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세력, 대한민국 자부심 문제 소홀
긍정 역사의식 보수에 넘겨준 건 실수"

강준만 '한국 근현대사 산책' 완간 기념강연..."대한민국 정체성의 명암을 같이 보자"

등록 2008.11.29 20:52수정 2008.11.29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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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연세대 연희관에서 강의하고 있는 강준만 교수. ⓒ 오마이뉴스 김영균


'지식인의 지식인'이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 강준만(52·전북대) 교수가 역사교과서 수정을 포함한 '역사의 우편향' 논란에 대해 "진보진영의 책임이 크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29일 연세대 연희관에서 열린 강연에서다. 이날 강연은 강 교수가 집필한 <한국 근현대사 산책>(인물과 사상사, 전 28권) 완간 기념으로 이뤄졌다.

강 교수는 "진보적 사관을 갖고 있는 분들이 우리 근현대사에 대해 진보적 관점에서 서술하다 보니 본의 아닌 실수를 했다"며 "대한민국의 자부심 문제를 좀 소홀히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분단세력이 승리했고, 기회주의가 판을 친 역사라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을 전부라고 보면 안 된다"면서 "개발독재의 역사를 박정희 중심으로 쓰면 끔찍하지만, 민중의 관점에서 보면 배울 것이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또 "긍정과 낙관을 포함한 역사의식을 보수파에게 넘겨준 것은 (진보세력의) 실수"라며 "그 몫도 진보파가 챙겼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너무 사회정의만 앞세워 (역사를) 보다 보니 왜곡되고 일그러졌다"고 덧붙였다.

최근 우파진영이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의 위대함을 부각시키며 '역사적 반격'에 나선 상황에서 강 교수의 지적이 주는 교훈은 크다.

현재 뉴라이트 등은 민주화 보다 산업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이승만-박정희 시대를 되살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미 서울시내 고등학교에서는 이같은 내용을 가르치는 우파인사들의 '역사특강'이 지난 27일부터 진행 중이다.

강 교수에 따르면, 우파의 반격에는 역사의 긍정적인 면을 챙기지 못한 진보진영 역사학자들의 책임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왜 한국 근현대사 이야기는 안 읽히고, <로마인 이야기>나 <삼국지>는 많이 읽히는지 답답했다"면서 "이는 수난과 시련으로만 점철된 한국 근현대사를 우울하다는 이유로 적극 외면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이런 '문제의식'이 역사학자도 아닌 자신이 역사책(한국 근현대사 산책)을 쓰게 된 동기라고 밝혔다. 역사의 '명암'을 동시에 보게 해 독자들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게 하기 위해서라는 얘기다.

그는 강연 원고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축복과 저주는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며 "이를 잘 깨달아 사회적 현안에 잘 대처하고 미래의 진보를 기약하자는 뜻"이라고 집필 이유를 말했다.

"한국 근현대사 속 연고주의, 보수주의, 기회주의... 명암 같이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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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전북대 교수(자료사진). ⓒ 남소연

강 교수는 한국 근현대사를 살펴 본 결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10가지 명암'이 있다고 한다. 강 교수가 지적한 10가지 '어두운 정체성'은 ▲냉소주의 ▲연고주의(각개약진주의) ▲보수주의 ▲경쟁지상주의 ▲기회주의(모험주의) ▲극단주의 ▲서열주의 ▲지도자 추종주의 ▲1극주의(중앙집중주의) ▲전투주의 등이다.

하지만 그는 이 어두운 정체성이 꼭 나쁘게만 작동한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명암을 같이 봐야 한다"는 얘기다. '냉소주의'는 굴곡 많은 한국 근현대사를 살아온 대중들의 지혜로운 선택이었고, '연고주의'는 힘없는 민중들의 '자기보호 메커니즘'으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보수주의'는 근본주의에 반대한 국민들의 현실적 판단이라고도 말했다. 강 교수는 "(진보적인) 이론은 이론이고 현실은 현실일 뿐"이라며 "현실적인 정책을 근본주의가 지배할 때는 진보적 근본주의가 극우주의가 돼 버린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또 우리 근현대사에서 나타난 '기회주의'를 또 다른 측면에서 '역동성'이라고 봤다. 그는 "기회주의를 중립적 개념으로 자기 상황에 적응하는 것으로 본다면 한국의 역동성"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김성식(한나라당 국회의원), 박형준(청와대 홍보기획관), 김문수(경기도지사), 이재오(전 국회의원) 등 진보진영에서 한나라당으로 옮겨간 이들을 예로 들며 "내가 보기엔 (그들의) 생각이 바뀐게 아니라 자기 처한 상황에서 길을 뚫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강 교수는 다른 정체성의 '명암'도 현실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경쟁지상주의나 극단주의, 서열주의 등도 엄연히 우리 현실 속에 살아 있는 만큼, 이를 '아예 없애자'는 것은 불가능한 얘기라는 것이다.

강 교수는 이날 강연 마지막에 사회적 소통 방식의 변화와 공공적 연고주의 등 5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배짱 맞는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식의 소통은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며 "한국인의 유전자에 박힌 연고주의도 없앨 수 없다면, 공공적 성격으로 바꿔 사회개혁에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터넷서점 '예스24'와 '인물과사상사'가 공동 주최한 이날 강연에는 약 200여 명의 청중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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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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