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네를 지나자면 생각나는 '은지 아빠'

등록 2008.10.09 12:29수정 2008.10.09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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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네 살일 적에 둘째인 딸을 낳았다.

당시엔 방이 하나뿐인 B동(洞)의 주택에서 살았는데

주인 내외분은 나이가 많이 드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셨다.

 

당시 아내가 딸을 낳고 친정으로 몸조리를 하러 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귀가했는데 안집이 몹시 시끌벅적했다.

평소 안집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선 새벽마다 예배를 나가시는 등

그야말로 법이 없어도 사실만치로 동네서 소문이 왁자한 분이셨다.

 

그런데 왜 그처럼 안집이 소란스러울까 싶어

귀를 쫑긋 세우고 ‘염탐’을 해 보았다.

원인은 금세 밝혀졌다.

 

객지로 나가돌던 아들이 모처럼 집에 왔는데

요구하는 돈을 하지만 해 줄 수 없다는 부모(안집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그 아들은 마구 욕지거리를 해댄 게 이유였다.

 

급기야 분을 못 참은 그 아들은 집기를 부수는 등

그 난동이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웃사촌 좋다는 게 뭔가.

 

이럴 때 나서서 중재를 하는 것이 이웃의 배려이자

또한 세(貰)를 사는 세입자의 합당한 어떤 세상사는 이치라고 생각했다.

옷을 꿰입고 안집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누구요?”

“옆방 아빤데요...”

 

할머니가 문을 열어 줘 조심스레 들어섰다.

난동을 부리던 아들이 날 쳐다보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술이 꽤 취한 듯 보였다.

 

“당신 뭐야?”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느닷없이 ‘당신’이라고 하는

그 아들은 나보다 나이가 대여섯 살은 어려 보였기에 금세 기분이 나빠졌다.

욱~ 하는 성정(性情)을 꾹 참으며

“남의 집 일에 간섭하는 건 아니지만 암튼

노부모님께 그럼 되겠소?”라고 젊잖게 훈계했다.

 

그러나 그러한 관여는 그 아들의 부사리 같은 성깔의

타깃을 나에게 옮기게 하는 들불로 작용했다.

“네가 뭔데 남의 일에 나서, 임마!”

 

그러면서 느닷없이 내 면상을 때리는데 눈앞에서 섬광이 벼락으로 번쩍했다.

“이런 왕 싸가지 같으니라고!”

 

더는 참을 수 없이 격앙되었기에 녀석을 몇 대 팼다.

근데 잘못은 하였으되 어쨌든 자신의 아들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선 나를 나무라며 퍽이나 꾸중을 하시는 게 아닌가.

 

하여간 그처럼 불미스런 일이 계기로 작용하는 바람에

아내가 돌아온 뒤 얼마 안 되어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하던 날 평소 날 친형처럼 따랐던

이웃의 은지 아빠가 찾아와 이사 손을 거들어주었다.

 

이미 아내의 자초지종을 통하여 우리가 안집과 불편하여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전해들은 은지아빠가 말했다

“없는 게 죄지요, 아무튼 그간 정이 많이 들었는데 서운해서 어쩐대요...”

 

시골서 가져왔다며 채소와 심지어는 쌀까지도 무시로 실어 나르던 은지 아빠,

우리 둘째와 나이가 같은 첫아이를 두었기에 육아 자문을 받는다나

뭐라나 라며 아내를 언니처럼 살갑게 따랐던 은지 엄마였다.

 

세월은 강물이어서 아이들은 모두 성년이 되었다.

근방으로 이사를 한 때문으로 한동안 우리 집을 꾸준히 찾았던

은지 엄마와 아빠는 하지만 은지아빠의 근무지가

바뀌었다며 어디론가 이사를 간 뒤론 함흥차사이다.

 

그렇지만 한 때 함께 울고 웃던 이웃사촌이었기에

그 동네를 지나자면 은지 아빠가 생각나곤 한다.

이젠 은지도 내 딸처럼 스물 두 살의 꽃다운 처자(處子)가 되었을 터인데.

 

덧붙이는 글 | 여의주에도 송고했습니다. 

2008.10.09 12:29ⓒ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여의주에도 송고했습니다.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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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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