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더럽히는 우리 삶 (44) 오케이(OK, okay)

[우리 말에 마음쓰기 395] ‘좋아, 그래, 네, 오냐, 알았어, 됐어’를 밀어내는

등록 2008.08.06 10:52수정 2008.08.0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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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오케이(OK, okay) 1

 

.. “아니, 솔직히 말하면 네 기세에 눌려서 OK해 버린 것 같단 말야” ..  《카와시타 미유키/서현아 옮김-딸기 100% (1)》(학산문화사,2003) 63쪽

 

‘솔직(率直)히’는 ‘숨김없이’나 ‘있는 그대로’로 다듬고, ‘기세(氣勢)’는 ‘기운’이나 ‘힘’으로 다듬습니다. “-해 버린 것 같단”은 “-해 버린 듯하단”으로 손질합니다.

 

 ┌ 오케이(OK)

 │  (1) = 교료(校了)

 │   - 오케이를 놓다

 │  (2) 찬성, 동의, 만사 해결 따위의 뜻을 나타낼 때 쓰는 말

 │   - 오케이, 알았네. 여기까지 태워 줘서 정말 고맙네

 ├ 교료(校了) : 인쇄물의 교정을 끝냄. ‘끝내기’로 순화

 │

 ├ OK해 버린

 │→ 좋다고 해 버린

 │→ ‘그래’ 하고 말해 버린

 │→ 그러마 해 버린

 │→ 받아들여 버린

 └ …

 

국어사전에서 ‘오케이’를 찾아보니 ‘교료’와 같은 말이라고 풀이합니다. 뭔 소리인가 싶어 ‘교료(校了)’를 찾아봅니다. “인쇄물의 교정을 끝냄”을 뜻하는 낱말로, ‘끝내기’로 고쳐써야 할 말이라 합니다. 우리가 익히 쓰는 ‘오케이’라면 (2) 뜻일 텐데, 설마 (1) 뜻으로 ‘오케이’가 우리 나라에 들여와서 쓰이다가 (2) 뜻으로 가지를 쳤는가요?

 

국어사전에 실리는 말풀이 차례는 우리가 이 낱말을 쓰던 차례를 보여줍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니, 옛날 인쇄소나 제본소나 출판사에서 ‘원고 교정’을 보고 나서 “그래, 이제 됐군!” 하면서 일본말로 ‘교료’라 하거나 그냥 영어로 ‘오케이’라 말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오케이를 놓다 → 끝내기를 놓다

 └ 오케이, 알았네 → 그래, 알았네

 

문득, 못 볼 모습을 보았다는, 보지 말아야 할 모습을 보았다는 느낌을 지울 길 없습니다. 얄궂게 되어 있는 국어사전 말풀이를 넘어서, 이 땅 이 나라 사람들 뒤틀리고 짓궂은 말씀씀이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를 너무도 환하게 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만히 보면, 이 나라 책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도비라’니 ‘하시라’니 ‘피’니 ‘와꾸’니 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씁니다. 부끄럽습니다.

 

ㄴ. 오케이(OK, okay) 3

 

.. 나라에 대한 사랑으로 치자면 첫 번째도 서럽다 할 남편인지라 펄쩍 뛰며 반대할 줄 알았는데 어쩐 일인지 선선히 오케이를 하더란다 ..  《이승욱-웰빙으로 가는 이민》(호미,2005) 37쪽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나라사랑’이라 말하면 됩니다. “나라에 대(對)한 사랑”이나 ‘애국(愛國)’이라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 선선히 오케이를 하더란다

 │

 │→ 선선히 좋다고 하더란다

 │→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더란다

 │→ 선선히 ‘그러마’ 하더란다

 │→ 선선히 내 뜻을 받아들이더란다

 └ …

 

잘 쓰는 말이든 잘못 쓰는 말이든, 한 번 버릇이 되어 몸에 붙어 버리면 바꾸거나 고치기 어렵습니다. 그냥 써 오던 대로 쓰면 된다고 생각할 때가 자기로서는 수월하거나 더욱 낫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더욱이, 잘못 쓰는 말이지만 잘못 쓰는 줄 느끼지 못한다면, 또한 올바르고 알맞게 쓰도록 이끌거나 가르쳐 주는 사람이 둘레에 없다면, 말투나 말버릇은 거의 굳어 버린다고 하겠습니다.

 

 ‘오케이’, ‘오라이’, ‘땡큐’, ‘쏘리’처럼 쓰는 미국말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든지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마저 함부로 쓰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말은 바로잡자고 목이 터지도록 외친다 한들 꿈쩍도 않고 널리 쓰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입이 아프게 이야기해 보아야 헛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ㄷ. 오케이(OK, okay) 4

 

.. “그만 둬라. 내가 부르마. 넌 가스로 물이라도 끓여라.” “오케이” ..  《겐지 게이따(源氏鷄太)/나병하 옮김-정년퇴직》(휘문출판사,1963) 48쪽

 

아버지와 아들이 나눈 이야기입니다. 둘 사이는 가까운지, 아들은 아버지 말에 ‘오케이’라고 대꾸합니다. 어쩌면 ‘오케이’라는 말은 누구한테든 가볍게 쓸 수 있다고 여겨서 이렇게 썼는지 모릅니다.

 

 ┌ 오케이

 │

 │→ 알았어 / 알았어요

 │→ 그래 / 네

 │→ 좋아 / 좋아요

 │→ 그러지 / 그럴게요

 └ …

 

스스럼없는 사이일 때라면 ‘오케이’보다는 ‘알았어’나 ‘그래’로, 조금 높여서 말해야 알맞는 자리라면 ‘좋아요’나 ‘그러지요’를 넣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8.06 10:52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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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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