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다른 꿈 꾸지말고 안마사 되렴"

시각장애인 학교 교사가 본 헌재의 안마사 의료법 합헌 결정

등록 2008.11.06 10:40수정 2008.11.06 15:07
0
원고료로 응원
a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피부미용사에게 안마영업을 허용하는 정부 정책으로 생존권 위협을 받고 있다며 지난 9월18일 오후 서울 잠실철교 점거농성을 시도하자 경찰이 소화기 분말을 뿌리며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경찰이 진압작전이 시작된 후 시각장애인 두명은 한강에 투신했다. ⓒ 남소연


'당신이 고용주라면 시각장애인을 고용하시겠습니까?'

이와 같은 질문을 비장애인에게 던진 결과, 거의 '시각장애인을 고용하기가 어렵다'는 답변을 내놓았던 다큐멘터리 영상이 있었습니다. 그 영상은 바로 시각장애인인 우리 학교(광주세광학교) 재활부 학생이 보이지 않는 눈으로 캠코더를 들고 다니며 직접 찍은 것으로 얼마 전 KBS에서 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원래 그 학생의 꿈은 영화감독이나 그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생활을 하다가 '근다발성경화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시신경이 마비됨으로써 영화감독의 꿈을 잠시 접고 재활하기 위하여 시각장애특수학교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은 안마밖에 할 수 없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시각장애인도 안마 외에 다른 것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시각장애인이 동영상을 찍을 수 있었느냐고요?

그렇습니다. 혼자서는 결코 찍을 수 없었습니다. 보조자가 항상 따라다니면서 주제에 적합한 대상물의 위치와 모습을 설명해주면 그 설명을 듣고 찍어야 했습니다. 결국 시각장애인이 희망하는 직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항상 지속적인 보조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각장애인이 직업에서 성공하려면 비장애인보다 더 많은 인적·물적 자원이 따라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꿈은 많지만, 장애 때문에 좌절하는 아이들

때문에 "당신이 고용주라면 시각장애인을 고용하시겠습니까?"라는 물음에 "고용하겠다"고 선뜻 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데 시각장애인을 고용하려면 몇 배의 노력이 더 필요하게 될 테니까요.


이런 상황 때문에 시각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곳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꿈은 제한적이지 않습니다. 시각장애초등학생에게 '장래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하면 참 슬픈 웃음이 납니다.

"저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요."
"저는 하늘을 나는 비행사가 되고 싶어요."
"저는 경찰관이 되고 싶어요."
"저는 컴퓨터 게임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어요."

많은 아이들은 시력이 없으면 이룰 수 없는 이런 꿈을 꾸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 아이들의 꿈은 무궁무진한데 고등학교에 오면 그 꿈이 몇 개의 꿈으로만 제한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합니다. 대학으로 진학하는 아이들은 선생님이나 사회복지사, 목사나 음악가, 특수체육인 등 몇 개의 학과로 진학을 하고, 취업을 하여 사회로 진출하는 아이들은 거의가 안마밖에 할 수 없는 실정에 절망하면서도 그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현실상 안마만이 타인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유일하게 자립적으로 일하여 당당히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각장애특수학교의 직업교육과정은 실력있고 품격 있는 안마사를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춰 3년 동안 전문적인 공부를 시키는 것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학생들은 해부와 생리학, 침술, 한방, 전기치료, 안마와 마사지 등의 이론을 공부하며 엄지손가락의 형태가 변하도록 실기실습에 전념해 안마전문인이라는 자긍심을 지니며 사회에 나가게 됩니다.

안마사 헌재 합헌, 실용적이며 냉철한 판단

그러나 근래에 들어 스포츠안마사 등이 시각장애인만이 안마를 하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권에 위배된다는 헌법소원을 낸 뒤, 시각장애인계는 배수의 진을 치는 심정으로 사회를 향한 절규를 했습니다. 여의도광장, 마포대교 등에서 전국의 시각장애인들이 모여 대규모집회를 하고,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스스로 세상과 이어진 끈을 끊어버린 시각장애인도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도 수업을 거부하며 안마 실기실습으로 두터워진 엄지손가락을 꽉 쥐고 서울로 상경하여 세상을 향해 외쳤습니다.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을 침해하지 말라"고. "비장애인에게는 선택이지만 시각장애인에게는 선택도 할 수 없는 막다른 길이 바로 안마업"이라고 말입니다.

다행히 사회의 많은 이들이 시각장애인의 처지를 이해해 주었습니다. 아울러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지난 10월 30일,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자격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한 현행 의료법 조항이 비장애인의 직업 선택 자유를 침해한다며 스포츠 안마사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재판관 6대 3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복지정책이 미흡한 현실에서 안마사는 이들이 선택 가능한 유일한 직업"이라면서 "비시각장애인에게까지 확대할 경우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결정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또 "이 법률은 시각장애인에게 삶의 보람을 얻게 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실현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어서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며 "촉각이 발달한 시각장애인에게 안마업을 독점시킴으로써 생계를 지원하고 직업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합헌 결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런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에 시각장애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합헌이라고 지지해주신 재판관님에게나 위헌이라고 표를 던지신 재판관님에게나 모두 감사드립니다.

