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3일,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 많은 일본인들이 찾아왔다. 일본에 의한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사죄와 우호, 평화의 마음을 새겨넣은 '전쟁피해자 추모비' 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나가사키, 키타큐슈, 후쿠오카와 벳부 등에서 다양한 형태의 평화활동을 하고 있는 시민들로 구성된 이들은 '스톤워크'라는 이름 아래 모였다. 스톤워크 팀에는 일본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평화로운 내일을 위한 9·11유족회'와 '피스 애비' 등의 평화단체를 포함해,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한·일·미 평화단체와 시민이 뜻을 모은 추모와 사죄의 걸음, 스톤워크
▲ 전쟁피해자를 추모하고 한일연대와 우호의 뜻을 담은 추모비가 공개되는 순간. 스톤워크 코리아 2007 팀은 이 비석을 끌고 부산에서부터 임진각까지 무거운 평화의 걸음을 내디딘 끝에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 이 추모비를 두기로 결정했다. ⓒ 전은옥
▲ 전쟁피해자를 추모하고 한일연대와 우호의 뜻을 담은 추모비가 공개되는 순간. 스톤워크 코리아 2007 팀은 이 비석을 끌고 부산에서부터 임진각까지 무거운 평화의 걸음을 내디딘 끝에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 이 추모비를 두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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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베트남 전쟁의 피해자, 장애인과 원폭피해자를 위한 활동을 펼쳐온 강제숙 평화시민연대 대표를 비롯하여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심진태 합천지부장,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의 최정의팔 소장, 군대와 폭력의 문제에 천착해온 독립다큐멘터리 감독 김환태씨 그리고 합천자연학교와 박현주 합천군 의원 등 수많은 이들이 뜻을 같이 하고 있다.
스톤워크란 모든 전쟁피해자를 추모하고 세계평화를 기원하며 무게 약 1톤의 비석을 끌고, 전쟁피해의 지역을 무거운 걸음으로 천천히 나아가며 지역주민과 그 땅의 아픔을 고스란히 만나는 평화순례다.
원폭투하 60년을 맞이했던 지난 2005년 여름, 원폭투하를 사죄하고 싶다고 하는 가해국 미국인들의 호소로 '스톤워크 재팬 2005' 팀이 꾸려졌고 피해국 일본의 나가사키에서 히로시마까지 미국인과 일본인이 함께 순례길에 나섰다. 당시 이 행사에 참석했던 일본인이 다음엔 한국으로 스톤워크를 가자는 제안을 했고, 그것이 '스톤워크 코리아 2007'로 이어졌다.
▲ 무게1톤의 무거운 비석에 일제의 침략과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사죄의 무거운 걸음을 내딛었던 스톤워크 코리아 2007 당시 모습. ⓒ 평화시민연대
▲ 무게1톤의 무거운 비석에 일제의 침략과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사죄의 무거운 걸음을 내딛었던 스톤워크 코리아 2007 당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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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스톤워크 코리아 평화순례를 할 당시의 모습. ⓒ 평화시민연대
▲ 2007년 스톤워크 코리아 평화순례를 할 당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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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워크 코리아 2007'은 일제시대 조선인이 강제연행을 많이 당했던 후쿠오카현의 치쿠호에서 키타큐슈까지 순례를 한 후, 현해탄을 건너 부산에서 시작해 합천을 지나 지리산을 넘고 광주, 천안, 서울을 거쳐 임진각과 금강산에 이르렀다.
합천에 평화공원과 자료관이 세워지길 바라는 일본인들
이후 스톤워크 한일실행위원회는 한국에서 원폭피해자가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에 비석을 두기로 결정하고, 그 제막식을 일 년만에 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단순히 추모비를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한일 시민이 함께 힘을 모아 합천에 원폭피해자를 추모하며 평화와 인권의 산 교육장이 될만한 평화자료관을 건립하기 위한 워크숍도 준비했다. 또, 미국이 일본에 사죄하고, 일본이 한국에 사죄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한국도 베트남에 사죄하며 베트남을 더 깊이 알아가자는 뜻에서 스톤워크 베트남을 준비하는 워크숍도 프로그램에 넣었다.
