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일, 학교법인 중앙대학교 이사장으로 취임한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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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성 중앙대학교 이사장님 안녕하십니까.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학교의 변화를 위해 동분서주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월간조선> 11월호에 실린 이사장님의 인터뷰를 본 후, 고심 끝에 펜을 들었습니다. 새 재단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학내에서 하나의 '성역'이 돼버린 이사장님께 일개 학부생이 편치 않은 글을 올린다는 것은 큰 담력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묻지 마'식 성장조급증에 걸린 듯한 학내 분위기에서 대학 본연의 가치를 논하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기에, 바른 방향의 발전과 절차적 민주성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지성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기에, 정신적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고언 한 말씀 올리려 합니다.
새 재단의 등장과 활약을 기대합니다, 그러나...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한 지도 벌써 6개월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재벌기업이 대학을 인수해 운영하는 것이 마냥 편치만은 않습니다. 대학이 자발·비자발적으로 소수 대기업의 직속 직업훈련기관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비대해진 경제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할 어떤 공간도 남아나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를 떨칠 수 없게 합니다. 따라서 종속현상의 가장 극단적 형태인 기업의 대학 인수를 편하게만 바라볼 수는 없었습니다. 둘 사이에는 적당한 긴장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대학간 경쟁이 극심한 우리 사회에서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대학'이라는 구호만으로는 학내 구성원들의 어떤 동의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시장의 논리를 거슬러 대안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지평이 점차 좁아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고착화된 대학 서열 구조를 깨지 않는 한, 돈 많은 재단 말고 다른 대안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것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두산의 중앙대 인수 자체를 여기서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대안 없는 반대를 하기엔, 대학과 학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모습이 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속물인지라, '전입금 0원'짜리 재단 다음에 들어선 부자 재단에 대해 적잖은 기대를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고요.
하지만 이사장님, 그럼에도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현실이 변했다고 해서 반드시 목적이 그에 따라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새 재단이 학교순위를 수직 상승시켜줄 것이라며 많은 학우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지금, 맹목적인 환호 반대편에 드리우고 있는 어두운 단상이 우려되는 것은 저의 기우일까요?
상식과 가치가 사치가 된 세상 속에서도,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무엇이 진리인지조차 구별하기 어려운 시대에도, '최소한'이라는 것은 있어야 합니다. 인수 후 이사장님께서 보였던 야심찬 행보는, '최소한의 독립성은 살아있는 대학'이라는 저의 소박한 기대마저 뒤흔들고 있습니다.
얼마 전 <월간조선> 11월호에 실린 이사장님 인터뷰 내용은 그 절정이었습니다.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돈으로 대학사회를 쉽게 좌지우지할 수 있고, 기업식 변혁만이 대학을 개혁하는 유일한 방향이라고 여기는 듯한 발언은 정말 큰 충격이었습니다. 아직은 대학을 시장과는 다른 곳으로 여기고 있는 제가 너무 순진한 것인지요?
중앙대는 주인 없던 집? 학생과 교수는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