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한자말 털기 (41) 존재 6

[우리 말에 마음쓰기 386] ‘아들의 존재 이유’, ‘새는 우아한 존재’ 다듬기

등록 2008.07.28 10:47수정 2008.07.2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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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아들의 존재 이유, 아이의 존재

 

.. 바로 그 점을 확인해 본다면 거기에서 아들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 내 자신에 대해 관심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는 점에서 아이의 존재는 내게 확실히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  《기류 유미코/송태욱 옮김-나는 아들에게서 세상을 배웠다》(샨티,2005) 16쪽

 

 “그 점(點)을 확인(確認)해 본다면”은 “그 대목을 알아본다면”으로 다듬고, ‘이유(理由)’는 ‘까닭’으로 다듬습니다. “내 자신에 대(對)해”는 “나한테”로 손보고, “관심(關心)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는 점(點)에서”는 “눈길을 거의 안 두다시피 했다는 대목에서”로 손보며, ‘확실(確實)히’는 ‘뚜렷이’나 ‘틀림없이’로 손봅니다. “하나의 전환점(轉換點)이 되었다”는 “큰 고비가 되었다”나 “어떤 징검다리가 되었다”로 손질합니다.

 

 ┌ 아들의 존재 이유를

 │→ 아들이 있는 까닭을

 │→ 아들이 살아가는 까닭을

 │→ 아들이 왜 있는가를

 │→ 아들이 세상에 나온 까닭을

 │→ 아들이 왜 태어났는지를

 │

 ├ 아이의 존재는

 │→ 아이는

 │→ 아이가 있어서

 └ …

 

 우리 나라에서는 일본책을 꽤 많이 옮겨내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 나오는 책 가운데 제법 많은 부피를 일본책이 차지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일본책을 옮기는 일을 하는 사람 가운데 ‘우리 말을 제대로 배운’ 사람은 얼마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한국말로 옮겨진 책에 쓰인 낱말이며 말투며 엉성할 뿐더러 얄궂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번역이란 ‘한국말로 옮기려고 하는 책이 나온 나라에서 쓰는 말’만 잘한다고 해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라밖 말과 문화를 골고루 헤아리는 한편, 나라밖 사회와 사람도 찬찬히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나라밖 사람들이 즐겁게 받아들이는 이야기를 나라안 사람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로 다듬어 낼 수 있을 만큼 ‘우리 말과 글’을 깊이있게 익히고 알아야 합니다.

 

 ┌ 내 자신에 대해 관심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 나라는 사람을 거의 생각하지 않다시피 했다

 │→ 내가 어떤 사람인지 거의 돌아보지 않다시피 했다

 └ …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아주 어린 아이들한테까지도 미국말을 가르칩니다. 그렇지만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우리 말이 어떤 말이며 어떻게 써야 하는 말이며 누구하고 쓰는 말인가를 제대로 가르치는 얼거리나 틀거리는 하나도 없다고 느낍니다. ‘미국말 쓰는 원어민 강사’를 큰돈 들여서 모셔 올 줄은 알면서도, ‘아이들이 날마다 쓰는 우리 말을 올바르고 알맞고 살갑게’ 쓰도록 가르쳐 줄 ‘한국말 교사’는 모실 줄을 모릅니다.

 

 한글을 뗀다고 우리 말을 할 줄 알지 않습니다. 책을 읽을 줄 안다고 우리 말을 제대로 하는 아이가 아닙니다. 참고서와 교과서를 보고 배울 수 있다고 해서 우리 말을 잘하는 아이가 되겠습니까. 미국말을 아무리 잘한들, 그 ‘잘하는 미국말을 한국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옮겨내지 못한다’면 어디에 쓸모가 있는가요. 한국사람 모두가 한국말을 버리고 미국말을 써야겠습니까.

