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양천
유혜준
길을 걷다가 주인과 함께 산책을 나온 개를 보았습니다. 이 개, 혀를 빼어 물고 헥헥거리면서 개줄에 묶인 채 걷고 있었습니다. 더위 탓인지 약간 비틀거리는 것도 같습니다. 어, 내일이 복날인데 괜찮겠니? 이렇게 묻고 싶었지만, 개는 눈길 한번 안주고 그냥 지나갑니다. 나, 덥거든. 말 시키지 마.
길 가에 사각형의 정자가 있습니다. 남자 분이 그 곳에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 부럽네요. 책을 읽다가 졸리면 그냥 누워서 자면 되겠지요?
다시 땡볕으로 나갑니다. 안양천입니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인데, 말라비틀어진 지렁이들이 즐비합니다. 요즘 지렁이들, 너무 굵어 볼 때마다 징그럽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예전에는 이런 지렁이들이 거의 없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런 놈들이 비가 오면 무더기로 길 위로 기어 나오더군요.
길옆에 풀이 잔뜩 우거져 있습니다. 그 옆에 표지판 하나가 서 있습니다. 안양천 생태보전구역으로 야생 조수나 파충류, 양서류, 자생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풀 깎기를 하지 않는 구역이랍니다. 잘 다듬어진 잔디보다 이렇게 웃자란 풀이 더 정감이 있지요.
나무 그늘을 찾아 걷는데 안양천변 자전거도로에는 땡볕임에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제법 있습니다. 다리 아래에 자전거를 세우고 앉아 쉬는 사람들도 많이 보입니다. 더위가 모든 사람들을 지치게 하지 않는군요.
길 한 쪽에 코스모스들이 철 이르게 피어났습니다. 코스모스를 보니 입추라는 사실이 실감납니다. 가을의 초입이니 코스모스들이 철모르고 피어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네요.
목동의 보리밥집에서 보리밥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한낮의 폭염 아래로 나섰습니다. 용왕산 숲길을 걸어 용왕정에 닿았습니다. 용왕산이라니 제법 높은 산을 연상할지 모르지만 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두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하나는 높이가 78m, 다른 하나는 68m랍니다. 용왕정은 팔각정 모양의 정자인데,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기념해서 지었다고 합니다.
용왕산에 왔으니 용왕님이 어디쯤 계실까, 전망대에서 찾아 봤습니다. 저런, 용왕산이 아니라 서해바다 깊은 곳에 계신다네요. 예전에는 용왕산 아래 마포나루에서 용왕님께 가는 배가 떴다나요. 그렇다면 지금은? 뱃길이 끊겼지요. 마포나루가 사라져 버렸으니….
용왕산 어디쯤에 용왕님이 계실까?

▲ 목동 샛길
유혜준
용왕산을 내려와 목동 아파트 단지로 들어갑니다. 목동 아파트 단지 안에는 걷기 좋은 산책길이 많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걸을 수 있을 만한 넓이인데 양 옆으로 잘 자란 나무들이 줄 지어 서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길만 보면, 깊은 산 속의 숲길처럼 느껴집니다.
매미가 극성스럽게 웁니다. 올해, 유난히 매미를 많이 보고, 울음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이번 여름에만 매미가 많은 건지, 아니면 길 위로 나서 걷다보니 매미 울음소리를 많이 듣게 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매미가 많이 울다보니 길 위에 죽은 매미가 떨어져 있는 것도 많습니다. 생명이란 무릇 태어나면 소멸하기 마련, 뭐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폭염경보가 내려졌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걷습니다. 아파트 단지 안을 가로 지르기도 하고, 작은 쉼터에서 쉬기도 하면서 목동의 아파트를 1단지부터 6단지까지 순례를 했습니다. 곳곳에 그늘이 드리워진 걷기 좋은 흙길이 숨어 있었습니다. 걷기 좋은 길은 우리 주변에 있는데 우리가 찾지 못할 뿐이더군요.
그리고 도착한 곳은 목동의 파리공원입니다. 한국과 프랑스의 수교 100주년을 기념해서 1987년에 문을 열었답니다. 한국과 프랑스가 수교를 한 것은 1886년. 120년 전의 일입니다. 그 때와 비교하면 한국, 참 많이 달라졌지요. 프랑스 파리에는 한국과 수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서울광장이 있다고 합니다.

▲ 파리공원 산책로
유혜준
파리공원, 잘 꾸며져 있습니다. 분수는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가동을 안 합니다. 사내 아이 둘이 야외 수영장처럼 생긴 분수대 안으로 들어가 물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시원해 보이기는 하는데 분수의 물, 깨끗하지 않다지요?
목동 아파트 단지 순례를 끝내고, 한강변을 따라 오목교역까지 걸었습니다. 이 길도 양 옆으로 나무가 길게 심겨져 있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신작로처럼 쭉 뻗어 있는 흙길은 오래 걸어도 피로감을 덜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신도림역에서 시작한 도보여행은 오목교역에 도착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이 날 걸은 거리는 18km쯤 됩니다.
저는 더위가 한참 기승을 부리는 한낮에 걸었지만, 이 길을 더위가 적당히 누그러지는 저녁시간에 걸으면 더 상쾌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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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경보 날, 용왕님 찾아 용왕산 숲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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