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진출길 열린 조중동, 왜 조용하지?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신문방송 겸영 허용... 계산 복잡한 언론사들

등록 2008.09.05 17:23수정 2008.09.0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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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2일 오후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방송의날 축하연에 참석해 장대환 한국신문협회장,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건배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이명박 대통령이 2일 오후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방송의날 축하연에 참석해 장대환 한국신문협회장,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건배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예상했던 대로다. 크게 벗어난 것은 없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청와대 업무보고 내용이 그렇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역시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허용하겠다는 내용이다. 케이블TV와 IPTV의 종합편성 채널과 보도전문채널에 대해 신문의 겸영을 허용하겠다고 했다. 한나라당이 집권 전부터 주장해왔던 일이다. 예견됐던 일이다. '일단'이란 조건이 붙었지만, 지상파 방송을 그 대상에서 제외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대기업의 방송 진입 허용의 폭을 넓히겠다는 것은 이미 나온 이야기다. 방송 진입을 제한하는 대기업의 규모를 '자산 3조원 이상'에서 '자산 10조원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반응 또한 예상대로다. 조·중·동은 5일 일제히 이 내용을 집중 보도했다. 세 신문 모두 1면에 비중있게 보도한 뒤 관련 기사를 한 두면씩 배정해 집중 부각시켰다. 그동안 신문 방송 겸영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신문들인 만큼 당연하다.

 

반면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는 간단하게 보도하거나, 비판적인 보도 태도를 보였다. <한겨레>는 1면에 간단하게 사실보도만 했다. <경향신문>은 1면 보도에 이어 별도 지면에 "MBC·KBS2 등 대기업에 넘길 방침"이라는 언론단체 반응을 부각시켰다. <국민일보>나 <서울신문> <세계일보> <한국일보>는 2면에 사실 보도만 했다.

 

미개척의 길 '신-방 겸영', 자멸의 길 될 수도

 

신문들의 이런 보도태도는 이 문제에 대한 신문들의 입장과 이해관계를 정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종합편성채널이나 보도 전문채널을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당장 투자할만한 여력이나 준비가 돼 있는 신문사는 그리 많지 않다. 조·중·동 정도가 그래도 욕심을 내고 있다. 나름대로 준비도 해왔다. 다른 신문사들로서는 사실상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높다.

 

주목되는 점은 조·중·동 또한 사설 등을 통해 이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점이다. 그동안 조·중·동이 주장했던 바를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환영 사설'이라도 한 편 쓸 만한 사안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왜 그럴까? 잠시 뜸을 들이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일찌감치 예견됐던 내용인 만큼 별다른 논평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계산이 쉽지 않은 측면이 더 강할지 모른다. 오매불망 기다려왔던 일이지만, 막상 그 문이 열리니 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보도전문 채널이나 종합편성 채널에는 수백억 수천억원의 막대한 투자가 요구된다. 그래놓고도 언제 수익을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가기는 해야겠지만, 위험이 크다. 그 앞날이 보장되지 않는 미개척의 길이다.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철저하게 망가질 수 있는 자멸의 길이기도 하다.

 

게다가 대기업이라는 새로운 경쟁자들도 있다. 파트너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정반대일 수도 있다. 일단 문이 열리면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돈의 논리가 작동한다. 이해의 관계가 복잡하고, 그 충돌이 격심할 수 있다. 당장의 이해와 상충되는 변수도 많다. 조·중·동간 이해의 충돌 가능성도 크다. 지금까지는 한 편이었지만, 앞으로는 그 주도권을 두고 극심한 경쟁 관계로 돌입할 개연성이 크다. 방송이라는 새로운 진출 분야를 놓고 치열한 경합이 불가피하다.

 

미디어 광고시장 포화상태... 황금알 낳는 거위 드물어

 

서울 세종로 네거리 코리아나호텔 부근 조선일보 사무실 밀집지역. ⓒ 오마이뉴스 권우성

서울 세종로 네거리 코리아나호텔 부근 조선일보 사무실 밀집지역.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것은 이 정권에도 큰 정치적 부담이다. 집권 과정에서, 그리고 집권 이후에 이 정권은 이들 세 신문에 큰 빚을 지고 있다. 갚을 빚이 있다.

