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해마다 벼 수매가를 놓고 생산농민과 농협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올해의 경우 산지 쌀값이 오르면서 벼 수매가를 둘러싼 샅바싸움은 더욱 치열했다.
생산농가는 비료 및 농자재 가격 폭등으로 인한 생산비 증가를 이유로 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의 벼 매입가격과 쌀 소득보전직불제 목표가격 인상을 요구해 왔다. 게다가 농협 RPC의 벼 매입가는 일반 미곡처리장과 미곡수집상들의 쌀 매입가의 바로미터다. 산지 쌀값에 직접 반영되는 것은 물론이다.
반면 농협은 자체 매입가가 정부의 공공비축 우선지급금보다 높을 경우 농협으로의 물량집중과 원가부담을 우려해 수매가를 낮추려 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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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 수매가 공개를 꺼리고 있는 '농협중앙회 충남지역본부' ⓒ 심규상
▲ 쌀 수매가 공개를 꺼리고 있는 '농협중앙회 충남지역본부'
ⓒ 심규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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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RPC 벼 매입가, 쌀값 바로미터
하지만 이 과정에서 농협중앙회대전충남본부가 보인 태도는 농협이 아닌 조직보호에만 급급한 장사치를 떠오르게 했다.
기자는 지난달 말 농협중앙회대전충남본부 자재양곡팀을 방문해 충남 시군 미곡종합처리장별 벼 매입가격을 문의했다.
하지만 농협 자재양곡팀 관계자는 갖은 이유를 들어 끝내 결정가격 공개를 꺼렸다. 농협중앙회대전충남본부 자재양곡팀 이석구 차장은 "벼 품종만 해도 28가지인데다 등급별로 가격대가 달라 미곡종합처리장별 가격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다"며 "때문에 시군 농협 미곡처리장별 가격 파악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벼 품종이 많고 등급별로 가격대가 다른 것은 맞다. 하지만 시군별 벼 수매가의 기준은 해당지역 농민들이 가장 많이 재배하는 벼 품종과 1등품을 기준으로 한다. 일례로 충남도 내 는 '주남', '남평', '동진1호' 등 몇 개 품종만을 주로 재배하고 있다.
기자는 다시 이 차장에게 시군별로 가장 많이 재배하는 벼 품종의 1등품을 기준으로 한 수매가격을 물었다. 이 차장의 답변은 같았다. 이 차장은 "시군 농협 RPC별로 가격결정시 변수가 많아 평균 수매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자체 수매가를 파악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농협 관계자 "농협RPC별 벼 수매가는 영업비밀"?
농협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농협RPC별 벼 매입가격을 농협 자재양곡팀이 파악조차 하지 않았다는 답변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기자는 지금이라도 농협RPC별 벼 수매가를 파악해 결과를 알려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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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한 지역의 추곡 수매현장 ⓒ 김동이
▲ 충남 한 지역의 추곡 수매현장
ⓒ 김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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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장의 답변은 이렇다.
"파악한 자료도 없고 계획도 없지만 설령 파악한 자료가 있더라도 공개하기 어렵다. 적자운영을 하는 곳과 흑자운영을 하는 곳에 따라 농협RPC별 수매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 벼 수매가는 농협RPC별 경영 상태를 드러내는 영업비밀로 알려줄 수 없다"
하지만 농협RPC별 경영여건이 쌀 수매가격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정적 기준은 아니다. 또 경영여건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이미 각 단위농협별로 공개하고 있는 수매가를 농협지역본부가 나서 비공개할 이유가 없다.
기자는 30여 분이 넘게 실랑이를 하다 농협중앙회대전충남본부를 빈손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기자는 충남도 농산과 양정계 관계자로부터 충남 RPC별 벼 매입 가격결정 현황 자료를 구할 수 있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충남 농협미곡종합처리장별 자체수매 평균매입가격은 다수 재배품종을 기준으로 공주 4만5000원, 당진 5만 원 등으로 한 가마당(40㎏ 기준) 최고 5000원 차이가 났다. 산지쌀값과 비교할 때 낮은 가격으로 수매한 해당 미곡종합처리장이 큰 이득을 본 셈이다. 올해의 경우 충남 공주의 벼 매입가격이 15.6%(7000원) 오르는 등 전반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충남도청 관계자 "벼 수매가 파악, 주요 업무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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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협중앙회충남지역본부 자재양곡팀 ⓒ 심규상
▲ 농협중앙회충남지역본부 자재양곡팀
ⓒ 심규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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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자재양곡팀의 이 차장의 설명대로라면 충남도가 RPC별 수매가를 파악한 것은 의미가 없는 헛수고를 한 것이다. 또 공개해서는 안 될 시군 RPC의 경영 상태를 공개한 것이 된다.
충남도 농산과 양정계 관계자는 "시군 RPC별 벼 매입 가격 공개는 산지 쌀값동향 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각 시·군청을 통해 RPC별 벼 수매가를 파악하는 것은 주요 업무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해당 통계는 각 시군 RPC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농협 RPC를 기준으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충남의 한 농민은 "농협중앙회대전충남본부가 시군 RPC별 벼 매입 가격 공개를 꺼리는 것은 시군별 가격비교로 인해 단위농협에 미칠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농협이 농민들의 권익옹호보다 조직보호를 위해 앞장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농협이 시군 RPC별 벼 수매가 파악을 하지 않았다면 이는 직무유기에 다름아니다. 또 벼 수매가를 파악하고도 이런저런 이유로 공개를 꺼린 것이라면 조직보호를 위해 농민 권익을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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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도가 파악한 충남 시군 RPC별 2007년과 2008년 벼 매입가격 현황 ⓒ 심규상
▲ 충남도가 파악한 충남 시군 RPC별 2007년과 2008년 벼 매입가격 현황
ⓒ 심규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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