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이 삐친 거야! 꽃인들 그 맘을 모르겠어?"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195] 큰벼룩아재비

등록 2008.09.16 11:33수정 2008.09.1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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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풀 일액현상이 만들어낸 보석 ⓒ 김민수

▲ 오이풀 일액현상이 만들어낸 보석 ⓒ 김민수

 

추석 다음 날, 벌초를 한 후에 성묘를 마친 정갈한 무덤가에 섯습니다. 추석날 무덤가를 거닐다가 제초기에 잘린 오이풀들이 새순을 낸 것을 보았거든요. 오이풀은 앨액현상을 잘 보여주는 식물입니다. 일액현상이란 제 몸에 남은 물을 배출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른 아침 이파리 끝에 송글송글 맺힌 물방울은 그야말로 신비 그 자체입니다.

 

봄에는 매발톱이나 금낭화의 이파리, 여름에는 찔레의 연한 이파리, 가을에는 쇠뜨기와 오이풀의 이파리에서 일액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비 온 다음 날이면 거의 어김이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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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벼룩아재비 이른 아침 무덤가에서 피어난 큰벼룩아재비가 이슬을 송글송글 맺고 있습니다. ⓒ 김민수

▲ 큰벼룩아재비 이른 아침 무덤가에서 피어난 큰벼룩아재비가 이슬을 송글송글 맺고 있습니다. ⓒ 김민수

 

이슬을 담기 위해 동트기 전에 찾은 무덤, 오이풀과 잔디에 맺힌 이슬방울을 찍느라 분주했습니다. 큰 맘 먹고 새벽에 나섯는데 이슬이 그리 많이 맺히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쇠뜨기나 오이풀은 실망시키지 않고 물방울 보석을 송글송글 달고 있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오이풀에 맺힌 이슬과 풀잎에 맺힌 이슬을 담았을까, 작고 하얀 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미 성큼성큼 걸어다닌 탓에 무지막지하게 밟힌 꽃들도 많았습니다. 그제서야 순백의 작은 꽃들이 무덤가에 지천인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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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벼룩아재비 벼룩과 닮았다기 보다는 작아서 붙여진 이름 같습니다. ⓒ 김민수

▲ 큰벼룩아재비 벼룩과 닮았다기 보다는 작아서 붙여진 이름 같습니다. ⓒ 김민수

 

무덤가에 엎드려 꽃을 담습니다. 이슬이 적게 내렸어도 새벽풀섶은 촉촉하게 젖어있기에 온 몸에 차가운 기운이 전해집니다.

 

아재비는 아저씨로 삼촌, 오촌 당숙뻘을 뜻하는 말입니다. 식물에 아재비가 들어가면 닮았다, 비슷하다는 뜻이 있답니다. 그런데 벼룩을 닮았다고 하고, 게다가 '큰'자까지 붙었습니다. 벼룩나물을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벼룩나물보다 크지도 않습니다. 벼룩이 커봐야 벼룩이지요. 그래도 벼룩에 비하면 엄청나게 큰 꽃이지요. 아마도 모양새에서 벼룩과는 연관성이 없고, 작은 꽃이라 '벼룩'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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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벼룩아재비 벌초를 한 후에 자란 꽃들이라 더 신비롭습니다. ⓒ 김민수

▲ 큰벼룩아재비 벌초를 한 후에 자란 꽃들이라 더 신비롭습니다. ⓒ 김민수

 

그런데 원하는 대로 담기질 않습니다. 어제도 참취, 물매화, 물봉선, 고마리, 쑥부쟁이, 벌개미취, 송이풀, 진득찰, 가막사리, 송이풀 등우리네 강산에서 피어나는 가을꽃들을 만나 담아보려고 했는데 이전처럼 잘 담아지질 않았습니다.

 

아내가 이렇게 진단을 합니다.

 

"들꽃이 삐친 거야. 당신 요즘 꽃보다 이슬에 빠져 살잖아. 들꽃이라고 그 맘을 모르겠어?"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들꽃에 푹 빠져지내다가 이슬사진에 빠진 후에는 풀섶의 꽃들도 잘 보이질 않고, 보아도 어떻게 담아야할지 감이 오질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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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벼룩아재비 작은 꽃들 올망졸망 피어나고 있습니다. ⓒ 김민수

▲ 큰벼룩아재비 작은 꽃들 올망졸망 피어나고 있습니다. ⓒ 김민수

 

보려고 하는 것이 보이는 법이구나 싶습니다. 큰벼룩아재비라는 꽃은 도감상으로만 만나다 실물로는 초음 만나 꽃이었습니다. 맨 처음에는 이름도 헛갈렸지요.

 

그 무덤가에는 참 많은 꽃이 피어납니다. 들판에 피어나는 작은 들꽃들은 물론이고 봄이면 할미꽃, 솜방망이도 피고, 여름에는 타래난초도 핍니다. 그렇게 가을에는 그냥저냥 가는가 싶었는데 흔하게 피어나는 물봉선과 며느리밥풀꽃 말고 큰벼룩아재비까지 피어나니 무덤에서 잠자고 있는 망자가 들꽃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사람이었나 봅니다.

 

할머니 산소 근처에 있는 무덤이니 촌수를 따져 들어가보면 '아재비' 정도의 호칭을 붙일 수 있는 분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니 그 무덤가에 피어난 '큰벼룩아재비'가 더 정겨워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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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벼룩아재비 너무 작아서 꽃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 김민수

▲ 큰벼룩아재비 너무 작아서 꽃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 김민수

 

쪼그려 앉는 것만으로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작은 꽃, 더 낮게 몸을 숙이고 절을 하듯 해야만 비로소 눈맞춤을 할 수 있는 꽃,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면 아예 누워서 볼을 땅에 대야만 하는 꽃, 그렇게 작은 꽃이니 피어있어도 누구와 눈맞춤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할 때 잔지뿐 아니라 그들도 싹뚝싹뚝 잘려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풀들도 전부 잘려나가니 큰벼룩아재비같이 작은 꽃들에게는 기회가 온 것이지요. 그 틈을 타서 피어나니 크게 피어날 수도 없었겠지요. 그 앙증맞은 작은 꽃에 들어있는 마음은 참으로 큽니다. 작은 들꽃 한 송이에 온 우주의 법칙이 들어있음을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9.16 11:33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큰벼룩아재비 #일액현상 #오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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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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