. 그렇지만 국어사전에도 ‘버전’이란 말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래, 이런 국어사전 얼개도 확 뜯어고치고, 우리 말 풀이라든지 씀씀이도 좀더 가다듬어야 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보기글에서는 “새로운 모습으로”로 다듬을 수 있는데, “새롭게 꾸며서”나 “새롭게 고쳐서”로 적어 보아도 괜찮습니다.

 

 

ㄴ. 노트(note)

 

.. 수호지를 가져다 놓고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을 전부 노트에 써 보기도 하였다 ..  《강은교-그물 사이로》(지식산업사,1975) 216쪽

 

 “인물(人物)들의 이름”은 “사람들 이름”으로 다듬습니다. ‘전부(全部)’는 ‘모두’로 고쳐씁니다.

 

 ┌ 노트(note)

 │  (1) = 공책(空冊)

 │   - 강의 노트 / 노트에 기록하다

 │  (2) 어떤 내용을 기억해 두기 위하여 적음

 │   - 그때그때 노트를 해 두어야 나중에 참고 자료로 쓸 수 있다

 │  (3) = 음표(音標)

 │

 ├ 이름을 전부 노트에 써 보기도 하였다

 │→ 이름을 모두 공책에 써 보기도 하였다

 │→ 이름을 모두 쪽지에 써 보기도 하였다

 └ …

 

 우리가 쓰는 물건은 ‘공책’입니다. 이 ‘공책’은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몰라도 아무 탈이 없습니다. 초등학생도 쓰고 대학생도 쓰며, 어른도 쓰고 아이도 씁니다. 문방구건 큼직한 가게이건 공책을 팔 뿐이지, 노트를 팔지 않습니다.

 

 ┌ 강의 노트 → 강의 공책

 ├ 노트에 기록하다 → 공책에 적다

 └ 노트를 해 두어야 → 적어 놓아야 / 적바림해 놓아야

 

 요즘 흐름을 보면, 초등학교만 마치면 ‘공책’이라는 말을 잘 안 쓰고, 거의 ‘노트’만 씁니다. 고등학교에서도 ‘노트 필기’를 하라고 말하지 ‘공책에 적으라’고는 말하지 않아요. 대학생들은 ‘강의 노트’라 하지 ‘강의 공책’이라 안 합니다. 회사원이나 공무원도 ‘노트해 두시오’라 할 뿐, 또는 ‘메모(memo)해 두시오’라 할 뿐, ‘적으시오’라 말하지 않습니다.

 

 

ㄷ. 프린트(print)

 

.. 어린이가 쓴 글일 경우엔 바른 것과 틀린 것을 모두 프린트해 둘 필요가 있읍니다 ..  《고니시 겐지로오/서혜영 옮김-학급혁명》(사계절,1988) 43쪽

 

 “어린이가 쓴 글일 경우(境遇)엔”은 “어린이가 쓴 글은”으로 손봅니다. “(무엇)해 둘 필요(必要)가 있습니다”는 “(무엇)해 둡니다”나 “(무엇)합니다”로 손질합니다.

 

 ┌ 프린트(print)

 │  (1) 인쇄하거나 등사하는 일. 또는 그런 인쇄물이나 등사물

 │   - 간단한 문제를 프린트로 찍어서 한 장씩 돌렸다 /

 │     우리 국어 문법에 관한 프린트를 얻어 보게 되었다

 │  (2) 날염기나 지형(紙型)으로 천에 무늬를 찍는 일

 │   - 꽃무늬 프린트 스카프

 │  (3) 영화나 사진에서, 음화에서 양화를 박아 내는 일. 또는 그런 필름

 │

 ├ 프린트해 둘 필요가 있읍니다

 │→ 찍어 두어야 합니다

 │→ 마련해 두면 좋습니다

 │→ 만들어 놓습니다

 │→ 뽑아 둡니다

 └ …

 

 ‘인쇄기’라는 말이 있으나 ‘프린터’를 훨씬 많이 쓰는 우리들입니다. 퍽 자주 겪는 일인데, 사람들을 만나서 “저는 인쇄기가 없어서 못 뽑아요.” 하고 말하면 못 알아듣는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프린터가 없다고요.” 하면 그제야 “아, 네.” 하면서 알아듣습니다. 전자제품 파는 가게에 가서 “인쇄기 보러 왔어요.” 하면 멀뚱멀뚱 쳐다보기도 합니다. ‘프린터’나 ‘프린터기’라고 말해야 비로소 알아듣습니다. ‘찍는 기계’나 ‘뽑는 기계’라고 하면 아무도 못 알아듣지 않을까 싶습니다.

 

 ┌ 간단한 문제를 프린트로 찍어서 → 쉬운 문제를 종이에 찍어서

 ├ 국어 문법에 관한 프린트 → 우리 말법을 다룬 자료

 └ 꽃무늬 프린트 스카프 → 꽃무늬 박힌 목도리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어릴 적에도 ‘프린트’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는 거의 날마다 이 말을 썼지 싶어요. 우리들한테 입시공부를 시키는 교사들은 허구헌날 ‘프린트’를 뽑아서 나누어 주었고 시험을 치렀습니다. 우리들도 ‘프린트(물) 있니?’ 하면서 동무 것을 빌리곤 했어요.

 

 택시, 모델, 컴퓨터, 인터넷처럼 어쩔 수 없이 써야만 하는 ‘프린트’일까요. 쓸 까닭이 없는데 어느새 또아리를 틀고 우리 말과 삶을 잡아먹는 ‘프린트’일까요. 우리는 이 서양말 ‘프린트’가 없으면 우리 생각과 뜻을 나타내지 못하거나 일도 제대로 못하고 말까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7.27 12:09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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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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