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담
결혼 10년을 맞아 결혼초의 약속을 떠올리고 과감하게 짐을 꾸린 부부가 있다. 이 부부, 그냥 며칠간 떠돌고 마는 여행이 아니라 아예 전셋돈을 빼서 장기 여행 계획을 세웠다. 결혼 10년 동안 모은 건 전셋돈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가진 것 전부를 건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혀를 끌끌 차면서 걱정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치기어린 만용이라고, 세상 물정 모르는 짓이라고. 하지만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게 무슨 상관이랴.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 내가 떠나고 싶으면 떠나는 것이다. 내가 길 위에 서고 싶으면 서는 것이다. 후회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는다. 생각만 많이 하면 절대로 길 위에 설 수 없다.
이렇게 해서 이 부부 길 위에서 967일을 보냈다. 처음에는 1년만, 이라고 기간을 정했는데 세상일이라는 게 어디 꼭 계획대로만 되던가. 1년이 늘어나 2년이 되고, 그게 늘어나 967일이 되었다. 그 기간동안 47개국을 돌아다녔다.
3일간만 머무른 나라가 있는가 하면, 152일을 머문 나라도 있다. 처음에는 여행 일정표대로 움직였지만, 길 위에 서 있다보면 그런 것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 폭설 때문에 6일간 소금사막의 대피소에 갇힌 적도 있고, 식당에서 일하면서 어학원에 다닌 적도 있다. 그 뿐인가, 여행사의 횡포에 화가 나 여행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동안 여행을 하다보니 생긴 일이고, 그건 소중한 경험과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부부는 여행을 하면서 소중한 인연을 아주 많이 맺을 수 있었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늙은 바이킹을 만났고, 폐허가 되어 버린 이란의 밤에서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스라엘에서는 '다른 사람이 행복하다면 나는 괜찮다'는 고아출신 영생 아저씨를 만나기도 했다. 이 아저씨, 한국 사람인데 그곳까지 가서 남을 위한 봉사를 하고 있었다.
이들이 길 위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는 그 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행자들과 현지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한국인들도 있었다.
낯선 여행길에서 세상 사람들을 만나다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길 위에서 헤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일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사람의 인연이 그렇게 가벼운 게 아니지 않나.
이 부부는 967일의 여행길에서 만난 세상 사람들을 기억하고 가슴에 담아두었고, 그 인연을 길게 이어나가려고 애쓰고 있다. 그렇게 해서 세계 각국에 친구들을 만들었고, 그들은 이 부부의 삶을 좀더 깊고 풍요롭게 만들어 준 것은 당연지사.
그렇기에 이 부부는 '여행은 친구를 만나는 것'으로 정의하고, 그 정의에 다시 덧붙인다. 이렇게 만난 친구를 통해 '나를 만나는 것'이라고.
967일간의 긴 여행이라면 일정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을 텐데, 김향미·양학용, 두 사람은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를 중심으로 여행기를 풀어냈다. 이들이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울고 웃고, 가슴 아파할 때 그 감정은 고스란히 읽는 이의 마음으로 전이된다. 이 여행기가 마음을 울리는 건 그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 책의 제목을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고 붙인 것이 아닐까?
책의 말미에는 이들의 여행경로와 여행경비가 아주 꼼꼼하게 공개되어 있다. 이들은 유럽을 여행할 때는 교통비와 숙박비를 아끼려고 중고차를 구입해서 타고 다녔다. 최대한 비용을 아낀 이들의 여행경비는 전부 얼마였을까? 궁금하다면, 책으로 직접 확인하시길.
이 책을 다 읽고난 뒤 여행바람이 들어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도 아들 대학 졸업하면 집 팔아 세계일주여행을 떠나자고. 물론 둘만 가자고 했다. 남편은 환호했으나, 대학생인 아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태클을 걸었다.
"
집을 판다고요? 그럼 저는 어디서 살라고요?"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 967일, 낯선 여행길에서 만난 세상 사람들
김향미 외 지음,
예담,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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