▲ 8월23일 사죄와 우호, 평화의 마음을 담아 일본인들이 제작한 무게1톤의 추모비 제막식을 시작하는 순간. ⓒ 전은옥
▲ 8월23일 사죄와 우호, 평화의 마음을 담아 일본인들이 제작한 무게1톤의 추모비 제막식을 시작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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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피해자 추모비 앞에서 한일 평화의 노래를 합창하고 있는 일본측 스톤워크 참가자들. ⓒ 전은옥
▲ 전쟁피해자 추모비 앞에서 한일 평화의 노래를 합창하고 있는 일본측 스톤워크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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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워크 코리아의 미국쪽 참가단체인 '피스애비(The Peace Abbey)'의 돗 월시 목사는 "원자폭탄이 불러일으킨 고통은 방사능 효과로 인한 피해를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완전히 알 수 없는 그런 종류"라면서 "우리를 가르칠 사람은 바로 자신이 당한 공포스런 경험을 이야기해줄 피폭 생존자이며, 이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우리는 연민과 슬픔, 그리고 핵무장을 멈추기 위해 앞으로 헌신적으로 일해야겠다는 사명감에 가득차게 된다"고 합천시민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또 '평화로운 내일을 위한 9·11 유족회'의 안드레아 르블랑씨는 "추모비는 그 막중한 무게 때문에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모두가 한 발 한 발 어깨를 맞대고 똑같은 방향으로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디 이 스톤워크를 계기로 한국과 일본, 미국 시민들 모두가 연민과 소망을 갖고 증오와 적대심, 핵무기가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향해 상호 이해와 용서의 한 발 한 발을 내딛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증오와 복수보다, 슬픔을 행동으로 바꾼 원폭피해자들 그리고 9·11 유가족
9·11유족회를 비롯한 미국측은 이번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2001년 9·11 사태 이후유가족들이 받았던 최초의 위로는 바로 원폭생존자들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고통을 통해 우리의 고통을 이해했다. 피폭자 여러분들은 핵무기 제거를 위한 헌신적인 노력뿐 아니라 복수의 이름으로 가해진 폭력으로 희생당한 희생자 가족에게 손 내미는 것을 통해 우리에게 밝은 횃불이 되어 주었다"면서 "증오와 복수보다 연민을 택함으로서 슬픔을 행동으로 바꾸기로 한 우리 모두에게 모범이 되었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스톤워크 한국측 실행위원인 최정의팔 목사의 경과보고로 시작된 제막식 행사는 실제 자신이 원폭피해자이고 나가사키에서 평화활동을 펼치고 있는 히로세 마사히토씨와 합천군 박현주 민주노동당 의원 등의 연대메시지, 참가자들의 합창 순으로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추모비를 덮고 있던 하얀 천을 한일 시민이 함께 걷어내면서 제막식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참가자들은 추모비 위에 국화를 헌화하며 그 자리를 오래도록 떠나지 못했다.
▲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앞뜰에 세워진 전쟁피해자 추모비 앞에 헌화를 하고 빙둘러 모인 '스톤워크코리아2007' 평화순례 한일 참가자들과 원폭피해자1,2세. ⓒ 전은옥
▲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앞뜰에 세워진 전쟁피해자 추모비 앞에 헌화를 하고 빙둘러 모인 '스톤워크코리아2007' 평화순례 한일 참가자들과 원폭피해자1,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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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천자연학교에서 올림픽 야구결승전의 열기도 잊은 채, 밤이 깊도록 열띠게 진행된 합천원폭평화자료관 건립을 위한 워크숍. ⓒ 전은옥
▲ 합천자연학교에서 올림픽 야구결승전의 열기도 잊은 채, 밤이 깊도록 열띠게 진행된 합천원폭평화자료관 건립을 위한 워크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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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막식에는 스톤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한일 시민뿐 아니라, 원폭피해자복지회관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다른 원폭피해자 1,2세도 함께 했다. 스톤워크 팀은 제막식을 마친 뒤, 원폭피해자 1세와 2세 환우의 증언을 들으며 교류회를 가진 후, 합천 자연학교로 이동하여 합천 평화공원과 원폭평화자료관 건립을 위한 워크숍을 밤 깊도록 진행하였다. 이튿날에는 한·일·미가 공동으로 깊게 책임의식을 공유하며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스톤워크 베트남을 위한 워크숍'을 1, 2 부에 걸쳐 진행하였다.
이들은 합천에서 이틀간의 여정을 마친 뒤에는 지리산으로 이동하여 원폭피해자와 함께 지리산 자락을 걷고 물놀이와 교류회 등도 가졌다. '원폭피해자와 함께 하는 스톤워크 제막식 및 워크샵 2008'이라는 이름으로 4박 5일간의 여정을 마친 이들은 수요일 오후 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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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톤워크 코리아 2007'의 일본측 실행위원이며 나가사키 대표였던 일본인 원폭피해자이자 평화운동가인 히로세 마사히토씨. 가장 왼쪽의 마이크를 잡은 이가 히로세씨다. ⓒ 전은옥
▲ '스톤워크 코리아 2007'의 일본측 실행위원이며 나가사키 대표였던 일본인 원폭피해자이자 평화운동가인 히로세 마사히토씨. 가장 왼쪽의 마이크를 잡은 이가 히로세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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