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엄마를 부르는 소설의 힘

[서평] 신경숙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

등록 2008.11.16 15:48수정 2008.11.1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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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부탁해> ⓒ 창비

<깊은 슬픔> <외딴방> <리진> 등으로 한국 문학의 중심에 서 있는 신경숙, 그녀의 새로운 장편소설이 출간됐다. 실종된 엄마를 찾는, 혹은 추억하는 <엄마를 부탁해>로 또 한 번 신경숙 소설 특유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서사를 만날 수 있게 됐다.

<엄마를 부탁해>는 아빠가 지하철역에서 엄마의 손을 놓치는 것에서 시작한다. 엄마는 어디로 간 것일까? <엄마를 부탁해>는 가족들 시점에 따라서 그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첫 번째는 장녀다. 딸은 엄마를 찾는 전단지를 돌리며 역 주변을 맴돈다. 하지만 엄마를 봤다는 사람은 없다. 세상 사람들은 그녀가 건네는 전단지에 무심할 뿐이다.


그래도 딸은 포기하지 않는다. 엄마 닮은 사람을 봤다는 소리만 들려도 달려간다. 그렇게 달려가면 엄마가 있을까? 거의 대부분 헛된 정보다. 하지만 '엄마'를 닮은 사람이 있었다는 말도 듣는다. 두 번째 화자로 등장하는 큰아들도 마찬가지다. 아들도 소식을 듣고 찾아간 곳에서 파란 슬리퍼를 신은 엄마가 있었다는 말을 듣는다.

자식들은 알게 된다. 엄마를 봤다는 그곳은, 다름 아닌 추억의 어느 장소였다는 것을. 그곳은 큰아들이 취직해서 일했던 곳이기도 하고, 처음으로 집을 산 곳이기도 했다. 실종된 엄마는 왜 그곳들에서 나타나는 것일까? 자식에게 연락하지 않고, 자식의 추억이 스며든 곳에 나타나는 것일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엄마를 잃어버린 아빠, 즉 남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남편은 언제나 빨리 걸었다. 아내의 걸음이 느리다는 것을 알아도 배려하지 않았다. 지하철역에서도 그랬다. 그때 조금만 천천히 걸었다면 어떠했을까? 아프다는 소리를 들어도 무심했고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무관심한 척 하며 살았던 남편이었다. 아내를 배려한 적이 없었다. 이번만이라도 배려해줬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눈물을 자극한다. 사랑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표현한 적 없는, 오히려 엄마를 투박하게 대했던 자식들의 가슴을 울린다. 실종된 '엄마'를 찾는다는 설정을 시작으로 사라져서도 자식들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엄마의 모습을 그렸기에, 그제야 엄마를 기억하는 자식들의 모습을 그렸기에 그렇다.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한국인이라면 소설 속의 자식이나 남편이 자신의 일인 양 생각하는 만든다.


물론 이런 설정의 소설은 많았다. 흔히 말하는 '신파'다. 하지만 <엄마를 부탁해>는 한낱 신파에 머무르는 소설이 아니다. 엄마를 이야기하며 슬퍼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엄마의 이야기를 담아내 인간으로써, 그리고 또 다른 자식으로써 살아야 했던 엄마의 마음을 담아냈다. 나아가 그 엄마를 위로해주고 있다. 신경숙은 소설로 하여금 어머니의 인생까지 담아냈고 그것을 위로해주는 단계까지 이뤄냈다. 그 성취감 앞에서 신파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 단어는 억지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가수 이적은 이 소설을 두고 "세상 모든 자식들의 원죄에 대한 이야기. 엄마에게 기대며 동시에 밀어낸 우리 자신의 이야기. 아직 늦지 않은 이들에겐 큰 깨달음이 되고, 이미 늦어버린 이들에겐 슬픈 위로가 되는, 이 아픈 이야기"라고 썼다. 맞는 말이다. 엄마에게 기대며 엄마를 밀어냈던 자식들의 이야기를 담은 <엄마를 부탁해>는 어느 원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소설이 그것을 깨우쳐줘 조금이나마 그곳을 씻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실종된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엄마를 부탁해>, 소설은 기어코 눈물을 터뜨리게 만들지만 그 슬픔은 더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낸다. 엄마, 라는 단어를 부르게 만드는 이 소설, 신경숙 소설이 한 번 더 성숙했음을 확인하게 만든다.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창비, 2008


#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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