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일 맞은 <시사투나잇> '비장한 기념식'

[현장] '폐지대상 1순위' 지목...KBS PD들 "모든 걸 걸고 싸우겠다"

등록 2008.10.11 13:08수정 2008.10.1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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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시사투나잇> 1000일 기념행사의 사회를 진행한 김효진 PD

<시사투나잇> 1000일 기념행사의 사회를 진행한 김효진 PD ⓒ 독설닷컴


KBS <시사투나잇>(이하 '시투')이 1000일을 맞았다. 10일 저녁 7시, KBS 신관 앞의 한 호프집에서는 일명 '시투를 사랑하는 PD들' 100여명이 모였다. '시투'의 '천일야화'를 기념하는 자리였다. 김덕재 KBS PD협회장은 "'시투'를 거친 PD는 물론이고 드라마·예능·라디오 PD들까지 축하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 했다"고 말했다.

'시투'는 현재 KBS에서 폐지대상 1순위로 거론되는 시사 프로그램이다. 행사 분위기가 익어갈수록 KBS PD들의 취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미FTA의 문제점과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심층 보도해 눈길을 끌었던 이강택 PD는 반쯤 새어나가는 발음으로 "과거의 틀과 기계적인 중립에서 벗어나 정말 새로운 저널리즘을 하고 싶었다"는 말을 던졌다.   

'시사투나잇'의 6번째 CP(Chief Producer)를 맡았던 이완희 PD는 "요즘 여러 가지로 슬프고 암담하다, 우리 미래가 어떻게 될지 속으로 답답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날 자리를 함께 한 강애란 여성민우회 소장(KBS 시청자위원)도 술잔을 부딪치며 한마디 보탰다.

"'시투'는 우리 사회의 주류적인 시선을 탈피하여 세상을 비췄다. 이주노동자·이주여성·차별받는 노동현장의 문제를 누구보다도 앞서 다뤘다. 우리 사회에서 '시투'는 아직 더 커야한다. 시청자로서 왜 '시투'가 계속 이어져야 하는지, 그 의미를 전달하고 싶어서 왔다."

1000일을 맞는 '시투'에는 이처럼 환호와 슬픔이 뒤섞여 있다.

산술적 객관성 함정 탈피... "방송 저널리즘의 '최전선' 다시 세우자!"

a  <시사투나잇>제작팀의 젊은 피디들

<시사투나잇>제작팀의 젊은 피디들 ⓒ 독설닷컴


'시투'가 첫 방영된 것은 지난 2003년 11월 3일이다. 그 뒤 총 964회에 걸쳐 5000여개의 주제를 방송에서 다뤘다. 2번째로 CP를 맡은 김현 PD는 "우리가 '시투'를 시작하면서 하고자 했던 것은 방송 저널리즘의 '최전선'을 다시 세우고자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시투'는 언론계와 시민사회계로부터 "'객관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됐던 시사프로의 고정관념을 깨고, 우리 사회의 '최전선'을 누벼왔다"고 평가받는다. 기계적인 중립성을 좇던 기존 시사 프로그램의 '관습'을 혁파하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는 설명이다.
   
수상 경력도 많다. 지난 2004년에는 '앰네스티 언론상'과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주관한 '2004년 올해의 좋은 방송상'을 연거푸 받았다. 이듬해인 2005년에는 언론노조로부터 '민주언론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시투'가 비주류 방송이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시투'는 한국방송대상 등의 '메이저 상'과 KBS 사내에서 주는 우수프로상 등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오직 '민주' 혹은 그런 의미가 담긴 상만 있을 뿐이다.

김덕재 KBS PD협회장은 "주류상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은 '시투'가 가장 기층에 위치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두고 제작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산술적인 공정성의 탈을 쓴 방송을 탈피하고, 현장을 누비며 소외된 계층을 중심으로 가치를 추구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익성으로 따져도 '짭짤한' 프로그램이었다. 2007년을 기준으로 '시투'의 '제작비 대비 광고 판매율'은 무려 5배 정도에 달했다. KBS 2TV 전체의 '제작비 대비 광고 판매율'은 3배 정도였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고정 시청자 층이 두꺼웠단 얘기"라고 분석했다. 

'시투' 1000일 동안 가장 많은 심의 지적과 경고, 그리고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던 사람은 바로 이강택 PD라고 한다. 동료들은 현 '시투'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도 이 PD라고 말한다. 그는 "('시투' CP로 있던 시절이) 가장 자막 실수도 많았고, 가장 라이브도 많았으며, 가장 많이 배운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GS 칼텍스 노동자 쟁의 사례를 다뤘을 때가 떠오른다. 경찰청 고용직 노동자들이 고공농성과 기습시위를 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과 함께 했던 순간도 뇌리에 박혀 있다. 이런 문제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행복했다. 이 두 가지를 실천함으로써 그간 안정된 직장에 상대적으로 많은 임금을 받고 산 것에 대한 최소한의 속죄를 했다고 생각했다." 