 

하지만 잘못 다뤘다가는 부메랑이 돼 우군을 잃을지도 모른다. 골고루 나눠주면 좋겠지만, 그 일이 쉽지만은 않다. 조·중·동만 배려할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다른 모든 신문을 적으로 돌리게 될지 모른다. 여기에 케이블TV 분야에서 덩치를 키워온 CJ그룹을 비롯해 대기업이라는 자본의 이해관계도 얽혀 있다.

 

당장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독점해온 방송광고대행 서비스 경쟁체제 도입을 놓고 정부 여당 안에서는 물론 조·중·동도 미묘한 반응의 차이를 보인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내년까지 민영 지상파방송광고 대행업체를 신설해 경쟁 체제로 가겠다고 밝혔다. 개방과 경쟁의 원리를 기본으로 한 방송 정책 측면에서는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하지만 정작 국회에서 방송법 개정의 관건을 쥐고 있는 고흥길 문화관광체육방송위원장은 어깃장을 놓았다. 경쟁체제로 갈 경우 당장 그 타격이 예상되는 지역민방이나 종교 방송 등 '작은 방송'들에 대한 보완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작은 방송' 뿐만이 아니다. 신문의 처지도 고려한 발언이다.

 

민영미디어렙을 도입할 경우 신문은 그 1차적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방송 광고 대행이 경쟁체제가 될 경우 방송 광고 시장은 당연히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방송광고 시장의 확대는 곧 신문광고 시장의 위축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렇지 않아도 신문 광고는 매년 크게 줄고 있다.

 

조·중·동으로서도 반길 수만은 없는 일이다. 방송 진출은 당장 손에 쥘 게 없는 그림일 뿐인데, 신문 광고 수입은 당장 목줄을 죄게 된다. <동아일보>가 "신문이나 잡지를 포함한 매체 간 불균형 심화"등을 이유로 보완책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광고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다. 반면 새로운 미디어는 급증하고 있다. 뉴미디어가 돈이 되고 있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 한 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 것이란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위성DMB 등이 대표적이다. 다음 달부터 본격적인 서비스가 예상되는 IPTV케이블도 그 전망이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TV도 돈이 되는 채널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매력적인 YTN... 청와대, 지상파 위협 끈 안놔

 

이 때문에 신문 방송 겸영 허용 조치와 관련해서는 YTN의 향배가 주목된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매년 수익을 올리고 있는 YTN이야말로 가장 매력적인 타깃이다. 코스닥에 상장돼 있는 만큼 지분 매입을 통해 YTN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투자처일 수 있다.

 

신재민 문화부 차관은 얼마 전 공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YTN 주식을 모두 매각할 것이라고 밝혀 논란이 됐다. 특혜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조금씩 내다팔고 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청와대나 문화부 차원에서는 부인하고 나섰지만, 특정 신문사에 YTN을 넘기려는 시나리오 아니냐는 의구심은 여전하다.

 

지상파 방송은 일단 제쳐놓았다. 저항이 크고, 정치적 폭발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협의 끈은 놓지 않았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방통위 보고에서 빠진 부분을 보충했다. "현재 '1민영 다공영 방송' 체제를 '1공영 다민영' 체제로 바꾸는 방안에 대해 큰 틀의 방향은 1공영 다민영 체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MBC와 KBS2의 민영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밑그림조차 불투명하다. 한 마디로 말은 하고 있지만,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신문·방송 겸영 문제는 조·중·동 배려와 산업적 차원에서 바로 풀어나가되, 지상파 재편 문제는 정권 차원에서 시간을 두고 다뤄나가겠다는 구상이다.

2008.09.05 17:23 ⓒ 2008 OhmyNews
#신문방송 겸영 #MBC 민영화 #방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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