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마디 한자말 털기 (51) 권하다勸

[우리 말에 마음쓰기 476] ‘책을 권하다’, ‘의자를 권하다’ 다듬기

등록 2008.11.15 15:12수정 2008.11.1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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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책을 꼭 권하고 싶다

 

.. 아직도 장애인 자녀를 동네 부끄럽다고 밖으로 데리고 다니기 싫어하는 가정이 있는, 망가진 장애인 시설을 고쳐놓지 않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우리 사회에 <내게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여동생이 있습니다>라는 책을 꼭 권하고 싶다 ..  <이주영-어린이책 100선>(너른들,2003) 80쪽

 

 ‘장애인 자녀(子女)’는 ‘장애 어린이’로 다듬고, ‘가정(家庭)’은 ‘집안’이나 ‘집’으로 다듬습니다.

 

 ┌ 권(勸)하다

 │  (1) 어떤 일을 하도록 부추기다

 │   - 아버지는 나에게 해외 유학을 권했지만 / 부모들이 권하는 대로 선을 보기도

 │  (2) 음식, 담배, 물건 따위를 먹거나 피우거나 이용하라고 하다

 │   - 술을 권하다 / 음식을 권하면서 인사치레를 했다

 ├ 추천(推薦) : 어떤 조건에 적합한 대상을 책임지고 소개하다

 ├ 소개(紹介)

 │  (1)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양편의 일이 어울리게 주선함

 │  (2) 서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양편이 알고 지내도록 관계를 맺어 줌

 │  (3) 잘 알려지지 않거나, 모르는 사실이나 내용을 잘 알도록 하여 주는 설명

 │

 ├ 책을 권하고 싶다

 │→ 책을 쥐어 주고 싶다

 │→ 책을 안겨 주고 싶다

 │→ 책을 읽히고 싶다

 │→ 책을 읽으라 말하고 싶다

 │→ 책을 알려주고 싶다

 └ …

 

 책은 ‘읽으라’고 있습니다. 책은 혼자 읽으라고 있지 않고 여럿이 읽으라고, 두루두루 읽으라고, 꾸준히 읽으라고, 오늘뿐 아니라 뒷날에도 읽으라고 있습니다.

 

 첫 임자인 내 곁을 떠나 누군가한테 읽히기도 하는 책입니다. 선물을 해 준 책이 선물받은 사람 손을 거쳐 이웃사람한테 건네지기도 하는 책입니다. 물건으로 주고받는 책이기도 하지만, 물건을 떠나 안에 담긴 알맹이를 널리 나누는 책이기도 합니다.

 

 읽고서 참 좋다고 느끼니 기꺼이 둘레 사람한테 선물합니다. 읽고서 가슴이 벅차거나 뭉클했기에 혼자만 이 느낌을 맛보기 아쉬워 동무한테 건네줍니다.

 

 ┌ 해외 유학을 권했지만 → 나라밖에서 공부해 보라고 했지만

 └ 부모들이 권하는 대로 → 부모들이 시키는 대로 / 부모들이 하라는 대로

 

 세상 많은 책 가운데 현진건 님이 쓴 소설 <술 권하는 사회>가 떠오릅니다. 소설이름 그대로 우리 사회가 “술을 권하고 있음”을 찬찬히 그려냅니다. “술을 마시라고 하는 사회”, “술을 부추기는 사회”, “술을 안 마실 수 없는 사회”, “술에 푹 젖어드는 사회”라고 하던 지난날이지 싶은데, 오늘날은 지난날과 견주어 얼마나 나아졌을까 궁금합니다. 온통 답답하던 모습이 오늘날은 나아졌을지, 어느 하나 시원하게 뚫리지 않던 모습이 오늘날은 풀렸는지 궁금합니다.

 

 ┌ 술을 권하다 → 술을 들라고 하다 / 술을 마시라고 하다

 └ 음식을 권하면서 → 음식을 들라 하면서 / 음식을 먹으라 하면서

 

 답답함이 풀리지 않는 사회라면, 말과 글도 답답함에 매입니다. 갑갑함이 뚫리지 않는 사회라면, 말과 글도 갑갑함에 얽힙니다. 우리가 날마다 쓰는 말이 답답하다면, 우리가 늘 쓰는 글이 갑갑하다면, 우리 스스로 말과 글을 북돋우거나 살찌우지 못한 탓이 틀림없이 있는 한편, 우리가 일구는 사회를 우리 스스로 답답하거나 갑갑하게 내동댕이쳤기 때문이 아니랴 싶습니다.

