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연설, 난 안 듣고 싶거든요?

[주장] 꼭 하겠다면, 공공재인 라디오 이용 말고 팟캐스트로 하라

등록 2008.10.10 22:17수정 2008.10.1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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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밤 10시 100분간 5개 방송사를 통해 생방송한 '대통령과의 대화- 질문있습니다'에서 패널 질문에 대답하는 이명박 대통령. ⓒ MBC

9일 밤 10시 100분간 5개 방송사를 통해 생방송한 '대통령과의 대화- 질문있습니다'에서 패널 질문에 대답하는 이명박 대통령. ⓒ MBC

이명박 대통령이 일주일에 한 번씩 라디오 연설을 하겠단다. 그동안 '정부의 주요 정책과 비전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 직접 접촉을 통해 중요한 정책을 전달하고 국민적 지지를 구하'기로 한 것이란다.

 

13일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이 첫 방송될 것이라고 한다. 월요일 출근길 시간대인 오전 7시 30분에서 8시 사이가 된다는 것. 첫 주제는 '금융위기'이고, 방송시간은 방송사 임의라고 한다. 방송 시간은 7~10분 정도. 사전 녹음을 통해 매주 월요일 방송할 예정이란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자세, 일단 높이 평가해 주자. 그리고 그 수단으로 삼겠다는 라디오 방송이 광화문을 가로막았던 '명박산성'보다 진일보한 것도 인정하자. 그럼에도 그 요구를 충족 시키는 방법이 공공재인 라디오밖에 없을까 하는 의문은 계속 된다.

 

MB의 라디오 연설, 언론장악·전파독점

 

활기차게 시작해야 할 월요일 아침, 버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이명박 대통령의 목소리가 국민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일단 나 같은 사람은 운전기사에게 "아저씨, 채널 좀 바꿔 주세요"라고 외칠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지지율 20%의 대통령 목소리에 80%는 짜증을 내지 않을까? 70~80년대 극장에서 본영화 상영 전에 '대한늬우스'를 '봐야 했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다 안다.

 

방송을 틀어 줄 채널도 문제다. FM 음악 방송에서 이명박 연설을 튼다는 건 우스운 일이니까 일단 패스. 청와대가 생각하는 월요일 아침 출근시간은 대부분의 AM 방송이 시사프로 또는 뉴스프로를 튼다. 예를 들어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정부의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하다가 갑자기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가 나온다면 어색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튼다고 하더라도, 청취율이 기대된다. 텔레비전에서 미리 광고 잔뜩 하고 다섯 개의 방송을 동원해서 틀었던 '대통령과의 대화'가 각 방송사의 시청률을 다 합쳐도 같은 시간대에 틀었던 SBS <식객> 시청률 하나만도 못했던 기억이 내게만 생생한 걸까.

 

라디오는 채널 한 번 맞춰 놓으면 잘 안 바꾼다. 그 사정 잘 아는 방송사들이 정부의 압력 아니고는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를 자율적으로 틀려고 할까. 정부의 압력에 못 이겨 틀게 된다면 내용의 특성상 방송사들 모두 같은 시각에 틀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의 언론장악, 전파독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꼭 하겠다면 '팟캐스트'로 하라

 

정부 당국자들은 대부분 이 정도 이야기 하면 '그럼 대안을 내 놓으라'고 한다. (사고는 자기들이 쳐 놓고, 국민에게 대안을 내 놓으라는 게 웃기는 일이지만) 그래서 준비했다. 팟캐스트(Podcast).

 

로그인할 줄 몰라서 청와대 컴퓨터도 사용 못했던 이에게 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어지간히 인터넷 쓸 줄 알고, MP3 플레이어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다 아는 서비스다.  인터넷에 방송을 올려놓고 시청을 원하는 이들이 선택적으로 혹은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70년대 통기타 음악을 전문으로 올리는 팟캐스트를 듣고 싶으면 인터넷에서 해당 방송을 내려받아 컴퓨터나 MP3플레이어에서 들으면 된다. 들어 보고 괜찮다 싶으면 RSS 주소를 입력해서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되는 방송을 받아 볼 수도 있다. 갖가지 분야의 팟캐스트가 청취자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대통령의 라디오 방송도 생방송이 아니라  녹음된 것이고, 그걸 방송사 방송사가 자율적으로 트는 방식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 녹음된 파일을 방송사가 아니라 인터넷에 올려 국민이 자율적으로 청취하게 하면 일은 더 간단하다. 이미 우리나라 방송사들도 대부분 팟캐스트를 서비스하고 있으니, 굳이 방송사를 통하고 싶다면 방송사의 팟캐스트에 얹혀 가는 것까지는 괜찮겠다.

 

팟캐스트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들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나처럼 외국에 사는 사람에게는 라디오보다는 팟캐스트가 훨씬 더 편하게 방송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이다.(외국에 나가 사는 한국 교민이 200만이라는데, 소통하겠다고 맘먹었다면 해외 동포들과도 소통해야지.) 라디오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었는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팟캐스트는 방송 청취자 수가 실시간으로 확인되니까 청취자의 반응이나 참여 정도를 확인하기도 좋다.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취향 역시 존중해야

 

인터넷 쓸 줄 모르는 중장년층은 어떻게 할 거냐는 반론, 들어올 줄 알았다. 라디오처럼 공급자 위주의 매체가 아니라 팟캐스트처럼 수요자 위주의 매체가 우리에겐 진작에 있었다. 이름하여 '카세트테이프'.

 

이명박 대통령의 오랜 친구라는 뉴라이트 김진홍 목사에게 물어보면 잘 알 거다. 예전에 그분이 자기 설교를 테이프로 만들어 뿌린 일이 있다. 신심 좋은 택시기사들이 운전하면서 그 테이프를 듣는 바람에 몇 번 들었는데, 그게 바로 예전 버전의 수요자 중심의 매체다. 지금도 대형교회 목사들 그 방법 잘 써먹고 있다.

 

지하철 역 입구 무료신문 놓인 곳에 테이블 하나 놓고, 매주 한번씩 이명박 대통령의 방송이 녹음된 테이프를 올려 놓으면 된다. 방송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하나씩 가져가면 되는 것이다. 테이프가 너무 낡은 방식이다 싶으면, CD도 괜찮다. MP3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도 테이프나 CD는 들을 수 있으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건 잘한 일이다. 중요한 건 그 방식이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전파는 이명박 대통령의 것이 아니고, 이명박 대통령의 목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취향 역시 존중해 줘야 한다. 일방적 연설이 아닌 쌍방향의 진정한 소통이 가능한 방법을 찾길 바란다.

2008.10.10 22:17 ⓒ 2008 OhmyNews
#이명박 연설 #대통령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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