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진책을 만날 때면

[사진말 (15) 사진에 말을 걸다 80∼87] 누구나 찍을 수 있는 내 사진

등록 2008.08.27 15:48수정 2008.08.2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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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고추 널기 고추를 한창 너는 철입니다. 골목길마다 고추가 잔뜩 널려 있습니다. 널린 고추를 사진으로 담으면서 웃음이 납니다.
골목길 고추 널기고추를 한창 너는 철입니다. 골목길마다 고추가 잔뜩 널려 있습니다. 널린 고추를 사진으로 담으면서 웃음이 납니다.최종규
▲ 골목길 고추 널기 고추를 한창 너는 철입니다. 골목길마다 고추가 잔뜩 널려 있습니다. 널린 고추를 사진으로 담으면서 웃음이 납니다. ⓒ 최종규

[80] 무엇을 찍을까? : 내가 무엇을 찍어야 할는지를 뚜렷이 느끼고 있다면, 어디에서 누구를 찍고 무엇을 찍고 하든, 가슴을 찌르르 울리는 사진을 찍을 수 있더군요.

 

[81] 좋은 장비를 쓰면서도 : 참 좋은 장비를 쓰면서도 엉터리 사진 찍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라고 좋은 장비를 쓸 때, 엉터리 사진 찍지 말란 법 없나요?

 

골목꽃 천천히 길을 거닐기 때문에, 골목마다 소담스레 피어난 꽃을 만날 수 있고, 인사를 건넬 수 있고, 사진으로 담아내어 이웃들하고 나눌 수 있습니다.
골목꽃천천히 길을 거닐기 때문에, 골목마다 소담스레 피어난 꽃을 만날 수 있고, 인사를 건넬 수 있고, 사진으로 담아내어 이웃들하고 나눌 수 있습니다.최종규
▲ 골목꽃 천천히 길을 거닐기 때문에, 골목마다 소담스레 피어난 꽃을 만날 수 있고, 인사를 건넬 수 있고, 사진으로 담아내어 이웃들하고 나눌 수 있습니다. ⓒ 최종규

[82] 손 운동, 눈 운동 : 1995년 가을, 훈련소에 들어가 이제 막 스물여섯 달을 썩을 즈음 일입니다. 밤마다 한 시간씩 불침번을 서는데 잠은 오지 몸은 고달프지 답답하고 갇힌 이곳에서 무엇인가 하고 싶지만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지… 힘이 쪽 빠진 채 멍하니 있었습니다.

 

이러던 어느 날 밤, 이 젊은 나이에 군대에서 썩으면서 아주 돌머리가 되어서 바깥으로 나가겠군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래,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만이라도 하자, 하는 생각으로 머리속으로 셈틀 자판을 떠올렸습니다. 그러고는 생각나는 노래마다 속으로 부르면서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였습니다. 그렇게 하늘에 대고 타자를 쳤습니다.

 

시골에서 지내던 때, 제가 찍을 사진이 없지는 않았지만, 제가 사진으로 찍을 주제가 아니라고 느끼면 사진기를 들지 않았습니다. 이 시골에서도 제 나름대로 제 사진감을 찾아볼 수 있을 텐데, 다른 사진감이 떠오르거나 보이지 않는다면 이것 하나, 군대에서 하늘에 대고 자판을 치던 때처럼, 무언가 꼼지락거리기라도 해야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서울 나들이를 마치고 시골로 돌아오기 앞서, 홍제동에 있는 헌책방에서 일본 사진잡지를 자그마치 63권 한꺼번에 산 적 있습니다. 예순세 권이나 되는 사진잡지를 다 넘겨보자면 퍽 여러 날 걸려야 할 텐데(여러 달 걸릴 수도 있겠지요), 사진기를 들지 않는다면 사진잡지라도 꼼꼼히 파헤치면서 제 눈을 다스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손을 들어 사진기 단추를 누를 수 없다면, 손을 뻗어 사진책이라도 펼쳐서 눈을 움직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꽃과 사람 따로 씨를 뿌리지 않았으나 뿌리를 내리며 자라나는 꽃. 굳이 이런 사진을 찍으라느니 저런 사진을 찍으라느니 시키지 않았어도, 저 스스로 좋아하면서 즐기는 사진.
꽃과 사람따로 씨를 뿌리지 않았으나 뿌리를 내리며 자라나는 꽃. 굳이 이런 사진을 찍으라느니 저런 사진을 찍으라느니 시키지 않았어도, 저 스스로 좋아하면서 즐기는 사진.최종규
▲ 꽃과 사람 따로 씨를 뿌리지 않았으나 뿌리를 내리며 자라나는 꽃. 굳이 이런 사진을 찍으라느니 저런 사진을 찍으라느니 시키지 않았어도, 저 스스로 좋아하면서 즐기는 사진. ⓒ 최종규

[83] 누군가 내 사진감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면 : 누군가 헌책방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처럼 헌책방 사진을 찍었을까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글쎄.

