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시작이어야 한다

[서평] 법정 스님의 산문 <아름다운 마무리>

등록 2008.12.13 19:05수정 2008.12.13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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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름다운 마무리>

<아름다운 마무리> ⓒ 이명화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내가 걸어 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긍정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이 존재계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

<홀로사는 즐거움> 이후 4년 6개월 만에 새롭게 펴낸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2008년 한해가 저물어 가는 길목에서 만났다. <아름다운 마무리>에 모은 조각글들은 산중에 홀로 칩거해 살면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말고 향기롭게’ 소식지에 한 달에 한 편씩 그때의 생각과 삶의 부스러기를 담은 것들이라 한다.


이 책에는 ‘노년의 아름다움’에서부터 ‘책에 읽히지 말라’까지 56편의 맑은 글이 한데 모여 있다. 깊은 산중에 홀로 칩거해 살면서 채소밭을 만들어 고랭지에 오이랑 고추랑 아욱 등을 손수 심고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깊은 명상과 체험 속에서 빚어낸 법정의 글은 산 속 맑은 옹달샘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맑고 상쾌한 물 맛 같다. 멀리서 전해오는 향기같다.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옆에 다기라도 두어 향기 좋은 국화꽃 차나 녹차라도 우려내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든다.

“햇차가 나올 무렵이면 꾀꼬리가 운다. 올해도 어김없이 꾀꼬리 노래를 들으면서 햇차 맛을 보았다. 반가운 철새 소리를 들으며 햇차를 음미하는 것은 삶의 고마운 운치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진달래가 필 무렵에는 소쩍새가 운다. 소쩍새는 밤에만 울지 않고 숲이 짙은 곳에서는 한낮에도 운다. 또 찔레꽃이 피어나면 뻐꾸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찔레꽃이 한창 필 무렵이면 뻐꾸기가 자지러지게 울기도 하는데 이런 때는 날씨가 몹시 가물다.”

고요한 산속에서 자연과 벗해 사는 법정 스님은 이렇듯 작은 것들에서 소박한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며 사는 것 같다. 그는 자연과 가까이 지내면서, 남쪽에서 봄이면 맨 먼저 쇠찌르레기 소리가 잠든 숲을 깨우곤 했는데 몇 해 전부터 그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벌도 점점 줄어들어 가고 있으며, 산중에 짐승들, 노루와 토끼를 본지가 오래되었다고 전한다.

문명이란 거대한 이기가 자연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있음을 염려하는 글을 또한 여기서 만난다. 법정 스님의 글을 읽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거울을 보듯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1년 전, 병을 앓아 누워있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그는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라고 말한다. 생을 살아가면서 죽음을 항상 준비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우리네 삶이 순례자요 나그네라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춘다. 그 어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순례자나 여행자의 모습으로 산다. 우리 앞에 놓인 이 우주의 선물도 그저 감사히 받아 쓸 뿐, 언제든 빈손으로 두고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한다 …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없이 떨쳐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그 생을 마감한다. 이것은 그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생명의 질서이며 삶의 신비이다. 만약 삶에 죽음이 없다면 삶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죽음이 삶을 받쳐 주기 때문에 그 삶이 빛날 수 있다.”

한해가 저문다. 지금 이 순간을 우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자신을 돌아보며 하루하루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며 한 해를 아름답게 마무리 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문득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떠오른다. 자신의 묘비명에 남기고 싶었을 텐데, 모든 살아있는 자들에게 그토록 주고 싶었던 교훈이었을까.


우리 각자 주어진 인생의 장막, 그 육신을 벗고 떠나는 그날에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그 한마디, 그래서 늘 오늘 깨어 있게 만드는, 그가 남긴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 마무리>(법정/문학의 숲)
가격:11,500원


덧붙이는 글 <아름다운 마무리>(법정/문학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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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

법정(法頂) 지음,
문학의숲, 2008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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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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