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주 일요일, 그곳에 가면 행복해 진다

등목처럼 시원한 숲속음악회 현장

등록 2008.08.12 15:19수정 2008.08.1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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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음악회 매월 둘째 주 일요일, 황톳길이 있는 대전 계족산엘 가면 사람들 얼굴에 행복한 웃음이 주렁주렁 걸리는 숲속 음악회가 열린다. ⓒ 임윤수

▲ 숲속음악회 매월 둘째 주 일요일, 황톳길이 있는 대전 계족산엘 가면 사람들 얼굴에 행복한 웃음이 주렁주렁 걸리는 숲속 음악회가 열린다. ⓒ 임윤수

 

장대비를 피하려 추녀 끝으로 뛰어든 나그네처럼 불화살을 퍼붓듯 쏟아지는 한여름의 폭염을 피한다는 핑계로 며칠 동안 두문불출 하며 지냈습니다. 염천(炎天)이라는 말에 걸맞게 한여름의 더위가 장마철을 만난 소나기처럼 줄기차게 쏟아지는 8월입니다.   

 

살갗이라도 데일 것 같아 집을 나선다는 게 도대체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더위를 먹을 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방․콕․족'이 돼 집안에서만 뒹굴 거리다 보니 몸도 마음도 점점 늘어지는 기분입니다.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보지만, 숨통을 조여 오듯 훅하며 다가오는 더위에 놀란 자라가 목을 집어넣듯 잽싸게 내밀었던 머리를 들여놓고 창문을 닫습니다.

 

앉았다, 일어섰다, 누웠다, 엎드렸다를 반복하며 뒤척뒤척 뒹굴어도 보지만 몸뚱이만 점점 끈끈해집니다. 쏟아지는 폭염을 가려주고,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줄 오아시스 같은 곳이 어디 없을까를 골똘하게 찾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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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음악회 사회자 겸 연주자인 홍미나씨가 가야금으로 오나라를 연주하고 있다. ⓒ 임윤수

▲ 숲속음악회 사회자 겸 연주자인 홍미나씨가 가야금으로 오나라를 연주하고 있다. ⓒ 임윤수

 

바다, 계곡, 강물, 원두막 등 기억에 있는 피서지들을 빠짐없이 뒤적여 보지만 선뜻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점심을 먹고도 한참을 엎치락뒤치락하다 우연히 마주친 달력을 바라보다 외마디처럼 '어! 오늘이 둘째주 일요일이잖아'하며 벌떡 일어났습니다.

 

매월 둘째주 일요일, 그곳엘 가면 행복이 있다

 

매월 둘째주 일요일마다 계족산 황톳길에서 실시되는 맨발걷기와 숲속음악회가 번뜩 떠올랐습니다. 맨발걷기는 이미 시작되었을 시간이니 숲속에 울려 퍼질 감미로운 음악이나 들으러 가자는 심산으로 서둘러 집을 나섭니다.

 

역시 덥습니다. 가만히 서 있어도 줄줄 흐르는 땀줄기가 얕은 도랑을 이룰 만큼 후끈한 날씨입니다. 소낙비를 가르며 달리듯 그런 폭염을 가르며 얼마를 달리니 임시로 마련된 주차장입니다.

 

주차장을 벗어나니 이쯤의 햇살은 별 것 아니라는 듯 빗물을 가려주던 처마나 양산처럼 햇살을 가려줄 가지들을 활짝 펼치고 있는 울창한 숲길입니다. 다른 곳에서라면 다들 신고 있어야 할 신발이지만 매월 둘째주 일요일이 되면 신발을 신고 걷는 것이 되레 이상하게 보일만큼 대개의 사람들이 훌훌 신발을 벗고 맨발 걷기를 즐기는 황톳길로 접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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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서 벌어지는 음악회는 앉아있는 사람들 조차도 자연으로 만들어버린다. ⓒ 임윤수

숲속에서 벌어지는 음악회는 앉아있는 사람들 조차도 자연으로 만들어버린다. ⓒ 임윤수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잡아먹기라도 할 듯 작열하던 햇살도 나뭇잎에 가려 맥을 추지 못합니다. 포장도로 옆에 자투리처럼 남아있는 흙길을 따라 타박타박 걸어갑니다. 계곡을 막아서 만든 물놀이장에는 아이들이 타고 노는 튜브들이 물방개처럼 떠다닙니다. 이따금 자맥질을 하는 아이들도 보이고, 물싸움을 하거나 물장구를 치는 아이들도 보이지만 까르르거리는 웃음소리조차도 매미소리에 묻힙니다.

 

등줄기에 흐를 땀줄기가 무서워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이렁저렁 오르다보니 요깟 쯤의 더위는 한 방에 날려줄 싱그러움이 있는 삼림욕장입니다. 맨발로 황톳길을 걷기에는 지각이지만 음악회에는 조금 일찍 도착한 참석자가 되었습니다.

