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빠지고 맛에 빠지는 가을 봉평 여행

오감만족 봉평 100배 즐기기

등록 2008.09.22 09:40수정 2008.09.2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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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생가 뒤 야트막한 언덕도 온통 메일꽃이 한장이다 ⓒ 김혜원

이효석 생가 뒤 야트막한 언덕도 온통 메일꽃이 한장이다 ⓒ 김혜원

"봉평면 사무소에 전화해 보니까 효석문화제는 15일 날 끝났지만 음력이 너무 일러서 이번 주에 가도 메밀꽃을 볼 수 있다던데."

"그래, 메밀꽃 보고 흥정계곡에 있는 허브나라에 들르면 되겠네."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 식객을 촬영했던 장소도 멀지 않더라. 전통음식문화체험관이라는데 박물관도 있고 식사도 할 수 있데."

 

토요일이었던 지난 20일. 짧은 추석 연휴동안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한 며느리들이 뭉쳤다. 연휴동안 애쓴 스스로에게 상이라도 주듯 휴식과 같은 짧은 여행을 계획한 것이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 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중)

 

분당에서 2시간을 달려간 봉평. 장평 IC를 돌아 봉평 땅에 들어서자마 군데군데 들어선 널따란 메밀꽃밭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원한 가을바람 속에 가득한 맑은 공기가 가슴속깊이까지 들어오니 도심 속 공기에만 익숙했던 아줌마들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온다.

 

"와아~ 시원하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아."

"이 길을 허생원과 동이가 걸어갔던 거야?"

"그랬겠지. 그러다 주막을 만나면 메밀부침에 막걸리도 한잔 했을테고."

"그러고 보니 아줌마 얼굴이 충주댁으로 보이는걸."

"우하하하. 어이구 분당댁, 글케 봐주니 고맙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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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을 뿌려놓은 듯 흐드러진 메밀꽃. 뒤로 이효석 생가가 보인다 ⓒ 김혜원

소금을 뿌려놓은 듯 흐드러진 메밀꽃. 뒤로 이효석 생가가 보인다 ⓒ 김혜원

봉평은 면 전체가 이효석과 <메밀꽃 필 무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생원과 동이가 나귀와 함께 느릿한 걸음을 걸어 향했음직한 조붓한 봉평 장터골목을 지나 맑은 물이 흐르는 남안교를 건너니 허생원과 성씨 처녀가 사랑을 나누었다는 물레방앗간이 보인다.

 

왜 하필 물레방앗간이었을까? 지금도 쉬임없이 빈 방아질(?)을 해대고 있는 커다란 물레방아를 보며 소설 속 '달빛 흐드러진 그날 밤'을 떠올렸을까 아줌마들은 살짝 부끄러운 웃음을 지어본다.

 

오후가 되면서 맑았던 하늘에서 한 두 방울 씩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러다 폭우가 되는건 아니겠지' 한편 걱정을 하며 이효석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니 널따란 메밀꽃 밭이 먼저 손님을 맞는다.

 

비를 맞아 촉촉이 젖어있는 메밀꽃밭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이효석은 소금을 뿌려 놓은 듯 하다고 했지만 아침을 먹지 않고 떠나서 일까 내 눈엔 자꾸 팝콘을 뿌려 놓은 듯 먹음직스러워 보이기만 하니 참 이상한 일이다.

 

야트막한 언덕위에 자리한 박물관을 돌아 내려오면 이효석의 생가를 복원해 놓은 생가 터가 있다. 짚과 황도로 지어진 초가집에서 몇 걸음만 더 내려가 삽다리를 건너면 허생원과 함께 했을법한 나귀도 볼 수 있다. 착한 얼굴을 가진 나귀가 예뻐서 가까이 다가가 보지만 코를 찌르는 말똥냄새에 질급을 하고 손사래를 치는 아줌마들. 오늘은 소녀가 된 듯 귀엽기만 하다. 

 

부슬 부슬 내리는 가을 비를 맞으며 소설 속 허생원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보니 허기가 진다. 봉평에 오면 유명한 메밀국수를 먹어야 한다지만 메밀국수는 돌아오는 길에 먹기로하고 드라마 <식객> 좔영지로 유명하다는 '정강원'에서 특별한 점심을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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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음식문화 체험관 '정강원'에 들어서면 드라마 <식객>에 등장했던 정갈한 장독대가 손님을 맞는다. ⓒ 김혜원

한국전통음식문화 체험관 '정강원'에 들어서면 드라마 <식객>에 등장했던 정갈한 장독대가 손님을 맞는다. ⓒ 김혜원

봉평 시내에서 20분 거리인 한국전통음식문화체험관 '정강원'은 드라마 <식객>에 등장한 멋진 장독대로 유명하다. 정강원에서는 연중 김치 만들기, 메주 쑤기, 장 담그기 등 전통음식 만들기를 체험할 수도 있지만 한때 대통령의 밥집으로 유명했던 홍대근처 한식집 '동천'을 운영했다는 71세 조정강 원장의 장맛과 어우러진 전통 한식을 맛 볼 수 있다해서 소문이 나기 시작한 곳이다.

 

아직은 크게 소문이 나지 않아서 인지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 더욱 분위기 있는 정강원. 곱게 자란 채마밭을 지나 식당 입구에 다다르니 드라마 속에서 눈에 익은 장독대가 손님을 반긴다. 드라마 속에서 조여사(김애경)가 그리도 애지중지 관리했던 장항아리들. 모든 맛의 처음이며 끝이라는 장항아리를 보니 밀려드는 배고픔을 참기가 힘들다.