복지정책이 미흡한 현실에서 안마사가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고 실질적인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 소수자인 시각장애인들을 우대하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며 합헌 지지를 해주신 심판관님들의 결정은 분명 현실을 직시하는 매우 실용적이며 냉철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안마사 제도로 인해 일반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받는다는 사실에 초점을 두고 위헌 지지를 해주신 심판관님들의 결정 또한 앞으로 시각장애인에 대한 복지정책의 선진화를 촉구하여 시각장애인과 일반인의 기본권이 함께 공존할 수 있게 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기에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혜안이라고 생각하여 공감합니다.

장애인 위한 사회환경 구조적 변화 필요

a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피부미용사에게 안마영업을 허용하는 정부 정책으로 생존권 위협을 받고 있다며 지난 9월18일 오후 서울 잠실철교 점거농성을 시도하자 경찰이 소화기 분말을 뿌리며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 남소연


시각장애학생들의 진로는 소수의 대학진학과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안마업을 하는 길이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는 분명 비장애인과 장애인 중 그 어느 누구도 소외받지 않아야 되는 취업의 형태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그렇게 되는 날, 우리나라는 참된 복지사회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금은 아닙니다. 안마밖에 할 수 없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안마밖에'가 아니라 '안마도 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직업에서 시각장애인이 장애인이라고 차별받지 않고 장애인이기에 많은 인적·물적 지원을 받는 것이 당당한 사회가 될 때만이 시각장애인은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경쟁 시 똑같은 출발선상에 세우는 것은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사회통념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것입니다.

국가나 사회는 안마업의 보완을 통하여 다양하고 보편화된 안마로 전환시켜야 됩니다. 지금 거의 안마시술소에서 행해지는 안마를 노인요양이나 지체장애와 각종 운동계통의 질병 요양에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즉 안마시술의 대상과 장소를 확대시키자는 것입니다. 시각장애인에게 선택적으로 안마업을 부여했다고 해서 국가나 사회가 시각장애인의 고용을 위해 할 일을 다했다고 인식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는 것입니다.

또 국가나 사회는 사회환경의 구조적 변화를 촉구해야 합니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나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장애라는 용어는 매우 사회적입니다. 내가 앞을 볼 수 없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행로를 이용하여 길을 갈 수 있다면 장애가 아닙니다. 내가 걸을 수 없지만 휠체어나 전동차를 이용하여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면 그것은 장애가 아닙니다. 내가 들을 수 없지만 보청기를 이용하여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은 장애가 아닙니다. 장애인이 장애로 인해 할 수 없는 것을 사회나 국가의 지원을 통해 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 사회에 장애인은 없을 것입니다.

아울러 국가나 사회는 체계화된 복지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할 것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자세로 장애인을 진단하고 판별하며 교육을 통해 재활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번 장애인 등에 대한 교육법에서도 강조했듯 조기교육과 평생교육을 통해 아기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이승을 떠날 때까지 복지프로그램의 범위 안에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함께하는 복지사회를 기다리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는 안마의 전문화된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안마를 위한 기초교육을 더욱 충실히 하고 건강을 지키고 질병을 치유하기 위한 기능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안마전문인을 배출해야 합니다. 100년 전통의 시각장애인의 안마가 대한민국을 뛰어넘어 전 세계인의 안마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또 학교는 다양한 직업을 계발하는 데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 학교 텃밭을 이용하여 아이들과 상추와 고구마, 오이, 토마토 등을 심은 적이 있습니다. 생전 처음 씨앗을 뿌렸노라는 아이부터 집에서 농사를 지어 보았다는 아이까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정말 농사를 지어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학생도 보았습니다. 시각장애학생이 안마 외의 직업도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을 장기적으로 차분히 연구해야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 학생들은 합헌 결정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슬픈 기쁨이랄까요. 분명 사회 각 분야에서 시각장애인이 일을 할 수 있었다면 아마 합헌 결정이 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현실을 인정한 합헌에 기뻐하면서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인식에서 슬픈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국가나 사회의 총체적인 노력들이 실효를 거둘 때, 우리 시각장애학생들은 100% 순수 웃음을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복지사회가 되면 시각장애아이들도 영화감독이 되고, 씨름선수도 되고, 컴퓨터게임프로그래머도 될 수 있겠지요.

시각장애인도 비시각장애인과 직업을 공유할 수 있는 복지사회가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최근주요기사]
☞ 오바마가 이명박 정부 처지 고려할 것 같은가
☞ "미제 빨갱이" 보는 조갑제가 웃긴 까닭
☞ "대풍이면 뭐하나? 자식 같은 농산물, 내 손으로 묻고 있다"
☞ [나홀로 졸업여행] "이렇게 많은 친구들과 노는 건 처음"
#시각장애인 #안마사 #안마사 합헌결정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는 시각장애 특수학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동료 선생님의 소개로 간간이 오마이 뉴스를 애독하고 있습니다. 바쁜 일과 중 저의 미숙하고 소박한 글이나마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습니다. 제가 글을 올리면 전국의 네티즌들이 모두 본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서운 생각도 듭니다만.....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사 3년 만에 발견한 이 나무... 이게 웬 떡입니까
  2. 2 '내'가 먹는 음식이 '우리'를 죽이는 기막힌 현실
  3. 3 도시락 가게 사장인데요, 스스로 이건 칭찬합니다
  4. 4 장미란, 그리 띄울 때는 언제고
  5. 5 "삼성반도체 위기 누구 책임? 이재용이 오너라면 이럴순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