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79)

― ‘대망의 날’ 다듬기

등록 2008.07.27 17:16수정 2008.07.2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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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바로 그 대망의 날이 왔다. 한 시간 반을 달린 후, 우리는 숲속에 도착했다 ..  《마르잔 사트라피/최주현 옮김-페르세폴리스 (2)》(새만화책,2008) 60쪽

 

 “달린 후(後)”는 “달린 다음”으로 다듬고, ‘도착(到着)했다’는 ‘닿았다’로 다듬어 줍니다.

 

 ┌ 그 대망의 날이 왔다

 │

 │→ 그 기다리던 날이 왔다

 │→ 그 바라던 날이 왔다

 │→ 그 손꼽던 날이 왔다

 │→ 그 꿈으로 부풀던 날이 왔다

 │→ 그 꿈꾸던 날이 왔다

 │→ 그날이 왔다

 └ …

 

말뜻 그대로 적어 보아도 됩니다. 아니, 말뜻 그대로 적으면 됩니다. 우리들은 어릴 적부터 말뜻 그대로 적는 버릇이 들지 않고 있어서, 말이며 글이며 자꾸만 뒤틀리거나 엉망이 됩니다.

 

나타내려는 뜻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고, 들려주고픈 생각을 꾸밈없이 들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말하는 이 스스로도 제 마음을 스스럼없이 털어놓을 수 있고, 듣는 이 또한 어려움없이 받아들이거나 헤아릴 수 있습니다.

 

말뜻 그대로 적지 않고, 껍데기를 씌우거나 겉치레 가득한 말을 쓰게 되면, 말벽이나 말울타리가 생깁니다. 이와 같은 말벽이나 말울타리는 머리속에 지식을 많이 넣는 분들이 으레 세우는데, 우리 삶터를 아름답게 가꾸는 데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서로서로 금을 긋고 자리를 나누어 버리기까지 합니다.

 

 ┌ 待望하다 (x)

 └ 기다리고 바람 (o)

 

‘대망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아직 못 보았습니다. 그러나 “대망의 무엇”이라고 쓰는 분은 곧잘 봅니다. ‘대망하다’라 한다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한글로 적으면 그렇습니다. 한글로 적어서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어려울 때에는 우리 말이 아니기도 하지만, “크게 무너진다”는 소리인지 “크게 바란다”는 소리인지 “기다리고 바란다”는 소리인지 가려낼 수 없는 ‘대망하다’입니다.

 

그런데, “대망의 무엇”이라고 말하는 분들 스스로도 ‘대망’이 무엇을 가리키는 줄 제대로 알고 있으려나요. 제대로 말뜻을 알면서 쓰고 있으려나요. 곰곰이 살피면, ‘대망’만 제대로 모르며 아무 자리에나 멋대로 쓰고 있는 우리들은 아닙니다. 다른 낱말도 제뜻을 올바르게 살피지 않습니다. 여느 낱말도 말뜻을 찬찬히 곱씹지 않습니다. 그냥저냥 씁니다. 대충대충 말합니다.

 

 ┌ 기다리던 일

 ├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

 ├ 바라던 일

 ├ 바라디바라던 일

 ├ 기다리고 바라던 일

 ├ 바라고 기다리던 일

 └ …

 

우리는 한국사람입니다. 한국땅에서 한국사람과 어울립니다. 이런 우리들이 쓰는 말은 한국말입니다. 우리들은 어릴 적부터 한국이 어떤 나라이고 한겨레는 어떤 사람들이며 한국말은 어떤 말인가를 제대로 익혀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교육 얼거리는 땅과 사람과 얼과 문화와 삶터와 발자취에다가 말까지, 어느 하나 올바르게 살피도록 이끌지 못하거나 않습니다. 오로지 ‘시험점수 잘따기’에 치달으며 ‘더 잘난 대학교 집어넣기’에 매달립니다.

 

한국말과 한자가 어떤 사이인지 찬찬히 나누어 살피는 이가 퍽 드뭅니다. 미국말을 배우면서도 왜 배우는지를 깨닫는 이가 꽤 적습니다. 알맞춤하게 쓰는 말이란 무엇이며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짜임새있게 배우는 한편, 정부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왜 말썽이 되어서 출판사마다 다 다른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쓰는지를 가르쳐 줄 수 있는 교사가 손가락에 꼽을 만큼 아주 모자랍니다. 더구나, 교사 스스로 말과 글을 깊이있게 배우거나 되새기면서 아이들 앞에 서지 않습니다. 국어 교사조차도 그러하지만 수학과 영어와 국사와 도덕 교사들 또한 말과 글을 제대로 배우지 않습니다. 체육 교사라 해서 말 한 마디 안 하고 가르칠 수 있습니까? 아니지요? 체육 교사이든 영어 교사이든, 가정 교사이든 외국어 교사이든, 한국땅 한국 학교에서 한국 아이들을 가르치는 몫을 맡았다면 한국사람이 쓸 말과 글이란 무엇인지 깊이깊이 살피고 익혀서 올바른 말씀씀이로 자기 전문 지식을 아이들한테 건네주어야 합니다.

 

 ┌ 몹시 바라던 일

 ├ 애타게 기다리던 일

 ├ 잠 못 이루며 기다리던 일

 ├ 오래도록 꿈꾸던 일

 └ …

 

교사만 탓하고 싶지 않습니다. 교사에 앞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들이 훨씬 크게 골칫덩어리입니다. 어버이 스스로 아이들 앞에서 말다운 말을 쓰고 있는지 돌아보지 못하니 골칫거리입니다. 어버이 스스로 삶다운 삶을 가꾸어야 아이들 또한 삶다운 삶을 배웁니다. 어버이 스스로 돈바라기 삶을 꾸리고 있는데, 아이들이 돈바라기 삶에서 벗어나기 쉽겠습니까. 어버이 스스로 지저분하고 엉망진창인 말을 쓰는데 아이들이 깨끗하고 훌륭한 말을 배우겠습니까. 어버이 스스로 힘없는 이 위에 올라서며 괴롭히고 힘센 이 앞에서 알랑방귀를 뀌는데, 아이들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려 하겠습니까. 잘못된 제도는 바로잡고, 엉뚱한 길을 걷는 정치꾼을 나무랄 뿐 아니라 쫓아낼 줄 알며, 착한 이웃을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마음을 펼치는 어버이가 되어야 아이들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한테 좋은 모습을 보고 배우면서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이러는 가운데 아이들이 어버이한테 배우는 말도 한결 넉넉할 수 있고 애틋할 수 있으며 튼튼하게 자리를 잡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7.27 17:16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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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우리말 #우리 말 #-의 #대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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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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