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9시뉴스 클로징 멘트가 남긴 강렬한 '바로 그것'

[주장] 2009년 '제야의 종'은 진정 밝은 희망을 담았나

등록 2009.01.02 17:23수정 2009.01.02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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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제야의 종'은 대한민국에 무엇을 알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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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일 MBC뉴스데스크 클로징멘트를 하는 신경민 앵커 신경민 앵커는 이날 진실을 알리는 데 사명을 두어야 할 언론과 방송의 막중한 책임을 강조했다. "화면의 사실이 현장의 진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언론, 특히 방송의 구조가 남의 일이 아니는 점을 시청자들이 새해 첫날 새벽부터 현장실습교재로 열공했습니다."는 말은 핵심 중 핵심이었다. ['미디어 다음'에 올라온 MBC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 민종원

▲ 2009년 1월 1일 MBC뉴스데스크 클로징멘트를 하는 신경민 앵커 신경민 앵커는 이날 진실을 알리는 데 사명을 두어야 할 언론과 방송의 막중한 책임을 강조했다. "화면의 사실이 현장의 진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언론, 특히 방송의 구조가 남의 일이 아니는 점을 시청자들이 새해 첫날 새벽부터 현장실습교재로 열공했습니다."는 말은 핵심 중 핵심이었다. ['미디어 다음'에 올라온 MBC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 민종원

 

새해 첫 9시뉴스에서 흘러나온 클로징멘트는 강렬했다. 신선하다거나 용기 있다거나 하는 표현보다는 차라리 경악케했다는 표현이 더 알맞겠다. 나는 MBC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의 새해 첫 클로징멘트를 듣다 나도 몰래 머리가 쭈뼛 서고 등골이 오싹하는 느낌을 받았다. 2009년 대한민국이 맞이할 어두운 현실과 미래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들은 말이 도대체 무엇이었기에.

 

일단, 신경민 앵커가 약간 에둘러 비판한 KBS특별생방송 <가는 해 오는 해> 관련 문제에 대해서 다짜고짜 '조작' 방송이네 '왜곡' 방송이네 하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방송 현장을 있는 그대로 송출하지 않고 거기다가 '덧씌우기'를 한 일에 대해서는 일단 드러난 사실 그대로 놓아두고 얘기를 시작하련다. 그 말이 주는 느낌이 너무 너무 싫거니와 그것이 단 하루라도 현실이 되는 것은 더더욱 싫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 달리 하는 주장을 일단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싶다.

 

뉴스 방송의 꽃이요 온 국민을 상대로 방송하는 밤 9시 뉴스에서 단 하루라도 “화면의 사실이 현장의 진실과 다를 수 있다”는 일이 현실이 되는 것을 언급해준 것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무엇을 두고 어디를 향해 하는 말이었느냐고 다시 묻지 마시라. 다 아시지 않는가. 그렇게 2009년 새해 첫 날, 대한민국 국민은 이미 충분히 마음이 아팠다.

 

2009년 1월 1일 새해 첫 방송을 내보낸 MBC뉴스데스크를 홀로 맡은 신경민 앵커는 다음과 같은 클로징멘트를 남겼다.

 

"이번 보신각 제야의 종 분위기는 예년과 달랐습니다. 각종 구호에 1만여 경찰이 막아섰고요. 소란과소음을 지워버린 중계방송이 있었습니다. 화면의 사실이 현장의 진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언론, 특히 방송의 구조가 남의 일이 아니는 점을 시청자들이 새해 첫날 새벽부터 현장실습교재로 열공했습니다. 2009년 첫날 목요일 뉴스데스크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전혀 고맙지 않았다. 신경민 앵커가 전한 날카로운 지적은 고마웠으나, 그 일이 진정 현실이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재확인하게 된 사실은 전혀 고맙지 않았다. 걱정스러움은 이내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변할 정도였다. 그것은 결코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화면의 사실이 현장의 진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새해 첫날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현장 분위기를 직접 목격한 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그 일에 관해 곳곳에서 분노를 토해냈다. 한 마디로, 현실 왜곡이었으며 심하게 말하자면 ‘조작’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심하게 말한 것도 아니고 분명 왜곡이 있었으며 누구는 그것을 ‘조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충분한 왜곡이 있었다. 그것을 두고 신경민 앵커는 “화면의 사실이 현장의 진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이라고 약간 에둘러 표현했을 뿐이다. 가만, 다시보자. 사실과 진실이라. 그 묘한 차이가 느껴지는가.

