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8.09.06 12:41수정 2008.09.0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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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두 밥상
저녁 밥상을 차려 왔는데
어머니가 안 드시겠다고 하면서
자리에 누워 버리셨다.
막 한 밥이어서 냄새도 구수한 게
아주 딱인데
한 술 드시고는 숟가락을 내려 놓으셨다
"너나 다 먹어라."
자리에 누우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게 있었다.
'떡국 안 끓여 오고 웬 이따위 밥이냐'하는 심정이신가 싶었다.
밥이 다 돼서 밥상을 차려야겠다 싶은 때에
누워 있던 어머니가 역정 섞인 채근을 하셨었다.
"어서 나가서 떡국 안 끓여오고 뭐 하노?"
"떡국요? 웬 떡국을…."
난데없는 떡국 이야기에
밥이 지금 다 됐으니
저녁은 밥을 드시고 떡국 드시고 싶으면
내일 해드리겠다고 했는데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낮에 경남 안의에 사시는 외사촌 형님네 부부가 와서
어머니 드실 한과랑 곶감을 내놓으시면서 설 가래떡도 주고 가셨다
어머니가 그걸 썰고 싶다고 하셔서
부엌칼을 숫돌에 쓱쓱 갈아가지고 방에 도마랑 갖다 드렸다
그런데 두 줄을 써시고 너무 딱딱해 못 썰겠다면서
내일 삼발이 놓고 쪄서 말랑말랑해지면 다시 썰자고 하셔서
그러자고 했었다.
어머니는 저녁에 떡국 드실 생각을 하면서 떡을 써신 게 분명했다.
그런데 떡국을 안 해 주고 밥을 해 왔으니
기분이 많이 상하신 것 같다
어머니는 누워 있는데
나 혼자서 밥을 먹을 수는 없는 법
다시 부엌으로 나가
어머니 혼자 드실 떡국을 끓였다
며칠 전 아내가 손수 만들어서 갖다 준
만두도 하나 넣었다
멸치 빻아 놓은 것 반 숟갈 넣고
파 썰어 넣고, 김 넣고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췄다.
국물 맛이 제법이었다
떡도 아주 정확한 때에 넣어서 쫄깃한 상태가 되었을 때
퍼왔다
떡국 끓여 왔다는 말에 어머니가 부스스 일어나셨다.
그리고는 밥그릇은 "너나 먹어라" 하면서
내쪽으로 밀어 놓으셨다
나는 밥그릇이 두 개가 됐다.
어머니는 정신없이 드시다가
갑자기 내 생각이 났나 보다
큼직한 만두를 하나 건져 내시더니
나에게 주셨다.
식사가 다 끝날 때까지 한 말씀도 안 하셨다
"간 잘 맞췄죠?"라고 해도 묵묵부답.
"대홍이 형님네 떡국이 쫀득쫀득한 게 맛있죠?"해도 묵묵부답.
"내일 또 끓여 드릴게요"해도 묵묵부답.
아까 화냈던 일이
멋쩍으신 걸까
그렇겠지
떡 하니 차려진 밥상 놔두고
새삼스레 떡국 끓이느라 왔다 갔다 하는 나를
다 보셨으니
뭐라 대꾸하기가 좀 그러시겠지.
국물 한 방울도 안 남기고 떡국을 다 드신 어머니.
마지막을 멋진 사고(?)로 장식하셨다
설거지를 하고 탈수가 된 빨래를 한 아름 안고 방에 들어오는데
어머니가 옷에 잔뜩 오줌 실수를 하신 것이었다.
학수고대하던 떡국 상을 받았겠다
후룩후룩 정신없이 드시다
오줌 나오는 것도 잊으신 거다.
아들이 들어오기 전에 수습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젖은 옷을 벗어 방바닥을 닦고
옷장에서 새 옷을 꺼내 입으시려는 순간 아들이 방에 들어 온 것이다
"내가 옷에 오줌 쌀까 봐 물 한 잔도 조심하고 국은 아예 입에 대지도 않고 밥만 먹는 사람인데…."
하시다가 말을 뚝 그치셨다.
차린 밥을 물리고
떼를 써서 (떡)국을 드시고는
바로 오줌을 눠 버렸다는 생각을 하신 것이다.
멈칫 하고 나를 쳐다보는 어머니.
젖은 옷과 어머니를 손가락질 하며 폭소를 터뜨리는 나.
우리 모자는 오줌 묻은 옷을 사이에 두고
한참을 웃었다
두 종류의 웃음을.
2008.09.06 12:41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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