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로비? 왜 10억은 바로 안 돌려줬나

김옥희 사건, 비례대표 공천 좌우했던 이방호 전 사무총장 등에 눈길

등록 2008.08.05 18:33수정 2008.08.0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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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 공천을 둘러싼 김옥희 사건의 불길이 서서히 한나라당으로 옮겨붙고 있다.

 

한나라당은 초기부터 이번 사건을 김옥희씨 개인 비리 내지는 단순 사기로 몰아가며 논란을 진화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김옥희씨가 대한노인회로 하여금 여당에 제출할 추천서를 만들게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공천 로비가 실행됐을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설령 김옥희 사건이 '실패한 로비'로 결론 나더라도 검찰이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여당의 비례대표 선정 과정으로 수사를 확대할 경우 더 큰 홍역을 치를 것은 불보듯 뻔하다.

 

김옥희씨는 김종원 도원교통 사장(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으로부터 2월 13일부터 3월 7일까지 공천 로비 대가로 30억3000만원을 받았다. 그는 김 사장이 공천에서 탈락한 직후 30억 3000만원 중 20억원을 돌려줬지만, 나머지 10억3000만원의 상환을 미뤘다.

 

수표 일련번호 확보한 검찰... '제3의 인물' 등장할 수도 

 

그나마 7월 들어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5억 원을 더 갚았지만, 나머지 5억 3000만 원의 행방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통상 공천비리 사건에서는 금품을 주고받은 사람들이 사건을 덮기 위해 돈 문제를 급히 해결하기 마련인데, 김옥희씨가 10억 3000만 원을 쉽사리 돌려주지 않은 것은 그가 이 돈을 개인적으로 유용하지 않고 공천 성사를 위한 활동자금으로 사용했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김옥희씨가 "나로서는 할 만큼 했으니 나머지 돈의 행방을 묻지 말라"고 김 사장에게 강하게 나올 법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이 부분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지만, 검찰이 김옥희씨가 받은 수표들의 일련번호를 확보한 만큼 수표추적 결과에 따라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옥희씨가 만약 한나라당 인사와 돈 거래를 한 정황이 드러날 경우 여당도 이번 사건을 더 이상 쉬쉬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번 사건이 여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극비리에 추진됐던 비례대표 공천 과정이 조금씩 드러나는 점도 여당으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지난 3월 7일 당시 안강민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과 이방호 사무총장이 공천심사를 마친 뒤 함께 당사를 나가고 있다.

지난 3월 7일 당시 안강민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과 이방호 사무총장이 공천심사를 마친 뒤 함께 당사를 나가고 있다. ⓒ 유성호

지난 3월 7일 당시 안강민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과 이방호 사무총장이 공천심사를 마친 뒤 함께 당사를 나가고 있다. ⓒ 유성호

안강민 공천심사위원장과 이방호 사무총장(친이), 강창희 인재영입위원장(친박, 이상 당시 직책)으로 구성된 한나라당 비례대표심사 소위원회는 3월 21일 첫 회의에서 597명의 신청자를 120명으로 압축한 뒤 23일 회의에서 최종 50명을 확정했다.

 

김종원 사장 등 대한노인회 추천인사 4명은 초기 단계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다는 게 비례대표 심사위원들의 일치된 전언이지만, 청와대·여당 실세들의 입김이 다른 이들의 공천에 작용했을 개연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이방호 전 사무총장은 "김종원·김옥희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다"며 "비례대표 선정은 고도의 정치적 판단으로 이뤄진 것이며, 특정 실세들이 나눠먹고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강창희 전 위원장은 "소위에 가보니 이방호 총장이 남자 25명, 여자 25명 등 50명의 명단을 가지고 있었고, 논란이 된 이경숙 인수위원장을 제외하고 모두 심사를 통과했다"고 말했다.

 

이방호 전 총장 "김종원·김옥희 이름 들어본 적 없어"

 

양쪽의 얘기가 엇갈리고 있지만, 강창희 위원장의 말대로라면 이 총장이 비례대표 공천의 얼개를 이미 짜놓은 셈이다. 당시 강 위원장이 "들러리를 설 수 없다"며 회의 장소에서 뛰쳐나왔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총장의 '독주'가 그만큼 극심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당시 이 총장은 이명박 대통령·이재오 전 의원 등과 두루 통하는 실세 중의 실세로 강재섭 대표조차 그의 면직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김용갑 전 의원은 7월 1일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이방호 총장이 'MB 전화'라면서 모임 중에 몇번을 나가 통화하더라"고 공천심사 기간의 비화를 전하기도 했다.

 

김옥희 사건이 불거지며 비례대표 공천의 시시비비를 다시 다투는 상황이 여당에 썩 반가울 리 없다.

 

이번 사건이 터진 후 당내에서는 "비례대표 A의원은 일천한 경력에 비해 너무 높은 순번을 받았다", "여성 비례대표 B의원은 또 다른 대통령 인척의 총애를 받아 안정권에 진입했다"는 등 흉흉한 공천 괴담까지 돌고 있다.

 

여당 의원들의 반응도 사태관망론과 읍참마속론으로 엇갈리고 있다.

 

검사 출신 장윤석 의원은 5일 YTN '출발 새아침' 인터뷰에서 "돈이 공천심사위원 중 어떤 사람의 계좌에 들어가 있다든지 하면 검찰이 수사를 해야겠지만, 김옥희씨가 사적인 용도로만 돈을 썼다면 단순사기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근혜계의 한 의원은 "지금 누굴 구하고 못 구하고를 따질 계제가 아니지 않느냐"라며 "'특검' 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검찰이 분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2008.08.05 18:33ⓒ 2008 OhmyNews
#이방호 #김옥희 #공천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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