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또에게 담배를 선물한 사연

경제 불황 때문에 괴로운 동료 방문 교사

등록 2009.01.02 13:00수정 2009.01.0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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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 한보루를 마니또 선물로 줘야하는 이 심정.
담배 한보루를 마니또 선물로 줘야하는 이 심정.윤태
담배 한보루를 마니또 선물로 줘야하는 이 심정. ⓒ 윤태

지난 달 31일 우리 사무실에서 송년회가 있었습니다. 음식도 준비하고 마니또(비밀친구)도 공개하면서 선물도 교환했습니다.

 

우리 사무실에 20여명의 직원이 있는데 그중 남자는 나 포함해서 세명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명 남자분중의 한명이 제 마니또가 됐습니다. 마니또가 여성이 아니라서 좀 싱겁게 됐지만.

 

제 번호를 1004로 찍어 일부러 '여성스럽게' 문자메시지 보내주면 제 남자 마니또는 문자를 들여다보며 '누굴까?' 나를 무척 잘 아는 사람 같은데...그러면서 여성 직원들 이름을 차례대로 불러봅니다. 자신의 마니또가 분명히 여성일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제 마니또.

 

제 마니또에게 어떤 선물을 해야하나 많이 고민했습니다.

 

뭔가 실용적이면서 필요한 것.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선물을 하는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왜냐면 제 마니또의 경제사정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황의 여파가 직격탄으로 날아와 내 마니또에게 상처를 주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저희가 하는 일이 독서토론논술 방문수업인데 제가 분당에서 일을 할 때는 경제적인 여건으로 수업을 중단하는 경우는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남 구시가지로 옮겨보니 불황의 여파는 대단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 마니또의 경우 한 달 교육비 5만여원도 부담스러워 수업을 중단하는 아이가 6명이나 된다고 했습니다.

 

교육비를 받지 못하고 계속 수업을 하게되면 교사의 급여에서 교육비가 빠져나가는 시스템인데 이런 상태가 몇 달 지속되면 교사에게는 큰 타격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확실하게 교육비를 받을 수 있는 보장도 없구요.

 

또 수업받던 아이가 한명이라도 빠져나가면 교사에게는 마이너스 실적이 됩니다. 그런데 한두명이 아니고 6명이나 중단하게 되면 그야말로 엄청난 타격입니다. 이 마이너스가 3개월 누적으로 지속되다보니 3개월 동안 경제적으로 괴롭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쉽게 어머니들이 수업 중단 의사를 밝혀도 쉽게 회원 아이를 놔줄수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죠. 불황의 직격탄이 회원 가정에도 교사 개개인에게도 바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마니또의 선물을 담배 한보루로 결정했습니다. 아내는 무슨 담배를 선물하냐고 얼른 바꿔오라고 난리였습니다. 1만원 선에서 담배가 아닌 다른 걸로 바꿔 오라고 말이죠. 담배는 꼴보기도 싫다며 포장도 안해준 아내.

 

제 마니또가 불황의 여파로 긴 한숨속에 섞인 고민과 스트레스를 담배 연기에 실어 공중으로 날려보내는 모습을 늘 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2~3분의 짧은 시간에 걸쳐 그것들을 잠깐 잠깐 날려보내긴 하지만 말이죠.

 

흔히 이런말들을 하죠.

 

"이거 얼마 안되지만 담뱃값이라도...."

 

그렇습니다. 담배 한갑 사 피우기도 부담스러워지는 요즘, 제 마니또가 최소 2주 동안은 담배에 대한 부담감은 갖지 않을 것입니다.

 

담배보다는 정말 따듯하고 정이 넘치는 선물 해주고 싶었는데, 불황이라는 기운이 제 손을 담배로 이끌었습니다.

 

불황이 만든 서글픈 현실이네요.

덧붙이는 글 티스토리 블로그에 있고 초점을 새로운 것에 맞춰 변형했음을 밝힙니다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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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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