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려면, 차라리 가르치지 말자

[주장] 울산 한 중학교의' 체벌동의서' 파문을 보며

등록 2008.10.15 12:07수정 2008.10.15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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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 매에 적힌 아이들의 애교석인 문구들. ⓒ 문필성


"학교에서는 체벌에 저항하기 시작했죠.
사랑의 매든 아니든 폭력은 안 된다고 확신했어요." - 서태지 인터뷰 (<조선일보>, 2008. 10. 04) 중에서

지난주 화요일 (7일), 10여 명 남짓한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체벌에 대한 동영상을 보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모인 선생님들 가운데는 "체벌도 (아이들에 대한) 열정이다"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었고, "체벌은 폭행이므로 교육이 아니라 범죄다"고 목청을 높이는 분들도 있었다. 무려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된 토론은 뒤풀이 자리에까지 이어져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공교롭게도(?) 오늘(14일) 다시, '사랑의 매' 그러니까 학교 체벌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울산의 한 중학교가 그 진원지이다. 학교운영위원회(아래 학운위)에서 학부모들에게 체벌동의서를 보냈다고 한다. 그 가운데 90%의 학부모들이 체벌에 찬성하는 표시를 했다고 한다. 10% 학부모들만이 "체벌 기준이 모호하다"며 반대했다는 후문이다.

현행 법규상 다수의 학부모가 동의했다고 해서 당장 체벌이 정당화되거나 공공연해 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심각한 염려가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랑이라는 가면 쓴 학대

학운위에서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데에는 일부 학생들의 일탈행위와 교사에게 욕설을 하고 폭력적 행동을 하는 등의 무례한 행동이 실마리가 되었다고 한다. 고민 끝에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이 '사랑의 체벌'이라고 한다. 때려서라도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쳐 바른길로 이끌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사랑의 매를 들어달라고 학부모들이 결의를 하고, 심지어는 회초리 수천개를 제작해 학교에 기증까지 하는 일도 있었다.

면역이 생길 만도 한데, 지금 이 소란스러움을 지켜보는 마음은 심란하다. 울컥, 화도 난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변검술사처럼 늘 새 얼굴인 양 나타나는 '사랑의 매'가 너무 싫기 때문이다.


체벌 논란이 벌어지면 언제나 '사랑'에 방점을 찍는 이들과 '매'에 방점을 찍는 이들로 나뉜다. 이 때문에 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들 역시 나름의 교육 철학과 경험으로 체벌의 정당성 혹은 부당성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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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가 아닌 사망의 매. 웃음을 자아 내게 한다. ⓒ 문필성


그러나 '사랑'과 '매'가 결코 한 몸이 될 수 없음을 안다면 '사랑'에 방점을 찍는 잘못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매'는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학대요, 무서운 폭력일 뿐이다. 그 어떤 명분으로도 체벌의 다른 이름이 아이들에 대한 교사(학부모)의 사랑과 열정이 될 수는 없다.

굳이 때리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아도 본인이 수긍하는 현저한 잘못이 있는 학생이라면 정해진 교칙에 따라 벌을 받게 하면 될 일이다. 이를 통해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가르치는 것으로 충분하다. 본인이 수긍하지 못한다면 선입견 없이 사정을 충분히 듣고 소통하는 일이 우선이다.

지난 2003년 유엔(UN)이 "학교에서 체벌을 금지할 것"을 한국에 권고한 것을 굳이 다시 말하지 않더라도, 성급한 판단으로 몽둥이부터 휘둘러서는 안 된다. 전체 아이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대외적인 학교 이미지에 먹칠한다는 명분으로 학생을 폭력으로 길들이려는 꼼수가 공공연해져서는 안 된다.

그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거짓 사랑이 담긴 매가 아니다. 더 높은 단계의 치료와 상담이다. 그것은 포기한 채 폭력으로만 제어하려 한다면 그것은 학교가 아니다. 거짓이 아닌 정말로 사랑한다면 몽둥이는 필요 없다.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은 폭력에 대한 광신

진정으로 학교(학운위)가 고민해야 할 것은 사랑을 가장한 폭력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좀 더 사랑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에 현실적 여건이 어렵다거나 하는 말들은 더욱 학교를 초라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변명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은 폭력에 대한 광신이다. 사람이 사람을 때려서 해야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학생들도 사람이다. 맞아가면서, 스스로 존엄성을 짓밟혀가며 배워야 할 것은 또 도대체 무엇인가.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하지 않다. 더욱이 부모나 교사의 체벌은 폭력을 내면화시켜서 또 다른 폭력을 재생산하는 기반이 된다. 그래서 더 나쁘다. 사랑의 매라는 이름을 빌린 학교 폭력이 체벌을 통해 학생의 몸에 폭력시스템을 각인시키는 일이 당장 중단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법률로 살펴보는 체벌과 폭력 그리고 인권


*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4 (학생의 인권보장)
학교의 설립자·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 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 (2007.12.14 신설,  2008.3.1부터 시행) 

* 학교 체벌의 법적 근거--초중등교육법 시행령 31조 7항
"학교의 장은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아니하는 훈육ㆍ훈계 등의 방법으로 행해야 한다"고 명시,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체벌을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

* 형법 제273조 제1항에서는 "육체적으로 고통을 주는 행위"를 '학대'로 정의한다. 아동복지법(‘아동’은 18세 미만)에서도 신체적·정신적 폭력행위를 '아동학대'로 규정(제2조)하고, "직무상 아동학대를 알게 된 때에는 즉시 아동보호전문기관 또는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제26조)고 밝히고 있다. "초·중등교육법 제19조의 규정에 따른 교원"도 이 의무를 지님.

"직무상 아동학대를 알게 된 때에는 즉시 신고해야"하는 '교원'이 '아동 학대'에 해당하는 '체벌'을 공공연히 한다는 것도 아이러니.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임정훈 기자는 현직 교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임정훈 기자는 현직 교사입니다.
#사랑의 매 #서태지 #체벌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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