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록→'북한 지령문건', 내부 게시판→'비밀방'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반박... MB정권 '공안몰이' 점입가경

등록 2008.09.30 14:20수정 2008.09.3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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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7일 국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당한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사무실.

지난 27일 국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당한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사무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지난 27일 국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당한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사무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기사보강 : 30일 저녁 7시 30분]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를 수사하고 있는 국정원·검찰의 '공안몰이'가 갈수록 도를 넘고 있다.

 

공안당국은 지난 27일 새벽 서울 성북구 삼선동 실천연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29일 이 단체 핵심간부 강진구씨 등 6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은 30일 이들 중 4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30일 일부 언론에 따르면 공안당국은 실천연대 핵심 간부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비밀사이트를 통해 실행에 옮겼다는 혐의를 두고 있다. 강진구(구속) 전 실천연대 집행위원장의 경우 지난 2004년 12월 통일연대·전국연합 등 통일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면서 북측 민화협 사무소장 리창덕 등과 개인적으로 만나 북한의 지령을 전달받았다는 것이다.

 

또 최한욱(구속) 실천연대 집행위원장은 재독 북한 공작원 김용무로부터 7차례에 걸쳐 북한 <로동신문> 사설 등을 이메일로 전달받았다는 등 혐의를 받고 있다.

 

공안당국은 실천연대 간부들이 북한 지령을 받은 뒤 홈페이지에 따로 개설된 비밀사이트를 통해 연락하고, 행동에 옮겼다고도 설명했다.

 

"통일부 승인 하에 리창덕 만나... 북한 지령 실체 없다"

 

하지만 실천연대와 구속된 간부들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북한의 지령이 있었다는 점은 물론 비밀사이트를 개설해 지령을 실행했다는 공안당국의 주장도 억지라고 반박했다.

 

실천연대 구속자들을 변호하고 있는 설창일 변호사는 "'북한의 지령'이라는 것은 아예 실체가 없다"고 못 박았다. 설 변호사에 따르면 구속된 강씨가 2004년 베이징 방문 당시 리창덕 등을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통일부 등 관계기관의 승인 하에 만나 일반적인 대화만 나눴다는 것이다.

 

설 변호사는 "공안당국이 찾아냈다는 '지령 문건'은 북한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그날 만남에 참석했던 사람이 대화록으로 작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공안당국이 단순한 대화록을 '북한 지령 문건'으로 조작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천연대도 '북한 지령설'을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실천연대는 이날 오후 2시 삼선동 사무실에서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2004년 남북간 실무회담에서 남측과 북측이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북측이 6·15 공동선언 실현과 반미 투쟁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남측 참가자들은 북측의 의견을 들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비밀방'으로 지목한 실천연대 내부게시판. 일정이나 원고 초안, 의견 등이 대부분이다.

검찰이 '비밀방'으로 지목한 실천연대 내부게시판. 일정이나 원고 초안, 의견 등이 대부분이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검찰이 '비밀방'으로 지목한 실천연대 내부게시판. 일정이나 원고 초안, 의견 등이 대부분이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검찰이 밝힌 '비밀사이트' 역시 과도한 뒤집어 씌우기라는 게 실천연대의 반박이다. 29일과 30일 검찰은 실천연대가 '비밀방'을 통해 지령을 공유하고 실행했다는 혐의를 언론에 흘렸다.

 

하지만 검찰이 '비밀사이트'로 지목한 '집행위방'은 홈페이지를 가진 단체나 기업 어느 곳에서나 운영하고 있는 내부게시판 수준이다. 29일 현재 집행위방에 올라와 있는 993개 글의 내용도 대부분 행사 계획안이나 사진, 원고 초안, 회의 날짜 알림 등 일상적인 공지사항이다. 회원의 돌잔치를 알리는 등 사적 게시글도 많다.

 

공안당국은 실천연대 회원 중에서도 관리자 몇 명만 해당 내용을 볼 수 있다는 점을 부풀려 이 집행위방을 '비밀사이트'로 지목했다.

 

실천연대는 "국정원과 검찰이 '비밀방'이라 부른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다"며 "공안당국이 비밀방이라 지목한 것은 구성원들끼리 의견을 나누는 '인트라넷'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설 변호사는 "영장실질심사에서 판사도 해당 사이트를 열어서 직접 봤다"며 "공안당국은 집행위방에 올라온 글을 특수한 프로그램으로 지웠다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데, 서버를 압수하면서 삭제된 글도 살려서 증거로 삼는 검찰이 여론몰이를 위해 마치 실천연대가 비밀스러운 글을 삭제한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압수수색 과정서 가족 감금, 수치심 유발 등 불법행위 논란

 

실천연대는 또 공안당국이 압수수색과 조사를 하면서 반인권적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천연대 이재춘씨는 "공안당국이 구속된 강진구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아내와 아들, 딸을 방에 가둬 화장실도 못가게 하고, 물을 마시거나 밥도 먹지 못하게 했다"고 비난했다. 실천연대에 따르면 압수수색에 나선 경찰관들은 옷을 갈아입으려는 강씨의 부인에게 "문을 열어놓고 갈아 입으라"는 등 수치심을 유발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민권연구소 곽동기(구속) 상임연구원의 체포 당시에도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았다고 실천연대는 주장했다. 경찰은 오전 8시45분께 곽 연구원을 체포한 뒤 2시간이 넘게 지난 오전 11시께 비로소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는 등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

 

한편 민주노동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실천연대에 대한 수사를 '신공안정국'으로 규정한 뒤 거세게 비난했다. 민주노동당은 "이명박 정부는 촛불민심을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 채, 박물관에 쳐박혀 있어야 할 국가보안법을 꺼내들어 대대적인 촛불탄압·공안탄압에 나섰다"고 성토했다.

 

민주노동당은 또 "이명박 정부의 공안탄압, 촛불탄압에 맞서 민주민권 수호를 위해 국민적 힘을 한데 모아나갈 것을 결의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도 국회 정보위에서 실천연대 수사에 대한 국정원 보고를 요구하고 나서 '신공안정국 논란'은 국회로 옮겨서도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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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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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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