 

불화살처럼 꽂혀오던 폭염보다도 훨씬 상큼한 녹음이 장대비처럼 쏟아집니다. 아스팔트길을 불덩이처럼 달구던 햇살이었지만 나뭇잎들 앞에선 양분을 더해주는 햇살일 뿐입니다. 하늘을 가리고 있는 잎사귀 사이로 빠끔빠끔 쏟아지는 햇살이 조명처럼 빛줄기를 이룰 만큼 울창한 숲 그늘입니다. 태고의 전설을 알고 있을 것 같은 바위덩이는 신선놀음이라도 하듯 이미 자리를 잡았습니다. 바윗덩이 옆에 앉으니 나뭇잎들이 하늘하늘한 몸짓으로 후두둑하고 싱그러움이 떨어질 만큼 시원하게 부채질을 해줍니다. 

 

속삭임 같은 선율을 숲과 사람들의 마음에 주렁주렁 걸어 놓을 진행자와 음악가들이 도착하고, 맨발로 황톳길을 또박또박 걸어 온 사람들이 도착하니 음악회가 시작됩니다.

 

사람들 가슴에 어우러지는 또 하나의 숲

 

무대는 있으나 객석과 동떨어지지 않았고, 연주자와 가수, 사회자와 관객으로 구분할 수 있겠으나 등걸을 맞대고 자라는 나무들처럼 박수와 화음으로 이렁성저렁성 어우러지니 선율과 열창, 박수와 환호로 이루는 또 하나의 숲, 행복한 숲이 숲속에서 형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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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가수 사토 유기(Sato Yukie)가 유창한 한국말로 노래를 한다. ⓒ 임윤수

일본인 가수 사토 유기(Sato Yukie)가 유창한 한국말로 노래를 한다. ⓒ 임윤수

 

여기저기에 맨발을 한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앉아 있거나 누워있고, 음료수는 물론 막걸리까지 마시는 무리도 있으며 배를 쭉 깔고 있는 강아지까지 있으니 언뜻 보기엔 널브러진 광경이지만 원초적 만끽이 넘실거리는 행복한 현장입니다.  

 

가야금 줄에서 '딩~두둥~ 딩~두둥~' 거리며 아리랑 음률이 튕겨 오르고, 묘음을 쏟아내는 오카리나로 오나라를 연주해 가니 사람들 마음엔 다섯줄 오선지가 마련됩니다. 하늘에라도 닿을 듯 높이 올라가던 선율이 툭하고 떨어지며 애잔한 음을 낼 때면 등목에 끼얹던 한 바가지의 물, 등골이 오싹해지도록 차갑기까지 했던 샘물이라도 쏟아지는 듯 시원한 느낌입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마음에 있는 오선지에 음표를 그려나갑니다. 어떤 사람은 아침이슬 같은 '맑음' 음표를 그리고, 어떤 사람은 폭포수 같은 '후련함'을, 어떤 사람은 옹달샘 같은 '청량함'을 음표로 그려가지만 끝부분에서 대개의 사람들이 그리는 음표는 숲속음악회에서 맛보는 '행복'이라는 음표입니다.

 

1시간이라는 시간이 금방 지났습니다. 시작하는가 했더니 금방 끝나버린 음악회지만 한여름의 무더위를 달래주기에 충분했고, 원초적 만끽이 넘실거렸으니 내달의 숲속음악회를 기다리기에 충분한 이유와 까닭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오선지에 걸린 음표처럼 숲속에 웃음과 환호, 박수와 노래를 주렁주렁 걸었던 사람들이 산길을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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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부르는 사람들 얼굴엔 행복음표가 주렁주렁 걸렸다. ⓒ 임윤수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부르는 사람들 얼굴엔 행복음표가 주렁주렁 걸렸다. ⓒ 임윤수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솔바람처럼 산들거리고, 타박거리는 발자국 소리는 물결소리가 되어 흘러갑니다. 매월 둘째주 일요일이면 솔바람 같은 행복과 산들바람 같은 건강을 맛 볼 수 있는 황톳길 맨발걷기와 숲속음악회가 있어 참 좋습니다.

 

살갗이 타들어 갈 것 같은 폭염에서도 오이냉국 같은 시원함과 많은 사람들이 짓는 알콩달콩한 살맛과 행복한 표정들을 볼 수 있고, 느끼게 되니 황톳길 맨발걷기와 숲속음악회를 거르지 않고 있는 주최측에 배시시한 웃음으로 배냇짓 같은 감사함을 건넵니다.

 

덧붙이는 글 | 9월 숲속음악회는 둘째 주 일요일이 추석인 관계로 세째 주 일요일에 열린답니다.

2008.08.12 15:19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9월 숲속음악회는 둘째 주 일요일이 추석인 관계로 세째 주 일요일에 열린답니다.
#숲속음악회 #황톳길 #맨발 #계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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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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