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마지막 남긴 말, "엄마... 배고프다"

[책]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등록 2008.12.10 13:41수정 2008.12.1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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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어머니 팔순 출판기념회 참석자들이 '함께 가자 이길을'을 합창하고 있다. ⓒ 이명옥

팔순을 겸한 출판 기념회장에서 이소선 어머니의 첫 마디는 이랬다.
"비정규직이 이렇게 많은데 무슨 팔순이냐고 두 달이나 싸웠다."

그러면서  내내 비정규직의 현실이 기륭전자 해고노동자들의 단식이나 긴 농성이  마치 자신의 잘못인양 마음 아파했다. 한마디 하라고 하니 그저 '함께 가자 이 길을'이나 부르자고 하더니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비정규직의 현재는 머잖은 미래 정규직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며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고는 모두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모두 고맙고 고맙습니다"를 되뇌던 여든의 이소선 어머니.  500일을 동거동락했던 오도엽이 이소선을 노동자의 어머니가 아닌 그냥 이소선 자신으로 보고자 했던 마음이 읽히는 순간이었다.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어야만 우리는 그이를 노동자의 어머니라는 짐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전태일 열사가 원하던 '차별 없는 세상', 이소선 어머니가 노동자들과 함께 그리던 '차별없는 세상'이라는 이상향이 자꾸만 더 멀어져 가는 현실이 서글프다. 그러나 이소선 어머니 앞에서 그 누구도 감히 좌절이나 절망을 말할 수는 없으리라. 그 누구보다 혹독한 실현의 시간들을 절망하지 않고 견뎌 온 그이가 우리 앞에 서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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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어머니 팔순 출판기념회 유가협 회원들이 함께 노래를 하고 있다. ⓒ 이명옥


좋은 자리서건 투쟁의 현장에서건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이소선 어머니가 아주 가끔씩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쏟아내는 것을 보면 온 세상이 고요해진다. 그 누구도 감히 뭐라 건넬 말이 없어 그저 슬그머니 어깨를 감싸 안거나 석고처럼  얼굴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았다. 몇 번 그이의 눈물을 목도한 나는 눈길을 어디 두어야 할지 몰라 괜스레 심사가 사나와지곤 했었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고는 하지만 팔순을 맞이한 것은 분명 축복받을 일이다. 더군다나 그 누구보다 많은 자식들과 함께 온몸으로 살아낸 세월의 흔적을 지닌 분임에야 말해 무엇 하랴. 이소선 어머니가 여든 해 속에 새겨 넣었던 노동자 삶의 기억을 500일 밤 동안 녹음해 그 녹취록을 풀어 기록의 역사로 남긴 오도엽은 이렇게  말한다.

이소선을 쓰면서는 이소선과 멀어지고 싶었다. 내 속에 자리 잡은 이소선을 뿌리쳐야 글을 제대로 쓰는데 이소선의 아픔도 그저 내 아픔이 되었다. 그래서 이소선에게 못된 짓을 너무도 많이 했다.


"인자 끝나면 갈 거지?"
"그럼 엄마가 나 먹여 살릴 거야?"
"언제 갈 거냐?"
"잘 알잖아. 내가 내일 뭐 할까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야. 그걸 우찌 아노."

이소선의 가슴을 헤집는 말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런 말이 스스럼없이 나온다. 이 책이 나오고 나면, 나는 이소선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이소선이 하루에 먹는 약은 내가 하루에 먹는 밥과 비슷하다. 종합병원이 따로 없다. 이소선의 말처럼 지난 세월이 얼마나 지독했는가는 이소선의 몸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500일 동안 이소선이 지어 준 밥을 먹으면서 그 몸을 고스란히 보았다. 애써 담담하게 이소선의 이야기를 적으려 노력했지만,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들 땐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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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이소선 여든의 기억을 오도엽씨가 500일간 숙식을 함께하며 녹음한 구술을 바탕으로 풀어냈다. ⓒ 후마니타스

그 누군들 아들을 38년간 가슴에 오롯이 묻고 온몸으로 노동자들의 방패막이가 되어 준 한 어머니를 담담하게 바라보거나, 그이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낼 수 있을까.

