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흙서점>을 비롯한 수많은 헌책방들은 어린이책 자리를 따로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최종규
여느 날 저녁나절에 마련된 혼인잔치이기에, 다른 짐스러움 없이 혼인잔치에 찾아가게 됩니다. 금요일은 도서관 문을 열어야 하는 때인 만큼, 일찍 길을 나설 수는 없고, 낙성대역 앞에 있는 헌책방에서 꼭 삼십 분쯤 책을 둘러볼 수 있도록 틈을 내어 전철을 타고 서울로 갑니다.
2호선 낙성대역에서 내려 4번 나들목으로 나가는 자동계단에서 안경을 끼고 사진기를 꺼내 필터를 닦습니다. 자동계단이 끝나고 바로 왼쪽에는 기름집이 나오고, 이 앞 작은 찻길에는 마을버스가 지나갑니다. 사람들이 참 많이 오가는 길목에 잠깐 서서 책방 둘레 모습을 두 장쯤 담습니다. 바깥에 놓인 노래테이프와 떨이 책을 휘 살펴본 다음 안으로 들어갑니다.
오랜만에 나들이한 만큼, 헌책방 〈흙서점〉에서 남달리 볼 수 있는 두툼한 몇 가지 사진책을 먼저 집어들어 살핍니다.
<a day in the life of Africa>(Tides foundation, 2002)를 펼칩니다. 아프리카라는 넓은 땅을 하루 만에 돌아보고 나서 엮은 사진책입니다. 혼자서 하루 만에 돌기란 어림없는 노릇이지만, 수많은 사진쟁이들이 구석구석 흩어져서 저마다 다른 곳에서 저마다 다른 눈으로 아프리카를 둘러본다면, 하루 만에라도 남다른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어요. 여태까지 예닐 권쯤 되는 ‘a day in the life of ……’라는 이름이 붙은 사진책을 구경했는데, 이 사진책을 볼 때면 우리 나라에서는 언제쯤 ‘한국에서 보내는 하루’ 이야기를 사진으로 묶어낼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Krig fred>(Kristian Hvidt, Lademann, 1972)는 덴마크에 나온 사진이야기책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전쟁과 이 전쟁을 막고 싶은 사람들 평화 움직임을 한데 모았습니다. 덴마크말로 적혀 있기에 글은 하나도 못 읽고 사진만 넘겨봅니다. 사진으로 이야기를 엮은 책은 글은 못 읽더라도 사진을 보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헤아릴 수 있습니다.
<The grand tour, new techniques>(Flavio Conti, HBJ Press, 1978)는 유럽과 미국에 사람들이 이루어낸 ‘우람한 건물’ 이야기를 담습니다. 영국에 있는 돌무덤, 프랑스에 있는 돌다리, 노르웨이에 있는 나무성당, 프랑스 에펠탑, 프랑스 드골 공항, 파나마 운하, 미국에 있는 후버댐, 북해에 있는 석유시추선, 독일에 있는 올림픽경기장 들이 ‘사람이 빚은 건축 가운데 빛나는 작품’이라고 보여줍니다.
그래, 참 우람하구나 하고 느끼는 한편, 사람이 남긴 건축 작품 가운데 백 해를 넘겨서까지 남는 집은 퍽 드물다고 새삼 느낍니다. 이백 해를 넘기고 삼백 해를 넘기며 즈믄 해를 넘기는 집은 더더욱 드물다고 다시금 느낍니다. 돌 하나는 만 해를 우습게 알고 나무 한 그루는 즈믄 해도 가볍게 넘기는데, 우리들 사람은 기껏 백 해를 아슬아슬하게 채우는 집 하나를 놓고서 ‘우람하다’느니 ‘아름답다’느니 하는 말을 붙입니다.
<Korea quarterly> 1호(1979년 겨울 특별호)를 봅니다. 우리나라 문화를 나라밖으로 알리고자 영어로 만든 잡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1979년에 1호를 낸 뒤 몇 호까지 내었는지 궁금한데, 주명덕님 사진을 싣고, 앤 오브라이언(Ann O'Brien) 그림을 싣기도 합니다. 어린이책 그림을 그린다는 앤 오브라이언이라는 분은 한국에서 열다섯 해를 살았다고(1979년까지) 하는데, 이분이 길에서 만난 사람을 눈여겨보고 그린 작품들에 제법 눈길이 쏠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