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

[칼럼] 장휘국(광주광역시 교육위원)

등록 2008.11.10 11:42수정 2008.11.1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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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진 지난달 8일 오전 서울 미동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가림막을 친 가운데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진 지난달 8일 오전 서울 미동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가림막을 친 가운데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 ⓒ 권우성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진 지난달 8일 오전 서울 미동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가림막을 친 가운데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 ⓒ 권우성

 

지난 달 말에 광주에서는 일어나면 안 되는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다. 한 초등학교 학생이 성적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제 겨우 열 살짜리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삶을 비관하는 유서를 남겼고, 2학기 중간고사 성적이 1학기보다 떨어진 것을 비관해 크게 울었다는 정황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성적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성적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일 년이면 백 수십여 명이나 되었지만, 이제 겨우 열 살짜리 초등학교 4학년생이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하는 일은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어른들 욕심에 멍들은 동심

 

시험점수와 석차가 초등학교 4학년까지도 죽고 싶도록 부담스럽게 마음을 짓누른 것이다. 어른들의 욕심이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멍들게 하고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가 된 것이다.

 

무조건 시험 성적이 좋아야만 하고, 과학고나 외국어고 같은 특목고를 거쳐 일류 대학에 들어가야만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맹목적 믿음이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시험을 통한 점수와 줄 세우기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려고 한다. 수십 년 동안 대학 입시와 특목고 입시가 그랬고, 초등학교를 포함한 모든 학교 교육에서 점수와 줄 세우기에만 익숙하다.

 

대학입시에서도 자기의 특기나 적성, 장래 희망을 살펴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수능 점수에 맞춰서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지원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모두가 점수와 석차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점수보다 더 소중한 정직성과 성실함, 사회성과 친화력, 창의성과 상상력은 무시하고 점수에 따라 한 줄로 세워서 앞에 있으면 성실함과 친화력이 부족해도 우수한 인재요 모범생으로, 뒤에 있으면 못난이 바보로 취급하는 것이다.

 

오로지 점수와 석차만을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 그러니 초등학생까지 점수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제발 정상적 사회로 돌아가자

 

현행 7차 교육과정은 초등학생들의 평가는 수행평가 위주로 하도록 규정하고 지필평가는 지양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성적통지서(학기말 통신표)도 서술형으로 바꿨다. 그러나 어찌된 판인지 학부모의 요구를 구실로 지필평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월말고사까지 치르기도 한다.

 

중고등학교에서도 과목별 점수와 석차만 기록·통지하고 총점과 석차는 내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지필평가 시험 점수와 석차를 다 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본 다음날이면 학교에서 성적을 공개하지 않아도 어떻게 알았는지 자기뿐만 아니라 남의 성적도 다 알아서 누구는 몇 점에 몇 등이라는 것 때문에 희비가 엇갈린다.

 

자식 성적을 가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부모가 있는 반면 자식 성적 때문에 얼굴 들기 부끄럽다거나 기죽어 지내는 학부모가 있다. 아이들 성적이 바로 부모의 성적이고 사회적 체면치레가 되었다.

 

그러니 죽자사자 점수에 매달리고 사교육에 매달린다. 어른도 아이들도 성적 경쟁으로 마음은 멍들고 인성이 점점 피폐해 가니 죽고 싶다고 하소연한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초등학교 때부터 더 점수 경쟁을 시켜야 공부를 하고, 인재와 훌륭한 일꾼을 만들기 위해서 더 몰아붙여야  된다고 말할 것인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 몰아야 시원하단 말인가? 제발 바른 사회, 정상적 사회로 돌아가도록 이성을 찾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민의소리>에도 실렸습니다. 

2008.11.10 11:42ⓒ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시민의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시민의소리 #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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