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 아름답지만 왠지 씁쓸한 뒷맛

[서평] 김훈 작가 내면의 풍경이 담긴 산문집 <바다의 기별〉

등록 2008.12.08 18:18수정 2008.12.08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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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훈 에세이 <바다의 기별>

김훈 에세이 <바다의 기별> ⓒ 생각의 나무

김훈 에세이 <바다의 기별> ⓒ 생각의 나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소설 〈칼의 노래〉를 언급한 이래, 작가 김훈의 작품이 대중적 관심을 받은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책이 나오는 즉시, 온갖 블로그에서 서평이 쏟아져 나올 수 있는 작가는 몇 되지 않는다. 또한 출간 때마다 신문이나 잡지 기사가 최소 열 건 이상 되는 작가도 많지 않을 것이다. 소위 거대 언론이라 불리는 조중동은 물론이거니와 한겨레, 경향을 비롯한 다수의 매체가 쌍심지를 켜고 그의 신작에 관심을 갖는다. 때문에 가독성이나 주제의식이나 문체의 무게와는 별개로 판매도 아주 좋은 편이다.

 

평단의 극찬 역시 예외는 아니다. 너무 많은 비평가와 작가가 그의 매 작품에 똑같은 극찬과 엇비슷한 말을 늘어놓는다. 그가 하는 말, 다루는 이야기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문체, 세계관 역시 그러하다. 여느 마케팅 문구처럼 말 그대로 '벼락같은 축복'이 그에게 쏟아지는 형편이다. 마치 대중에게 그의 책을 잃지 않으면 교양인이 아니라고 말하기라도 하듯이.

 

물론 그의 밥벌이를 가능케 한 것은 완전무결함을 추구하는 단호하면서도 시적인 언어 때문일 것이다. 비장미와 서정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그의 글은 건조하면서 삶과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가득하다. 마치 딱딱한 표정의 아버지 내면에 숨겨진 부드러운 속살을 본 느낌이랄까. 때문에 많은 독자가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며, 또한 그의 글을 사랑한다.

 

최근에 나온 산문집〈바다의 기별〉은 그의 그런 장점이 잘 드러난 책으로, 특히나 작가의 과거(유년시절)를 돌아보는 글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작가의 말투가 어디서 왔는지 짐작할 수 있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도 있고, 가난했던 전쟁통 시절의 어려웠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담담하게 전개된다.

 

신화가 되어버린 언어의 씁쓸한 뒷맛

 

산문집〈바다의 기별〉이 가진 장점은 역시나 김훈 작가의 글이 갖는 그 매혹적인 문체와 연결된다. 다수의 평자나 독자가 공감하는 미학적인 문체, 너무나 단호하고 견고해서 느리게 읽지 않을 수 없는 고독과 침묵의 언어, 그러면서도 애틋한 서정성을 잃지 않는 그 여유까지. 김훈의 글을 빠르게 읽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 속독법은 다른 작가라면 몰라도 그의 작품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세상과의 불화를 극복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견뎌내면서, 고독 그 자체로써 우뚝하게 솟아오른 높은 봉우리. 그게 바로 김훈의 글이다.

 

그가 그리는 세상에는 약간의 낭만도 있고 추억도 있다. 하지만 동정과 구원은 없다. 동정 없는 세상의 삭막함 속에서 그는 침묵하면서 인간의 개별성을 묵묵히 지켜나간다. 패배나 승리 따위는 의미 없다는 것처럼, 현자적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글은 말 그대로 성웅 이순신 장군처럼 전장에 선 무사들의 읊조림과 같다. 오로지 세상은 바뀌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패배주의자 혹은 회의주의자의 내면 풍경으로 가득할 따름이다.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그는 자신 스스로가 가부장적 인간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거기에 미학적 견고함이 더해지면서 그는 신화화되었고, 거의 추앙에 가까운 언론의 찬사를 받고 있다. 책이 나올 때마다 순례해가며 모든 매체에서 그의 작품을 소개한다. 그는 이제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버린 듯하다. ‘김훈’이라는 너무나도 견고한 브랜드가 탄생한 것이다. 마치 그의 문체처럼.