이어 그는 "시사프로는 끝없이 새로워져야 한다, 많은 이들이 과거의 틀에 비춰 '시투'를 비판하지만 이는 잘못된 논리"라며 "'시투'를 통해 처음으로 목소리가 알려진 많은 사람들이 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추구한다면 '낮은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프로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좌파적출론' 표적된 '시투'... 더 치열하지 못해서 문제

a  김덕재 KBS PD협회장이 <시사투나잇>제작팀에게 격려금을 전달하고 있다.

김덕재 KBS PD협회장이 <시사투나잇>제작팀에게 격려금을 전달하고 있다. ⓒ 독설닷컴


'시투'의 1000일이 도전과 성과의 모습으로만 나타났던 것은 아니다. '시투'가 걸어온 길은 순탄지 않았다. 보수진영에서 줄기차게 외친 "정치적인 편향성이 심하다", "좌파 프로그램이다"는 이념공세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다. KBS 사장이 교체된 이후에 '시투 폐지론'이 거론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방송계로 전이된 '좌파 적출론'의 주요 표적이 된 셈이다.

2번째 CP였던 김현 PD는 "처음 프로그램을 열었을 때부터 경쟁력의 이름으로, 혹은 편파·품위·인격의 이름으로 계속되는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부터 '시투'의 CP를 맡고 있는 송재헌 PD는 "'시투'는 사실 비주류 프로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우리는 변방의 막내 수준의 프로지만 다른 프로그램들이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수많은 공세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해 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정치편향 공세'를 바라보는 PD들의 모습은 편치 않아 보인다.

김덕재 PD협회장은 "주로 조중동과 한나라당이 편파공세를 펴왔는데, 모든 것을 정치적인 환원으로 판단해서 보는 그들의 시각은 옳지 않다"며 "'시투'는 직접 현장을 발로 뛰며 수많은 이슈를 다루고 있다. 기계적인 중립만을 가지고 이런 현장의 가치를 담아내기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강택 PD도 "시사프로의 존재이유는 진실을 담아내는 것"이라며 "그들이 말하는 애매모호한 공정성은 누구를 위한 공정인가? 진실은 공정성보다 상위의 가치"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껏 '시투'는 더 치열하지 못해서 문제였고, 아직도 구현할 가치가 많다"고 덧붙였다.

"'폐지' 결정시 모든 방법 동원해 막을 것"

a  역대 <시사투나잇> CP들의 모습.

역대 <시사투나잇> CP들의 모습. ⓒ 독설닷컴


'시투'의 미래는 어떨까? '폐지'란 말이 오가는 상황에서 얼마 안 남은 5주년 기념행사도 제대로 치르지 못할 공산도 있다. '시투'만의 문제도 아니다. <미디어포커스> <시사기획 쌈> 등 시사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압박 움직임이 '정치적 편향성을 바로 잡겠다'는 미명하에 가시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사보도프로그램 장르의 씨가 말라 가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라는 분석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김덕재 PD협회장은 "다음 주 사측의 조직개편안이 나오면 우리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나갈 것"이라며 "만약 폐지 움직임이 보인다면 PD협회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막을 것이고, 모든 것을 걸고 싸우겠다는 결의가 끝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시투'는 수많은 땀과 노고를 거쳐 탄생한 프로그램이니만큼 PD협회가 앞장서서 지켜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존폐 위기' 속에도 상황을 낙관하는 PD들도 많다. 

'시투'의 3번째 CP를 맡았던 서현철 PD는 "과거에도 주위의 음해로 인해 '시투'가 없어질 뻔한 위기가 있었는데, 당시 선·후배가 힘 합쳐 싸워 이를 무마했던 경험이 있다"며 "결국 프로그램이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시투'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랑받는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현 PD는 "시작 이후 계속되는 존폐 위기 때마다 우리는 '시투'를 만든 열정과 지혜를 가지고 극복해왔다"며 "'좋은 저널리즘이란 뭔가'란 질문을 항상 속으로 되새기며 잘 설득하고 풀어 가도록 하자"고 말했다.

a  건배를 하며 <시사투나잇> 1000일을 자축하고 있는 KBS PD들.

건배를 하며 <시사투나잇> 1000일을 자축하고 있는 KBS PD들. ⓒ 독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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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투나잇 #KBS #PD #PD협회 #시사보도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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