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 원제 The Art of Doing Nothing: Simple Ways to Make Time for Yourself (1998) 베로니크 비엔느 (지은이), 이혜경 (옮긴이), 에리카 레너드 (사진) / 나무생각
그러니까 2005년 3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환경단체에서 2년 정도 활동하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뛰쳐나왔습니다. 무엇보다 조직이나 단체가 하는 환경운동이나 그 방식, 행태가 제가 생각하는 운동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특히 전국 환경단체들이 '반환경정부'라 규정하고 대정부투쟁까지 선포했던 노무현 참여정부와 건교부의 개발 앞잡이, 뒤치닥꺼리 역할을 하는 환경부와 '친환경' '녹색' 가면을 쓰고 시민들을 현혹해 자연과 자원을 약탈·착취해 만든 제품을 팔아대는 기업들로부터 돈을 받아 프로젝트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과 타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제게 단체는 '일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제 의사와 무관하게 3억 정도 되는 '강의날 대회'를 맡겼습니다. 관련 업무를 인수받으라 강요했지만 추운 겨울 환경비상시국회의와 초록행동단 활동을 하면서, 기성환경운동과 단체활동에서 마음까지 떠나버린 상태라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불안감에 원치 않는 자유롭지 못한 사회생활 반복해
그런데 단체는 새로운 사람을 뽑을 생각도, 그만둔다는 제 말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누차례 퇴직 의사를 밝혔지만 한 달이 넘고 두 달이 넘어서려 했습니다. 그래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답답하고 불안하고 지옥같은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단체를 정리하고 나서, 근본생태운동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불교계 환경단체에 몸담게 되었습니다.
벗은 좀 더 쉬면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보라고 했지만,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고 알 수 없이 밀려드는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다시 일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젊은 나이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있는 것 자체가 자기 자신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았고, 특히 대학 공부까지 어렵게 시켜준 부모에게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불교계 환경단체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기본적인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는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운영이 종교인들에 의해 이뤄지면서 운동단체란 말이 참 우스워져 버렸습니다. 겉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그런 비민주적 행태와 단체운영이 극에 달했을 때, 내부에서 반기를 들고 이 문제들을 개선하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사무국의 구성원이라고 해봐야 4명 밖에 안 되고 이들 모두 같은 뜻을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운영위원 중에 뜻이 맞는 이도 한 명 뿐이었습니다.
결국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근본생태운동과는 거리가 먼 단체활동을 다시 접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새만금살리기에 매진하면서 상생과 생명평화를 외쳐도 그것은 구호에 불과했던 것이었습니다. 정작 자신들의 문제들은 외면하고 풀지 못하면서 명분만을 앞세운 누구나 대의를 위해 희생하거나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새만금 끝물막이 공사를 막기 위한 연대도 운동도 흐지부지 되었고 그 마무리 또한 석연치 않았습니다.
새만금을 살리지 못한 안타까움과 치열하지 못한 운동, 이기적인 연대의 모습은 더욱 기성환경운동에 대한 환멸을 불러왔습니다. 그래서 단체나 조직이 아닌 운동적 삶에 대해 고민하면서 백수로 몇 개월 동안 지냈습니다. 그때 블로그에 빠져들어 한참 블로깅에 매진했고, 자신이 왜 블로깅해야 하는지? 어떤 블로깅을 할 것인지?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들을 블로그에 신나게 풀어냈습니다.
일을 하지 않는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렇게 신나게 자유롭게 블로깅하다보니, 또 다시 강박관념과 같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습니다. 온전한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블로깅만 하는 제게 부모나 가족들이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래서 모 대학 연구소에서 지난 2006년 11월부터 올해 7월까지 임시계약직으로 일했습니다. 계약기간이 몇 달 더 남아 있었고 연구소에서는 함께 계속 일할 것을 권유했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환경단체라는 모단체의 횡령의혹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위해 일터를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위와같이 대학 졸업 후 6년여 가까운 사회생활을 시민운동판에서 경험하면서, 다른 직장보다 좀 더 자유롭고 자신이 원하는 일들을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찌보면 단체나 조직의 논리와 활동 때문에 정작 자신의 자유로운 운동적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단체나 조직에 몸담지 않거나 돈을 벌기 위한 일거리는 아닐지라도 안정적인 일터를 매일같이 남들처럼 출퇴근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과 죄책감이 자유롭지 못한 희생적 삶을 강요한 것 같습니다.
이 불안감과 죄책감의 근원을 뽑아버리기 위해, 원치 않는 일을 하지 않아도 악착같이 돈을 벌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불편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자전거 여행과 블로깅만으로 살 수 있는 길 말입니다. 각오는 했지만 용기가 조금 부족합니다.
그 가운데 한없이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책을 지난주에 접했습니다. 개천절과 주말 연휴 동안 읽을 만한 책을 도서관에서 찾다가 제목에 끌려 집어든 책입니다. 책 제목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였습니다.
* 관련 글 : 플로베르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책에서 빈둥거릴 수 있는 용기를 얻다!
저자인 베로니크 비엔느는 '때때로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정신 건강을 위해 좋다는 사실을 이성적으로 납득하지 못하면 잠깐이라도 쉬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당신은 죄책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며, 이 책을 통해 당신 스스로 휴식과 한가로움의 진정한 의미와 그 기회를 찾아보라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느림과 숨쉬기, 명상과 빈둥거림, 하품과 낮잠, 목욕과 미각(음식), 귀기울이며 듣기와 기다림을 통해서 말입니다.
저자가 추천한 여러가지 중에 가장 맘에 드는 것은 백수생활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몸소 실천하고 있는 '빈둥거림'이었습니다. 특히 '불안감을 모두 소진해버리라'는 글귀에 홀려 이번 주말 내내 밀린 숙제들을 땅 속 깊이 파묻고무한한 빈둥거림과 휴식에 빠져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빈둥거림은 아이작 뉴턴이 나무 밑에 앉아 있다가 중력의 법칙을 알아낸 것과 벨자민 프랭클린이 손가락 사이에 낀 등유 찌꺼기를 아무 생각 없이 굴리다가 전구의 필라멘트를 고안해 낸 것과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무릎 위에 고양이를 앉혀놓은 채 우주의 수수께기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여하튼 여러분도 한껏 빈둥거려 보시길 권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배짱이다 게으르다고 손가락질해도, 각박하고 정신없는 도심과 세상속에서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돈도 명예도 좋은 직장, 차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해줄 것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빈둥거릴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말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