 

비평가 정여울은 최근 자신의 산문집에서 작가 김훈을 일컬어 "그를 키운 8할의 에너지는 세상과의 불화였다. 나머지 2할은 고독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고독은 ‘홀로 있음’으로써 세계의 불합리를 견디며 스스로의 생을 기꺼이 연소시키는 능동적 행위에 가깝다." (150쪽,〈미디어 아라크네〉, 정여울)

 

〈바다의 기별〉중 다수의 산문에도 실려 있지만, 그는 언론과의 대화를 통해 자주 의견과 사실의 혼동이 소통 부재를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지나친 호들갑과 과장된 의견을 사실처럼 믿는 바람에 사람들이 여러 갈래로 나뉘고, 소통에 혼선이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 그는 소통을 원하고 있을까, 또한 하고 있을 것인가. 소통하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그 누구보다 단호하고 견고한 성벽을 쌓아온 작가가 김훈이다. 그 고독한 침묵의 세계 안에 머무르며 그는 아랫것들 내려다보듯 추억하고 훈계한다. 이것은 사실 소통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보단 자아도취하는 우월한 인간의 읊조림에 가깝다.

 

분명 그가 하는 말들은 일면 설득력이 있다. 편 가르기에 대한 비판, 소통 부재의 측면도 분명 그렇다. 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세계와 정신은 지나치게 늙어버렸다. 이미 세상 다 살아버린 듯 고백하는 그의 고백에 씁쓸한 뒷맛이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더불어 사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의견 자체를 뭉그러뜨리는 화법 또한 그러하다. 그의 소설은 분명 사실적 문장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모든 소설이 사실인 것만은 아니다. 굳이 신문기사일 필요는 없다.

 

동정 없는 세상에 선 회의주의자의 시선

 

〈바다의 기별〉은 작가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매혹적이지만, 지나치게 소비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가 소설을 펴내는 것은 직업이니만큼 당연한 일이지만, 이 책의 경우는 다르다. 물론 과거의 시절을 회상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둘 수는 있겠지만 그런 내용을 담은 앞부분의 뛰어난 산문들은 120페이지 가량에서 끝이 난다. 대신 나머지를 채우는 것이 바로 강연글이나 서문, 문학상 수상소감이다. 강연글은 그렇다 치더라도, 서문과 수상소감이 과연 이 책의 장점을 얼마나 살릴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더군다나 이미 여러 차례 지면과 언론을 통해 공개된 내용이 굳이 다른 산문과 같이 엮여 나온다는 것은 아무래도 그렇다. 아무리 좋더라도 계속 소비되면 질리게 마련이다.

 

그의 고매함에 모두가 동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세상과의 불화를 겪는 것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외면을 부르기 마련이다. 그를 키운 것이 비평가 정여울의 말처럼 ‘고독’이라면, 그렇다면 그의 '고독'을 키운 것은 다름 아닌 자신 스스로라고 볼 수 있다. 이건 누구에게 책임을 지울 문제가 아니다. 그가 스스로 쌓아놓은 성벽 때문이다. 그는 책에서 신념을 가진 인간보다는 의심하는 인간을 더 신뢰한다고 말한다. 이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의심 또한 결국 다르게 생각해 봐야 한다는 불확실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념이 없다면 의심도 없다. 둘은 결코 따로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다.

 

그는 동정 없는 세상에 선 회의주의자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애당초 사전에 차단해 버리고, "난 젊은 세대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면 곤란하다. 비평가 정여울의 말처럼 그건 소통 자체를 몸으로 거부하는 것이고, 시대의 복잡성을 '계통 없는 존재'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 또한 의견이지만, 그의 불확실성은 엄밀히 말해 젊은 세대에 대한 외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견고하고 완전무결하다고 믿는 좁다란 우물 위에 우뚝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불편함을 그의 글에서 느끼는 건 그 때문이다.

 

너무 많은 의견과 신념이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그것이 때때로 위협과 공포가 되기도 하는 탓에 말에 지쳤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악플과 쓰레기에 둘러 싸여 있다고 모든 의견이 그렇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물론 그것 또한 작가의 개별성이겠지만, 그 딱딱하고 단호한 고백이 실은 다른 세대와의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이었고 오해였을 수 있다. 그의 아름다운 글들을 보고 싶다. 하지만 그건 소설일 때의 경우다.

2008.12.08 18:18ⓒ 2008 OhmyNews

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생각의나무, 2008


#김훈 #바다의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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