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풍암고등학교 앞수능시험장으로 들어가는 선배들을 응원하고 있다.
이경모
딸, 잘 견뎌줘서 고맙다!
2년 전 이맘때, 네 오빠를 시험장에 내려주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기를 몇 번하고 나니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눈에 이슬이 맺히고 말았단다.
지난해 12월 28일 첫눈 내리는 날, 네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난 뒤 견디기 어려운 슬픔이 시작되었다. 아빠는 딸과 아들에게 '엄마가 보고 싶을 때, 눈물이 나려고 할 때 하늘을 보자. 그러나 자주는 보지 말자'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 아빠도 힘들었는데 딸은 더 했겠지.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어도 늘 부족하게 받아들여지고 불평불만이 많은 게 고3인데, 슬픔까지 이겨내야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3월 6일, 우리 가족 모두가 아직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네가 친구처럼 좋아하고 의지했던 오빠가 군 입대로 집을 떠났다.
입영 전날 밤 우리집에서 가족들이 모여 케이크와 스물한 개 초, 샴페인을 준비하고 생일 축하노래에 가사를 바꿔 입영 축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눈물 대신 꼭 쥔 주먹을 비비며 "파이팅"을 외쳤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흔들림 없이 자기 역할을 다 하자는 다짐이었을 게다.
그런데 너는 얼마간 오빠의 빈 자리를 크게 느끼는 것 같았다. 아빠는 안타까웠다. 아직 엄마의 빈 자리가 채워지지 않은 것도 있었겠지만 네 오빠가 유별나게 챙겨주고 예뻐해서 그랬을 것이다.
학교 갔다 와서 습관적으로 오빠 방문을 열어 보는 것을 할머니가 보셨단다.
외롭고 허전한 마을을 달래며 시험 준비를 하는 그런 네가 걱정도 됐지만 믿음직스러웠다.
가끔 아침 일찍 아침밥을 챙겨주는 할머니께 가벼운 투정을 부렸지만 그래도 잘 넘어갔다.
내년이면 칠순인 할머니, 고3을 두 번씩이나 아니 아빠까지 세 번 수험생 뒷바라지한 할머니는 우리 가족의 버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