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84) 성적

― '성적 차별', '성적 폭행', '성적인 행위' 다듬기

등록 2008.07.28 19:07수정 2008.07.2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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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성적 차별

 

.. 공허한 거대담론이 아닌 일상과 생활의 진보성을 체득하는 일,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성적 차별의 문제였다 ..  《김규항-B급 좌파》(야간비행,2001) 83쪽

 

“공허(空虛)한 거대담론(巨大談論)”은 “빈껍데기 이야기”나 “텅 빈 외침”이나 “겉만 번지르르한 이야기”로 손봅니다. ‘일상(日常)’이나 ‘생활(生活)’은 같은 소리입니다. ‘삶’으로 고칠 말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뒷말 “진보성을 체득(體得)하는 일”까지 묶어서 “삶에서 진보성을 담아내는 일”이나 “살아가며 진보성을 깨닫는 일”로 고쳐 줍니다. “중요(重要)한 건”은 “중요한 대목은”이나 “큰 대목은”으로 손질하고 “성적 차별의 문제였다”는 “성적 차별 문제였다”로 손질합니다.

 

 ┌ 성적(成績)

 │  (1) 하여 온 일의 결과로 얻은 실적

 │  (2) 학생들이 배운 지식, 기능, 태도 따위를 평가한 결과

 ├ 성적(性的) : 남녀 간의 육체적 관계나 남성, 여성의 육체적 특징과 관련된

 │  - 성적 매력 / 성적 욕구 / 성적 만족 / 성적 차별

 │

 ├ 가장 중요한 건 성적 차별의 문제였다

 │→ 가장 중요한 대목은 성차별이었다

 │→ 가장 중요한 대목은 남녀차별이었다

 └ …

 

설마 싶어서, ‘성차별’과 ‘남녀차별’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봅니다.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성 차별’과 ‘남녀 차별’로 띄어서 써야 한다는 이야기이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푸대접(差別)은 퍽 오래도록 이야기가 되고 말썽이 되는 가운데 ‘성차별-남녀차별’ 한 마디로 굳어졌다고 보아야 올바르지 싶습니다. 정부에서는 ‘남녀차별개선위원회’라는 곳을 두기도 했고,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도 있습니다. 두 자리 모두 ‘남녀차별’이라고 붙여서 씁니다. 인터넷 백과사전에는 ‘성 차별’이라는 낱말이 띄어 쓰인 채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성차별’ 또한 ‘남녀차별’과 마찬가지로 사람들한테는 한 낱말로 느껴질 뿐입니다. 이 두 가지 낱말을 굳이 띄어서 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띄어쓰기에 무디어서 붙여서 쓴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다른 푸대접보다 ‘성차별-남녀차별’은 살갗으로 깊숙하게 파고드는 골칫거리이기 때문이지 싶어요.

 

 ┌ 성차별 / 남녀차별

 └ 남녀 푸대접

 

한 번 더 살펴본다면, 우리 말 ‘푸대접’을 살리고 ‘差別’을 털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바라기는 힘들 듯합니다. “성적 차별” 같은 말이나마 씻어내면서 ‘성차별’이라고만 적을 수 있어도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ㄴ. 성적 폭행

 

.. 그리고 누리야, 너에게 차마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고문인데, 놈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발가벗겨 성적 폭행을 하는 성고문도 마다하지 않았다 ..  《김하기-부마민주항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2004) 17쪽

 

“남녀를 불문(不問)하고”는 “남녀를 안 가리고”나 “남녀를 안 따지고”나 “남녀 할 것 없이”로 고쳐 줍니다.

 

 ┌ 성적 폭행을 하는 성고문도

 │

 │→ 성폭행을 하는 성고문도

 │→ 강간까지 하는 성고문도

 │→ 성폭행이나 성고문까지

 │→ 강간이나 성고문도

 │→ 자지보지를 갖고 놀며 괴롭히는 고문도

 └ …

 

보기글을 보니 “성적 폭행” 바로 뒤에 “성고문”이라는 말이 보입니다. “성폭행”이 아닌 “성적 폭행”으로 적는다면, “성고문”이 아닌 “성적 고문”으로 적어야 앞뒤가 맞지 않을는지요?

 

 ┌ 성적 폭행 / 성적 고문 (x)

 └ 성폭행 / 성고문 (o)

 

지난날 이 나라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괴롭힘(拷問)을 헤아려 봅니다. 경찰이 여느 시민을 괴롭힐 때,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옷을 벗겨 자지와 보지를 함부로 주무르거나 때리거나 쑤시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괴롭힘은 이 나라뿐 아니라 이웃나라에도 있었으며, 사회나 정치가 독재로 치닫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일어났습니다. 전쟁통에는 훨씬 끔찍하게 일어났고,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도 남게 됩니다.

 

이와 같은 괴롭힘을 ‘성폭행’이나 ‘성고문’이라고 가리킬 수 있을 텐데, 이런 말보다 ‘강간’ 같은 말이 훨씬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는, “강간과 다를 바 없는 고문”이라고 적어 보든지.

 

ㄷ. 성적인 행위

 

.. 게다가 공공 장소에서 하는 그들의 성적인 행위는 나를 난처하게 했다. 전통주의 국가에서 온 내게 대체 뭘 기대한단 말인가 ..  《마르잔 사트라피/최주현 옮김-페르세폴리스 (2)》(새만화책,2008) 35쪽

 

보기글은 말짜임을 손질해야겠습니다. “공공 장소에서 하는 그들의 성적인 행위(行爲)”는 “공공 장소에서 섹스를 하는 그들은”이나 “트인 곳에서 사랑놀이를 하는 그들은”으로. ‘난처(難處)하게’는 ‘어쩔 줄 모르게’나 ‘어렵게’로 손보고, ‘국가(國家)’는 ‘나라’로 손보며, ‘대체(大體)’는 ‘도무지’나 ‘참말로’로 손봅니다. ‘기대(期待)한단’은 ‘바란단’으로 고쳐 줍니다.

 

 ┌ 성적인 행위

 │

 │→ 섹스

 │→ 살곶이

 │→ 사랑놀이

 │→ 입맞춤과 살비빔

 └ …

 

에둘러 말하려고 “성적인 행위”처럼 적었구나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 말과 문화를 헤아리는 가운데 에둘러 말하는 길도 찾아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성적인 행위”가 어느 만큼인지를 헤아려서, 남자와 여자가 몸을 섞는 자리에 이르면 ‘살곶이’라 하면 되고, ‘살곶이’조차 너무 드러낸다 싶으면 ‘사랑놀이’라고 해 줍니다. 살곶이까지는 아니라면 ‘입맞춤과 살비빔’쯤으로 적어 봅니다.

 

 ┌ 사랑을 나누는

 └ 사랑을 즐기는

 

또는 “사랑을 나눈다”나 “사랑을 즐긴다”나 “사랑을 한다”로 적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관용구도 “성적인 행위를 하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7.28 19:07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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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우리말 #우리 말 #적的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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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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