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계약'에 매운탕, 장어구이까지 먹어치운 하루

등록 2008.08.12 10:28수정 2008.08.1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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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고향(군산)에 다녀왔습니다. 작년 6월 아내가 병원에 취직되었을 때 급하게 집을 구하면 훗날 후회할 것 같아서, 고생이 되더라도 혼자 밥을 해먹으며 이리저리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1년이 넘도록 헛발질만 해왔고, 답답한 마음에 나섰던 것입니다.


이번에도 꼭 집을 꼭 구해야겠다는 각오보다는 형님댁에서 며칠 묵으며 집을 알아보고, 평택 막내 누님댁에 가서 며칠 지내다 더위가 가시면 와야겠다고 계획을 세우고 여행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가던 날은 준비해간 ‘산 낙지’와 ‘아나고’(붕장어)회를 안주로 형님과 소주를 마시면서 사는 이야기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형님(66)을 뵐 때마다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 안타깝지만, 누구나 겪는 일이니 편하게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전화 연락 두 시간 만에 집을 계약하다

가격이 맞으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라도 매입을 하던가, 아니면 오래도록 살 수 있는 전세나 임대주택을 알아봤는데 쉽게 풀리지 않더라고요. 작년 가을에도 집을 계약했는데 주인이 해약하는 바람에 배상은 받았지만 안타까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a  이사할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보는 ‘십자들녘’, 금강 담수호를 끼고 있는 십자들녘은 철새도래지로도 유명하지만 까마득하게 보이는 지평선과 고즈넉한 농촌풍경이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이사할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보는 ‘십자들녘’, 금강 담수호를 끼고 있는 십자들녘은 철새도래지로도 유명하지만 까마득하게 보이는 지평선과 고즈넉한 농촌풍경이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 조종안


이튿날 아침에는 밥을 먹기 무섭게 교차로를 펴놓고 마땅한 게 없나 훑어봤습니다. 마침 아내가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는지 전화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몇 번을 해도 끊기니까 포기를 하는 눈치였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주소를 보았더니, 금강 철새도래지 관망대 넘어 ‘십자들녘’ 부근(나포면)이었는데, 돌아가신 어머니가 농사짓던 마을이라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10분쯤 지나서 제가 전화를 했더니 용케도 연결이 되더라고요. 전형적인 군산 말씨의 남자 목소리였는데 시원시원한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제가 있는 동네로 와서 집을 둘러보러 가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지요.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듯 예감이 좋았습니다.   

옆에 있던 형수님도 보고 싶다고 해서 함께 갔지요. 예상대로 주인은 친절했고 집을 둘러본 형수님과 아내도 마음에 든다고 해서 더욱 좋았습니다. 전셋집이긴 하지만 돌아가신 어머니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조용한 농촌 마을이라서 더 이상 바랄 게 없었습니다. 


집주인을 만나 집을 둘러보고 계약서를 쓰기까지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요. 옆에서 지켜보던 형수님이 “그럼, 19일이 ‘손 없는 날’이니까 그날 이사하면 되겠네요”라고 해서 이삿날까지 잡고 돌아왔습니다.

형님과도 가까운 집주인

집에 도착하니까, 형님이 점심식사를 하러 들어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설명해 드렸더니 잘 됐다며 기뻐하셨습니다. 아내가 계약서를 내밀자 형님은 자세히 훑어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라고요. 부동산 전문가에게 확인하는 전화로 알았지요. 그런데 대화 내용이 그게 아니었습니다. 

“고 사장? 나야 나.”
“아, 예 안녕하세요.”
“누가 그러는데, 나포에 있는 집 내놨다며?”
“아, 예 그거 오늘 나갔는데 어쩌지요.”
“아니, 나갔어도 상관없어요. 동생이 계약하고 와서 얘기를 하기에 묻는 거니까···. 그러고 언제 시간 나면 소주 한 잔 합시다.”

대화를 엿들으며 세상이 좁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고, 집주인과도 예사 인연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전화를 끊는 형님을 바라보는 순간 또 다른 행복감을 맛보았습니다.   

오랜만에 먹어본 ‘쏘가리 매운탕’

a  시래기와 들깨, 미나리 등 온갖 양념이 들어간 쏘가리 매운탕은 여름철의 별미이자 더위에 지쳐 허해진 몸의 기를 북돋워주는 음식이기도 하지요.

시래기와 들깨, 미나리 등 온갖 양념이 들어간 쏘가리 매운탕은 여름철의 별미이자 더위에 지쳐 허해진 몸의 기를 북돋워주는 음식이기도 하지요. ⓒ 조종안


모두 만족스러워하며 얘기를 나누는데 아내가 “부동산 소개비도 들지 않고 마음에 드는 집을 구했으니까 점심은 제가 살게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얻어먹는 처지이니 메뉴를 말했으면 어쩔 수 없이 따라갔을 터인데, 무조건 사겠다고 하는 바람에 콩국수, 아귀탕, 쏘가리 매운탕 등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그러나 곧, 매운탕으로 결정되었고, 은파유원지로 향했습니다.