 

예약 필수라는 소문을 듣고 한 시간쯤 전에 미리 예약을 해두어서 그런지 도착하자마자 식사가 준비된다. 3만원부터 있다는 한정식도 있지만 아줌마들은 한정식보다는 1만5천 원짜리 비빔밥이 더 좋단다.   

 

"이효석 선생님은 그 시절에도 참 멋쟁이셨데요.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두 시간 걸음을 마다치 않으셨다더라구요. 비빔밥에 많게는 열여덟 가지 야채가 들어가지만 지금은 야채가 귀한 철이라 아홉 가지가 들어 가구요. 들어가는 야채들 대부분은 텃밭에서 무농약으로 기른 겁니다. 장 역시 원장님이 직접 담가 그 맛이 일품이랍니다."

 

정강원에서 다도를 가르치기도 한다는 아주머니는 비빔밥을 맛있게 비비는 법과 비빔밥 속에 들어가는 각종재료들의 장점은 물론 봉평과 이효석 선생에 대해서도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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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 선생님이 설명과 함께 정성껏 비벼주신 비빔밥. ⓒ 김혜원

다도 선생님이 설명과 함께 정성껏 비벼주신 비빔밥. ⓒ 김혜원

정성들인 손길 때문인지 조곤조곤한 설명 때문인지 더욱 맛있는 비빔밥을 게눈 감추는 먹어치우고 살얼음이 동동 뜬 메밀차까지 한잔 마시고 나니 천국이 따로 없다.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서 좋은 공기마시며 점심을 먹고 나니 신선이 된 것 같아.”

“그러게 집에서 두 시간이면 올 수 있는데도 왜 그리 떠나지지가 않는지 말이야.”

 

점심을 먹은 후 전통음식문화전시실에 들러 오래된 전통 조리기구들과 정강원 맛의 비밀이라는 지하 절임음식 저장고까지 둘러보고 다시 봉평 '허브나라'로 길을 잡았다. 각종 허브와 꽃들이 만발해 있을 아름다운 숲속 정원 ‘허브나라’를 생각하니 마음이 바빠진다. 

 

허브나라가 있는 흥정계곡은 봉평 시내에서 20여분 거리로 봉평 여행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특히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며칠을 머물러도 더 있고 싶은 곳이 아닐 수 없다.

 

허브나라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어느새 코가 시원해진다. 인간이 생활하기에 가장 좋은 높이라는 해발 700 미터의 평창. 당연히 물 좋고 공기도 좋지만 ‘허브나라’안의 공기는 그런 좋은 평창의 공기 속에 몸에 좋은 허브를 섞어 놓은 듯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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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을 흩뿌린듯 화사한 가을 날의 허브나라 ⓒ 김혜원

물감을 흩뿌린듯 화사한 가을 날의 허브나라 ⓒ 김혜원

야생화와 허브들이 어우러진 숲 속의 꽃길을 걷다보면 요정이라도 된 듯 몸이 가볍다. 근심과 걱정은 사라지고 웃음꽃이 피어나며 마음조차 들뜬 아이들처럼 꽃길 사이를 날아다니게 된다. 이것이 바로 꽃들이 뿜어내는 자연 향에 의한 자연의 아로마테라피가 아닐까.

 

수천 수백가지의 이름모를 풀과 꽃들 사이사이에서 내가 아는 꽃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저건 방아나무 아닌가? 어? 원추리도 있고."

"로즈마리, 민트, 벌개미취, 쑥부쟁이, 한련화..."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거리~"

 

알고 있는 꽃 이름을 하나씩 대어보다가 핏방울처럼 붉은 베고니아가 가득 피어있는 정원에오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합창이 절로 나온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꽃들의 위로가 아닐 수 없다.

 

허브향 가득한 숲속 정원에서 먹는 허브가루를 뿌려 구워낸 마늘 빵과 꽃잎으로 장식된 요쿠르트 아이스크림 맛을 무엇과 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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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허브화분을 구입할 수도 있다 ⓒ 김혜원

예쁜 허브화분을 구입할 수도 있다 ⓒ 김혜원

오후 다섯 시 쯤. 발길을 놓아주지 않는 ‘허브나라’에서 작은 허브 화분 하나씩 구입한 우리들은 힘들게 발걸음을 돌렸다. 더 있고 싶었지만 쏟아지는 빗줄기와 어두워지는 하늘이 우리를 제촉한다. 봉평 시내에 있는 유명한 막국수집 <현대막국수>에 들러 막국수와 메밀전병을 먹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차에 오르니 참았던 굵은 빗줄기가 쏟아진다.

 

"두 시간이면 가족들과 함께 오기에도 적당하네. 다음엔 식구들이랑 와야겠어.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너무 좋다. 메밀꽃도 좋지만 가을이 깊어져서 단풍이 들면 더 좋을 것 같아."

 

가족들과 다시 올 계획을 이야기 하는 아줌마들 눈에 살짝 피곤이 얹힌다. 눈으로는 꽃을, 코로는 향기를 귀로는 자연의 소리를, 입으로는 좋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평창여행. 이 가을, 오감을 만족시키는 가벼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코스가 있을까싶다.  

#봉평 #메밀꽃 #이효석 #정강원 #허브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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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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