 

제가 한참 골목길 사진을 찍고 있을 때, 김기찬 선생 같은 사람도 골목길을 찍어서 사진책을 냈다면 어땠을까 헤아려 봅니다. 음, 아무래도 좋은 사진동무이자 사진스승이 생겼다면서 더 부지런히 찍었겠구나 싶습니다.

 

좋아서 찍기 사진기를 사는 분들은 많지만, 참말 사진이 좋아서 사진기를 장만하는 분은 그다지 안 많아 보입니다. 슬픕니다.
좋아서 찍기사진기를 사는 분들은 많지만, 참말 사진이 좋아서 사진기를 장만하는 분은 그다지 안 많아 보입니다. 슬픕니다.최종규
▲ 좋아서 찍기 사진기를 사는 분들은 많지만, 참말 사진이 좋아서 사진기를 장만하는 분은 그다지 안 많아 보입니다. 슬픕니다. ⓒ 최종규

[84] 누구나 찍을 수 있는 내 사진 : 제가 찍은 이 헌책방 이 모습은, 다른 분들도 얼마든지 찍을 수 있습니다. 제가 서 있던 자리에 똑같이 서서, 저와 똑같이 초점을 맞추고 조리개를 열어서 같은 필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또는 디지털로 찍을 수 있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 느낌하고 조금도 틀림이 없이 찍을 수 있습니다.

 

제 사진은 이렇습니다. 누구나 찍을 수 있습니다. 누가 찍어도 좋습니다. 다만, 지난 아홉 해 동안 헌책방을 찍어 오는 동안, 제가 찍던 사진을 어느 누구도 찍어 주지 않았을 뿐입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이곳에서 이 사진을 찍을 사람이 없을지 모릅니다.

 

제 사진은 이래요. 남이 안 찍는다고 해서 찍는 사진은 아니지만, 남이 안 찍기 때문에 더 마음을 쏟아야 하는 사진은 아니지만, 때때로 외롭다고 느끼지도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곳이며 마음을 나누는 곳이며 책과 사람과 온갖 즐거움이 어우러지는 곳이기 때문에 찍는 사진입니다.

 

제가 찍는 사진은 어느 누구라도 찍을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찍어 주면 좋겠습니다. 뭐, 벌써 저 같은 사람 하나가 찍고 있으니 구태여 다른 사람이 찍을 까닭이 없을는지 모르겠는데, 같은 대상을 찍는다고 해도, 제가 보는 것과 못 보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선 자리에서 똑같이 사진을 찍는 분들이, '제가 아직 못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느끼고 받아들이면서 찍어 준다면 참으로 반갑고 기쁘겠습니다.

 

내 눈으로 보고 내 눈으로 본 모습을 찍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고서 찍은 ‘그럴싸한 사진’은 손사래칩니다.
내 눈으로 보고내 눈으로 본 모습을 찍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고서 찍은 ‘그럴싸한 사진’은 손사래칩니다.최종규
▲ 내 눈으로 보고 내 눈으로 본 모습을 찍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고서 찍은 ‘그럴싸한 사진’은 손사래칩니다. ⓒ 최종규

[85] 이렇게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아니었다면 : (참 훌륭하구나 싶은 사진책 하나를 조용히 끝까지 넘기고 나서 가만히 덮은 뒤) 이렇게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아니었다면, 참으로 놀랍다는 느낌이 들 만큼 훌륭한 사진을 남기지 못했겠구나 생각합니다.

 

[86] 좋은 사진책을 만날 때면1 : 사진 한 장 한 장 참 정성들여 찍었다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배어나니까, 책장을 넘기는 손은 자꾸만 자꾸만 더디어집니다.

 

헌책방 바닥 헌책방을 ‘지저분한 곳’쯤으로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은, 정작 헌책방에 와서도 ‘무엇이 어떻게 지저분한지’를 짚어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미안해 하지도 않습니다. 바닥에 책을 쌓아 놓기는 할 망정, 바닥에 쓰레기가 나뒹굴지 않는 헌책방 골마루입니다.
헌책방 바닥헌책방을 ‘지저분한 곳’쯤으로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은, 정작 헌책방에 와서도 ‘무엇이 어떻게 지저분한지’를 짚어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미안해 하지도 않습니다. 바닥에 책을 쌓아 놓기는 할 망정, 바닥에 쓰레기가 나뒹굴지 않는 헌책방 골마루입니다.최종규
▲ 헌책방 바닥 헌책방을 ‘지저분한 곳’쯤으로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은, 정작 헌책방에 와서도 ‘무엇이 어떻게 지저분한지’를 짚어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미안해 하지도 않습니다. 바닥에 책을 쌓아 놓기는 할 망정, 바닥에 쓰레기가 나뒹굴지 않는 헌책방 골마루입니다. ⓒ 최종규

[87] 좋은 사진책을 만날 때면 2 : 훌륭하게 담아낸 사진을 모은 책을 보면서, 내가 앞으로 찍을 사진에서도 이 좋은 모습을 본받고 배워서, 앞으로 누군가 내 사진을 보게 될 때에도, 지금처럼 그이도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8.27 15:48ⓒ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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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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