오랜만에 은파유원지 입구에 있는 ‘삼거리 매운탕 집’에 갔는데요. 친구들과 모임도 하면서 어울려 다니던 사십 대 시절이 떠오르더라고요. 고향에 있을 때 이발을 하러 다니던 이발소 아저씨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배 부위가 누런 ‘황 쏘가리’ 매운탕이 먹고 싶었으나 없다고 하기에 형님과 저는 ‘쏘가리 매운탕’을, 형수님과 아내는 ‘백숙’을 시켜 먹었는데요. 기분이 좋으면 맛도 배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니 짧게 적어야겠네요. 

a  서해안의 특산품인 조개젓. 요즘은 거의가 수입이더라고요. 같은 양념이래도 손맛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요. 음식은 정성이 으뜸이라고 생각합니다.

서해안의 특산품인 조개젓. 요즘은 거의가 수입이더라고요. 같은 양념이래도 손맛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요. 음식은 정성이 으뜸이라고 생각합니다. ⓒ 조종안


a  개운한 콩나물 무침과 깻잎 무침, 싱싱한 겉절이가 매운탕 맛을 더해주었는데요. 풋고추를 찍어먹는 개운한 쌈장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개운한 콩나물 무침과 깻잎 무침, 싱싱한 겉절이가 매운탕 맛을 더해주었는데요. 풋고추를 찍어먹는 개운한 쌈장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 조종안


검정콩이 들어간 구수한 돌솥 밥에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며 수저로 떠먹고, 하나씩 집어먹는 조개젓의 감칠맛은, 여름이면 염전에서 수차 돌아가는 소리가 정겨운 서해안 지역의 음식점에서나 맛볼 수 있는 별미이지요.

개운한 콩나물 무침과 쌈장에 찍어 먹는 싱싱한 풋고추는 새우와 미나리가 들어간 매운탕의 담백한 맛을 살려주는 보조원 역할을 하지요. 거기에 고소하면서도 씁쓰레한 깻잎나물의 독특한 맛과 돌솥에 물을 부어 끓여 먹는 고소한 누룽지는 어머니 손맛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얼큰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쏘가리 매운탕은 시래기가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솥을 다 비우고 누룽지까지 끓여 먹어도 2-3시간만 지나면 허기를 느낍니다. 아마 그게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일 수도 있겠는데요. 그래서인지 저는 민물 매운탕을 먹을 때마다 시래기죽으로 연명하며 배고픔에 허덕였던 옛 친구들이 생각나더라고요.

‘풍천장어’를 떠올리게 했던 장어구이 

a  형님은 모임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고, 동생 부부와 형수, 아내와 함께 장어구이 집에서. 오랜만에 씨알이 굵은 장어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비스로 한 마리 더 얻어먹었으니 기회가 있으면 들러봐야겠습니다.

형님은 모임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고, 동생 부부와 형수, 아내와 함께 장어구이 집에서. 오랜만에 씨알이 굵은 장어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비스로 한 마리 더 얻어먹었으니 기회가 있으면 들러봐야겠습니다. ⓒ 조종안


a  정북 고창 풍천장어를 떠올리게 했던 장어구이. 씨알이 굵어 오래 씹을 수 있고 그만큼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정북 고창 풍천장어를 떠올리게 했던 장어구이. 씨알이 굵어 오래 씹을 수 있고 그만큼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 조종안


저녁은 동생이 가자고 해서 장어구이 집에 갔는데, 25년 만에 장어다운 장어를 먹어본 것 같습니다. 씨알이 굵어 고소한 맛이 오래가고 씹히는 느낌이 그만이었는데, 전북 고창 선운사 서쪽 해안가에 위치한 갯마을 ‘심원’(心元)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심원면을 둘러싼 산의 맥과 지형이 마음심(心)자와 으뜸원(元)자와 흡사하다고 한데서 유래하였다는 심원(心元)은 20km가 넘는 해안선을 따라 광활하게 펼쳐진 청정 갯벌이 유명하지요. 풍천장어와 복분자의 원산지이기도 한데요. 25년 전 심원에서 근무하던 선배 형님의 초대를 받고 친구들 여럿이서 부부동반으로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당시 마을 이장님 댁 앞마당에 평상을 놓고 둘러앉아 숯불이 담긴 큰 화로 위에 석쇠를 올려놓고 그날 잡아온 아이의 팔뚝만한 풍천장어를 구워먹었는데요. 평소 장어를 징그러워했던 아내도 그때 먹었던 맛과 느낌을 잊지 못하고 이야기합니다.

동생과 함께 갔던 장어집에서는 1kg 단위로 팔고 있었는데, 씨알이 굵어 평소 먹던 장어와 다른 것을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장어 양식장에서 200-250g 정도 나가면 장어집에 납품하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렇다면, 1kg을 주문하면 4-5 마리가 올라와야 합니다. 그런데 세 마리가 올라오더라고요. 그러니 씨알이 굵어 오래도록 씹을 수 있고 맛도 고소할 수밖에요. 
 
특히 밥과 함께 나온 된장국은 전라도를 상징하는 ‘맛’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개운한 맛’이 그만이었는데, 잊고 있던 식탐을 되살려놓는 바람에 건강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실컷 먹었습니다.

제 입맛을 잘 아는 동생은 말복이나 지나서 가시라고 권하는데, 생각지 않은 이삿날이 정해지니까 서서히 준비를 해야 하겠더라고요. 해서 막내 누님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이튿날 부산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도 흥분이 되었는데요. 막상 이사 준비를 하려니까 기쁘기에 앞서 서운하고 우울한 감정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7년 가까이 살며 정들었던 곳을 떠나려니까 그런 모양입니다.
#이삿날 #쏘가리매운탕 #장어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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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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