 

 ┌ 내게 확실히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 나한테 크나큰 고비가 되었다

 │→ 내 삶을 흔드는 커다란 일이었다

 │→ 내 삶이 바뀌는 징검다리가 되었다

 └ …

 

 문학을 하든 예술을 하든 번역을 하든 학문을 하든 정치를 하든 경제를 하든 과학을 하든 뭐를 하든, 한국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한국말을 ‘잘’해야 합니다. 미국땅에서 살아가려는 사람은 미국말을 잘해야 합니다. 일본땅에서 살아갈 꿈을 키운다면 일본말을 잘하려고 땀흘리겠지요. 칠레에서 살아갈 꿈을 키우면서 스페인말과 칠레 토박이가 쓰는 말을 할 줄 모른다면 칠레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한국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한국땅에서 창작을 하는 우리들은, 한국땅에서 번역을 하는 우리들은 어떠한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말다운 말로 번역을 하고들 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엉터리 말로 번역을 하고들 있는지 되새겨 보면 고맙겠습니다.

 

 

ㄴ. 새는 아주 우아한 존재

 

.. 새는 아주 우아한 존재이다. 인디언들은 새의 그러한 우아하고 아름다운 동작들을 아주 좋아한다 ..  《루터 스탠딩 베어/배윤진 옮김-숲속의 꼬마 인디언》(갈라파고스,2005) 83쪽

 

 저도 한때는 잘 모르고 ‘우아(優雅)’라는 말을 썼습니다. 나중에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알고 나서는, 다시는 ‘우아’를 쓰지 않습니다. 이제는 ‘아름답다’와 ‘곱다’와 ‘어여쁘다’와 ‘아리땁다’라는 말을 씁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동작(動作)”은 겹치기입니다. “곱고 아름다운 움직임”이나 “아름답디아름다운 몸짓”으로 고쳐 줍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말 이야기를 쓴답’시고 깝죽거리면서도, 낱말 하나하나 제대로 못 살폈던 셈입니다. 늘 옆에 국어사전을 끼고 살지만, 제가 쓰는 모든 낱말을 꼼꼼하게 국어사전에서 뒤적여 보았어야 하는데, 때때로 귀찮다며 번거롭다며 지나치기도 했습니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말이라 해도 거듭거듭 찾아보고 곱씹고 헤아려야 합니다. 잘 모르는 말이나 아리송한 말은 반드시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우리 말 이야기 쓰기’를 할 수도 없지만, 글쓰기를 할 수 없습니다. 말 한 마디와 글 한 줄에 자그마한 빈틈이나 거짓이나 엉터리가 깃들지 않도록 하자면, 머리에 땀나도록 배우고 부딪혀야 합니다.

 

 ┌ 새는 아주 우아한 존재이다

 │

 │→ 새는 아주 아름다운 짐승이다

 │→ 새는 아주 아름답다

 └ …

 

 보기글 뒤쪽은 통째로 고쳐써 볼까 합니다. “인디언들은 그렇게 어여쁘고 아름다운 새를 아주 좋아한다.”  또는 “인디언들은 새가 그렇게 곱고 아름답게 날아다니는 모습을 아주 좋아한다.” 아니면 “인디언들은 새가 그처럼 아름다이 날갯짓을 하며 하늘을 누비는 모습을 아주 좋아한다.”

 

 ┌ 새는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

 ├ 새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 새라는 짐승은 참 아름답다

 ├ 새는 뭇 짐승 가운데 아주 아름답다

 └ …

 

 사람에 따라 새를 좋아할 수 있습니다. 새라는 목숨붙이를 좋아할 수 있습니다. 새라는 날짐승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새이니, “새가 좋다”고 말하고 “새가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한 사내가 한 계집을 좋아한다고 할 때, “그녀는 아주 우아한 존재이다”처럼 말하면서 좋아하는 마음을 나타내기도 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이처럼 말하는 분이 꼭 있을 듯합니다. “그 사람은 아주 아름다워.” 하고 말하기보다는 “그녀는 아주 우아한 존재이다” 하고 말하면서 말멋을 부리거나 말치레를 하려는 분이 틀림없이 있으리라 봅니다.

 

 책을 아끼며 좋아하는 분이라면, “그것은 아주 우아한 존재이다”처럼 말할지 모릅니다. 여행을 즐기는 어느 분은 자기가 다녀온 곳을 가리켜, “그곳은 아주 우아한 존재이다”처럼 말하리라 봅니다.

 

 모두들 꾸밈없이 주고받는 말을 잊고 있어서. 다들 수수하게 오가는 말을 잃고 있어서. 이 땅 누구나 차분하면서 나즈막하게 말씨와 몸씨를 추스르는 마음을 멀리 떠나 보내고 있어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7.28 10:47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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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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