밤마다 그리운 사람, 가슴 아픈 사람을 불러 내 위로하고 보듬어 안고 소곤대는 현장을 고스란히 보고 들은 뒤 제한된 지면, 제한된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망각에 저항하는 인간 역사의 산증인인 이소선 어머니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부터 험난한 역사의 현장 맨 앞머리에서 거친 파도를 고스란히 맞으며 끝끝내 함께 가는 길을 고집했던 사람이다. 

그이는 누구보다 강인하고 누구보다 독특한 향기를 지녔지만 세상 가운데 서면 자신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오롯이 사람들 가운데 스며들어 하나가 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와 함께 한 모든 이들에게 '지겹도록 고맙고 또 고맙다. 그립다. 보고 싶다' 끊임없이 사랑을 고백하며 토닥여 주는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이 육성으로 보내는 응원가, 희망찬 메시지는 강력한 삶의 에너지가 되어 우리 모두를 일으켜 세운다.

평범한 한 어머니가 투쟁의 최전선에 서게 된 계기는 아들 전태일의 분신 항거다. 살아있으면 올해 환갑을 맞는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자신의 몸을 불살라 깜깜한 암흑 세상에 한줄기 빛이 스며들게 한다. 그는 마지막 숨을 다할 때까지 어머니 이소선에게 자신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고 학생들과 연대해 가난한 시다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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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어머니와 아들 전태일 인형 전태일 열사가 살아있으면 올해로 환갑을 맞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인 이소선의 가슴에만 실아 있을 뿐이다. ⓒ 이명옥

"엄마 꼭 크게, 나 잊어버리고 부탁하고 가게. 크게. 크게 대답해 주세요."

그라는 거라. 그리고 피가 퍽 쏟아지고, 크게 대답하라 소리치면 피가 퍽 쏟아지고, 크게 대답하라 그러면 또 피가 퍽 쏟아지고… 그라다 한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쓰라져 있다가 태일이가 눈을 뜨며 마지막으로 뭐라 한지 아냐?

"엄마, 배가 고프다…."
그게 태일이 마지막 말이었어. 배가 고프다. 그 말을 들으니 기도 차지 않았어. 그 말이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던지 나도 정신을 잃었어.

1970년 11월 18일 전태일 항거 분신 닷새 만에 장례식이 치러졌다.

불과 스물세 살. 단 한시도 인간다운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고, 단 하루도 마음껏 배불리 먹어보지 못한, 지지리도 가난했던 한 젊은 노동자의 장례식은 그의 삶과 달리 거창하게 치러졌다.  -<청계 내 청춘>

단 한 시도 인간다운 대우를 받아 보지 못하고 단 하루도 마음껏 배불리 먹어보지 못한 채 자신의 몸을 불살라 노동운동의 씨앗이 된 전태일로 인해 이소선은 한 아들의 어머니가 아닌,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가 되어 투쟁의 일선에서 온몸 바쳐 싸우며 여든 살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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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어머니 팔순 출판기념회 기륭전자 노동자들을 비롯해 하객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함께 가자 이 길을'을 합창했다. ⓒ 이명옥


아들과의 약속을 지켜내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지만 그이는 두려워하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셀 수 없이 많은 날 경찰서를 내 집처럼 드나들고, 전담 감시 형사가 붙어 다녔다.

세 번이나 감옥살이를 하고 일흔의 나이에 국회 앞 천막 농성을 422일이나 해 낸 이소선 어머니 몸은 이제는 단 오 분 거리인 유가협을 가는데 서 너번씩 쉬어야만 하는 걸어 다니는 약창고이자 종합 병 세트다. 한 번에 두 주먹씩 먹던 약은 어느새 세 주먹이 됐고, 신경안정제가 아니면 잠들지 못한다. 그나마 밤마다 그립고 그리운 이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그이가 살아 온 세월에 비견한다면 아주 작은 기억의 파편이겠지만 그이의 삶에 새겨진 흔적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 누구에게도 마음 편한 일이 아니다.  김진숙의 <소금꽃 나무> 이후 전철에서 눈물을 쏟아내야 하는 책은 펼치지 않으려 했는데 마음과 달리 자꾸만 책장을 펼쳐 읽을 수밖에 없었다. 힘들게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부디 오래 곁에 계셔 좋은 세상 꼭 보셔야지요. 저도  고맙습니다. 어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 이소선, 여든의 기억

오도엽 지음,
후마니타스, 2008


#이소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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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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