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캉 나캉 살자!"와 "너랑 나랑 살자!"는 다르다

가을, 모국어로 사색하는 아이들이 사라진다면?

등록 2008.08.29 08:31수정 2008.08.29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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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가을이 오고 있다.

가을이 오고 있다. ⓒ 안준철


책을 덮자
오늘은 영어시간이지만
모국어를 배우자
아, 모국의 하늘을 바라보자

가을
영어로는 '폴'
혹은 '오텀'
어느 것도 가을스럽지 않구나

오늘은 모국어를 배우자
가을-
입 안에 양칫물이 남아 있었니?
아니면, 꽈리를 깨물었니?

가을
가실
가슬
갈…갈바람

아이들아,
오늘은 모국어를 배우자.

-졸시, <가을수업>

가을이다. 가을이 오면 나는 가을수업을 한다. 책을 덮게 하고, 하얀 백지를 한 장씩 나누어주면서 그 위에 무엇이든 적어보라고 말한다.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를 한 편 써도 좋고,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친구에게 편지를 쓰듯이 써도 좋다고 말해준다. 그러자 한 아이가 이렇게 묻는다.


"영어로 써요?"
"너 영어로 시 쓸 수 있어?"
"아니요!"

아이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다시 이렇게 말한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영어로 쓰자면 팍팍 못 쓸 거 아니야. 오늘은 모국어로 써."
"모국어가 뭔데요?"
"응, 우리말이 모국어야. 영어로는 '마더 텅'이라고 하지."

그렇게 말해준 뒤에 나는 칠판에 'mother tongue'이라는 우리말 '모국어'에 해당하는 영어의 철자를 써준다. 그것이 그날 영어수업시간에 배운 유일한 영어인 셈이다. 

내가 한 해 동안 영어 교사로서 한 학급을 들락거리는 시간은 어림잡아 170시간. 그중 한 시간, 많아야 두세 시간을 영어 교사가 아닌 그냥 교사로, 혹은 모국어를 사랑하는 시인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하여 아직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내 스스로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굳이 귀중한 영어시간을 축내어 가을수업이라는 것을 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 해 전, 긴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를 맞이한 첫 수업시간이었다. 방학을 즐겁고 의미 있게 보낸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했더니 딱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 아이를 앞으로 불러내어 무슨 즐거운 일이 있었는지 말을 해보라고 했더니 이런 식이었다.   

"부산에 갔어요."
"부산 어디?"
"해운대요."

"누구랑 갔는데?"
"친구들이랑요."
"친구 몇이서 갔는데?"
"네 명이요."

"그럼 이렇게 얘기하면 되잖아. 저 방학 때 친구 네 명이랑 같이 부산 해운대에 놀러갔는데요…. 자, 해운대에 놀러가서 무슨 일이 있었어?"

"예? 그냥 놀았는데요."
"뭐하고 놀았는데?"
"물놀이하고요."
"그렇게 단답형으로 말하지 말고 좀 길게 말해봐. 영어로 말고 우리말로."

그날 녀석은 끝내 급우들 앞에서 방학 동안에 있었던 일을 영어가 아닌 우리말로 들려주는 일에 실패하고 제 자리로 되돌아갔다. 말을 만들 줄 몰라 쩔쩔매며 난감해 하던 그 아이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우리말조차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수업을 하러 교실에 들어가 보면 그 전 시간에 배운 내용들이 지워지지 않고 칠판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언젠가는 전 시간이 국어시간이었는지 칠판에 '서정적 자아'란 글씨가 적혀 있었다.

a  노란 꽃이 핀 길이 꿈길처럼 영롱하고 아름답다

노란 꽃이 핀 길이 꿈길처럼 영롱하고 아름답다 ⓒ 안준철


칠판에 적힌 글씨를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아이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방금 전 수업시간에 '서정적 자아'에 대해서 배운 아이들이 아닌가. 나는 한 아이를 붙잡고 흥분된 어조로 이렇게 물었다. 

"너 전 시간에 서정적 자아에 대해서 배운 거야?"
"예?"
"서정적 자아 말이야. 선생님이 서정적 자아가 뭐라고 말씀하시던?"
"예. 그런 거 배운 적 없는데요?"
"무슨 소리야. 여기 칠판에 써 있잖아. 서정적 자아라고. 기억해봐. 선생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

그 아이는 수업시간에 딴 짓을 한 것일까? 그렇게만 볼일은 아닌 듯싶었다.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봐도 대답할 생각은 안 하고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한 것을 보면.  

나는 가끔 원어민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작시를 영어로 번역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 작업이 만만치가 않다. 내 알량한 영어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앞에서 소개한 '가을 수업'이란 시를 영역하다가 중도포기를 한 것은 바로 다음 대목 때문이었다. 

가을
가실
가슬
갈, 갈바람

가을의 방언인 '가실'이나 '가슬'을 무슨 수로 번역한단 말인가. 지방 방언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누구 영어를 썩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경상도 방언인 '너캉 나캉 살자'라는 말을 한 번 번역에 보시라.

'너캉 나캉 살자'는 '너랑 나랑 살자'와 그 느낌과 맛이 사뭇 다르다. 하지만 영어로 번역해놓으면 그 독특한 맛이 사라지고 만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테지만 어떤 인사는 우리나라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내기 위해서는 애당초 영어로 번역이 가능한 글을 써야 한다고 했다던가?

하긴 나도 가끔은 그런 생각에 빠질 때가 있다. 말하자면 영어를 잘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배경을 지닌 필리핀 사람들이 부러운 그런 심리 말이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나 독일처럼 그들의 모국어가 확실히 알려진 나라가 아닌 스위스나 덴마크 같은 나라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하고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들면서, 그것이 그 나라 발전을 위해서도 더 좋은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화들짝 놀란다. 오직 한 가지 어족만 존재하는 바다를 상상해보라. 그 물고기가 아무리 영양이 풍부하여 인류의 건강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해도 다양성이 사라진 획일화의 세계는 얼마나 끔찍한 악몽인가.

최근에 한 교육계 인사가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경쟁을 시켜야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경쟁이 심화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선 점수로 환산되지 않는 것들은 점점 가치를 상실하게 될 것이고, 그러다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다양한 아름다움들이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이미 그런 징조가 나타나고 있지만 모국어로 사색하는 아이들도 점점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것이 하나의 재앙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적다는 것은 위험하고도 슬픈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가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새가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모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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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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