 

 한결 나은 사회, 좀더 아름다운 세상, 서로 즐겁게 어깨동무하는 삶터, 높고 낮은 따돌림이나 푸대접이 아니라 고르게 누리는 터전이라면, 살림살이도 말과 글도 언제나 넉넉하면서 따뜻하리라 봅니다. 나은 사회가 못 되니 말도 못난 자리에서 맴돌고, 아름다운 세상이 못 되니 글도 찌그러진 채로 나뒹굴게 된다고 봅니다.

 

 

ㄴ. 의자를 권하며

 

.. 선생님은 아저씨에게 의자를 권하며 말했다 ..  <최연식-웅이의 바다>(낮은산,2005) 99쪽

 

 ‘의자(椅子)’ 같은 한자말은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을지 모르나, ‘걸상’이나 ‘자리’나 ‘앉을 자리’로 다듬으면 한결 낫습니다.

 

 ┌ 의자를 권하며 말했다

 │

 │→ 걸상을 내주며 말했다

 │→ 걸상을 밀어 주며 말했다

 │→ 걸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 걸상에 앉으라 하며 말했다

 └ …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의자’라는 한자말과 함께, ‘권하다’라는 외마디 한자말도 제법 널리 쓰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이런 낱말은 한자말이고 아니고를 살피지 않고 써도 되지 않느냐고, 그냥 우리 말로 뿌리내린 낱말이 아니냐고 여길 수 있습니다. 퍽 많은 분들은 이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책을 권한다”고 하고, “권해 주는 물건”이라고 합니다. “추천하는 책”이라 말하고 “소개하는 책”이라고 합니다. “내어주는 책”이나 “알려주는 책”이나 “들려주는 책”이라고는 좀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라고 하다”처럼 말하는 분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 선생님은 아저씨한테 앉으라고 했다

 ├ 선생님은 아저씨한테 앉을 자리를 내주며 말했다

 ├ 선생님은 아저씨한테 자리를 내주며 말했다

 └ …

 

 ‘우리 말로 굳었다’는 핑계를 앞세워, 수많은 나라밖 말이 토박이말 사이에 끼어듭니다. 수많은 토박이말은 ‘우리 말을 다양하게 살린다’는 핑계에 짓눌리기까지 하면서 죽어 갑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나라밖 말이건 토박이말이건 자기 생각만 나타내면 그만이라고 여깁니다. 수많은 책은 이냥저냥 흘러가는 세상 물결에 맞추어서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문득, 오늘 내가 디디고 있는 이 나라 이 삶터는 ‘세계화’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화라는 때에는 알맞춤하게 쓰는 토박이말 한 마디가 아니라, 세상 물결에 따라서 한 번 쓰고 버리면 되는 말마디면 넉넉할 텐데, 쓸데없는 데에 몸과 마음을 빼앗기거나 내버리고 있는 셈이겠구나 싶습니다. 새로운 정보가 쏟아지고 새로운 말이 쏟아지지만, 새로운 정보는 금세 사그라들고 새로운 말은 똑같이 사라집니다. 수없이 들락거리면서 사람들 사이에 쓰이는 얄딱구리한 말도, 사람들은 얄딱구리하다고는 조금도 느끼지 않으면서 그냥저냥 쓰다가 1회용품 버리듯 손쉽게 버리고 또다른 1회용품을 찾듯 아무 말이나 대충대충 받아들여서 쓰고, 또 버리고, 이런 되풀이를 끊이지 않습니다.

 

 그래, ‘勸하다’ 한 마디쯤이야, ‘권하다’든 ‘勸하다’든, 또는 ‘推薦하다’든 ‘추천하다’든, 그리고 ‘紹介하다’든 ‘소개하다’든 알 게 뭐람. 따질 구석이 뭐람. 사람들 모두 대충대충 살고 있는데, 그냥 돈만 잘 벌면 좋다고 히죽히죽대는데,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며 눈물지으면 하루가 즐거웠다고 말하고 있는데,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죽어나는 사람이 있어도, 그런 협정 때문에 자기 일자리는 더욱 나아진다고 하는데, 검은짓 일삼는 정치꾼이고 아니고 가리지 않고 아무한테나 표를 줄 뿐더러 아예 표를 버리기까지 하는데, 과자봉지 뒤에 적힌 제품성분조차 읽지 않고 그냥 값싼 물건이면 ‘왔다!’ 하고 여기며 사들이기만 하는데. 아이들한테 밤 열두 시가 되도록 참고서만 달달 외게 하고, 대학교 못 가면 사람이 아닌 듯 깔보고 푸대접하고 얕보고 하는데.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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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5 15:12ⓒ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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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마디 한자말 #한자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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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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