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독극물에 감염된 민주세력

[주장] 민주세력, 해독해내지 못하면 살아도 산 게 아니다

등록 2008.12.26 10:42수정 2008.12.26 10:42
0
원고료로 응원

그동안 몇 차례 시험운전을 마친 정권이 본격적인 폭주를 위한 거동을 시작하자 시정은 불난 도떼기시장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언론관련법 개정과 관련하여 MBC를 비롯한 지상파 3사의 파업이 본격적으로 개시되는가 하면, 야당은 결사저지를 다짐하며 전의를 다지고 있고, 기사 마다 정권의 폭주를 비난하고 성토하는 누리꾼들의 꼬리글이 넘쳐나고 있다. 한 기사는 방송 3사의 노조 파업으로 인한 보도프로그램 파행사태는 ‘사상초유’라며 작금의 사태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임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에 가담했다하여 아기 엄마들을 수사하는 사례를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경제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위기를 예측했다 해서 당사자를 처벌할 수도 있다고 협박하는 나라가 21세기 지구상에 몇 개국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세금을 감면하여 경기를 부양시키겠다며 부자들의 세금을 대폭 삭감하더니 세수 부족분을 서민 대중을 상대로 벌충하려는 정권이, 서민을 상대로 내놓은 복지정책이 벌금을 깎아주겠다고 한다니 대한민국 생계형 범죄자들은 이 후덕한 정권을 찬양할지어다. 또 다른 복지 정책은 ‘저소득 층 한 가구당 혜택이 연간 7만5천원씩 돌아 간다’고 한다. 월도 아니고 연간 7만5천원이라니 벌려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힘이 없어 일을 못하겠다고 한다. 정권이 출범한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좌파집권시절(?) 알박기 한 공직자들이 요직을 움켜진 채 정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한다. “집권 했어도 집권한 게 아니다.” 며칠 전 교과부 1급 이상 공직자의 일괄 사표 제출 이후 있었던 홍준표 원내대표의 발언이다. 광역 지자체와 지방의회 80%를 석권하고 국회의석 3분의 2가까이를 석권한 정당이 힘이 없어 일을 못하겠다고 한다. 유신시대처럼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임명하고 체육관 선거로 공직자를 선출한다면 그들은 포만감을 느낄 수 있을까?

 

집권 1년이 채 되지 않아 남북 화해는 십수 년 이상 후퇴했고, 외교는 난맥이 이어지며, 경제는 위기이고, 교단은 이념 논쟁으로 얼룩졌으며,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한 작금의 현실은 한국사회의 좌절이며 수렁이며 암흑이다.

 

그런데,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었는가? 정말? 사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민주화와 개혁을 모토로 집권했던 열린우리당 정권의 표류가 이 위기의 진앙지이며, 집권 기간 내내 끌려 다니기만 했던 당시 여당의 무기력이 만들어낸 쓰나미이며, 모든 상황을 아전인수로만 해석하여 현실과 무관한 낙관론의 꿈에 젖어 민주세력의 자기 혁신을 외면한채 진영 내의 이전투구에 몰두한 소위 X빠들(특정 정치인이나 세력의 무조건 지지자)이 가세하여 불러들인 대재앙이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정말 자신 있게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오늘날의 이 암흑이 단지 수구세력의 탐욕 때문에 빚어졌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울타리가 무너진 농장에 늑대가 침입했다면 책임은 울타리 관리를 잘못한 농부가 져야 한다. 남의 울타리를 넘은 늑대가 탐욕스럽고 포악하다고? 늑대는 원래 그런 짐승이다. 수구 정권에 어떤 정의로움도 기대하지 말라.

 

모든 것을 자기 유리한대로만 해석하려하는 것은 마약 중독과 같다. 걱정을 잊게 하고 시간을 잘 가게 만들지만 정작 시간이 흘러도 문제는 단 한 가지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 무도한 정권의 만행을 성토하고 비판하며 조롱하기만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면 4년이란 시간은 쏜살처럼 지날 것이다.

 

그 때가 왔다고 가정해보자. ‘대선 1년 전까지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1%도 되지 않았지만 (대선에서)승리할 수 있었다.’ 그 때도 당신은 이 말을 웃으면서 반복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민주주의는 억압 받으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며 권력의 압제가 종국에는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니 그들이 다시 집권해도 괜찮다는 궤변을 또 다시 천연덕스럽게 늘어놓을 수 있을까?

 

이러한 모든 핑계와 자기합리화야 말로 민주개혁세력을 서서히 죽어가게하는 독약이다. 민주화와 개혁에 대한 의지를 좀 먹게 하고 자기 성찰을 게을리 하게 하며, 책임을 타자에게 전가하기만 하고 현실에 대한 냉철함을 잃어,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죽어버릴 용기조차 갖지 못하게 할 만큼 무기력한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치명적인 독약이다.

 

오랜 기간 체내에 잠식하고 급기야는 사고까지 점령해버린 독물을 이젠 끊어야한다. 해독해 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12.26 10:42ⓒ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민주세력 #자기혁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와 음악 오디오 사진 야구를 사랑하는 시민, 가장 중시하는 덕목은 다양성의 존중, 표현의 자유 억압은 절대 못참아,


AD

AD

AD

인기기사

  1. 1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2. 2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3. 3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4. 4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5. 5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