 

사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

진실: 거짓이 없고 참되고 바름

[‘미디어 다음’ 국어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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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KBS특별생방송 <가는 해 오는 해> 방영 이후 시끄러워진 KBS뉴스게시판 이날 '제야의 종' 타종식을 비롯한 새해맞이 행사를 방영한 KBS특별생방송 <가는 해 오는 해> 방송 화면은 현장을 있는 그대로 담지 못하고 국민이 느끼는 불안의 이유를 상징적을 보여준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1월 2일 오후 4시 현재, 이미 1,000개가 넘는 비판글이 올라왔고 앞으로도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KBS뉴스게시판' 갈무리] ⓒ 민종원

▲ 2009 KBS특별생방송 <가는 해 오는 해> 방영 이후 시끄러워진 KBS뉴스게시판 이날 '제야의 종' 타종식을 비롯한 새해맞이 행사를 방영한 KBS특별생방송 <가는 해 오는 해> 방송 화면은 현장을 있는 그대로 담지 못하고 국민이 느끼는 불안의 이유를 상징적을 보여준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1월 2일 오후 4시 현재, 이미 1,000개가 넘는 비판글이 올라왔고 앞으로도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KBS뉴스게시판' 갈무리] ⓒ 민종원

 

사실은 실제 있었던 많은 일들 중 취사선택한 것-그것이 어떤 의미의 취사선택이냐에 따라 ‘왜곡’ 그리고 ‘조작’이라는 표현이 쓰일 수 있다-이어도 그게 말 그대로 실제 있었던 일이라면 전체나 핵심사항은 아니어도 사실에 해당한다. 그러나, 핵심을 비켜서서 실제 있었던 일들이 본래 말하려고 한 것의 진정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는 이상 그 사실은 진실에 어긋나는 거짓이 되며 참되지 못한 것이 되며 바르지 못한 일이 된다. 모든 사실이 모두 진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과 진실이 지닌 그 미묘한 차이를 이번처럼 철저히 곱씹어본 적이 또 있나 싶다. 그리고 수많은 무의미한 사실들이 우리 눈과 귀를 가린 채 진실을 목 조이는 일들이 우리가 맞이할 ‘1년 365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상상이 문득 밀려왔다. 머리가 쭈뼛 서고 등골이 오싹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미 벌어진 일을 두고, 이미 엎질러진 물처럼 되어 버린 일을 두고 특정 방송사, 특정 인물을 질책하고 싶지 않다. 의미 없는 원망도 항의도 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이제부터라도 공정한 방송과 언론, 공영 정신에 충실한 방송과 언론의 중요성에 대해 시민들이 먼저 재차 '열공'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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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제야의 종'과 관련하여 벌어지고 있는 아고라 토론 '행사 취지에 반하는' 시위 시민들을 비판하는 글과 '왜곡 보도'를 비판하는 글이 계속 맞서고 있다.['미디어 다음' 아고라 토론방 갈무리] ⓒ 민종원

▲ 2009 '제야의 종'과 관련하여 벌어지고 있는 아고라 토론 '행사 취지에 반하는' 시위 시민들을 비판하는 글과 '왜곡 보도'를 비판하는 글이 계속 맞서고 있다.['미디어 다음' 아고라 토론방 갈무리] ⓒ 민종원

2009 대한민국은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무엇을 갈망하고 있나

 

누구는 이번 일이 잠시 있다 사라진 악몽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온 국민이 보는 방송에서 원래 계획한 방송 취지에 맞지 않는 '보기 불편한 화면'을 보여줄 필요가 있느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단순한 방송사고도 아니요, 우연히 한 번 생긴 실수도 아니요, 기술력을 발휘해 '위기 상황'을 해결하는 무슨무슨 '테크닉'도 아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언론 악법' 논란이 그대로 제 갈 길을 갈 수 있다는 불안하고 위험한 가능성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때가 때이니만큼 결코 무리한 상상이 아니다. 실제 방송을 담당한 사람들 뜻은 별도로 하더라도 말이다.)

 

(참고로, <가는 해 오는 해> 방송을 총괄한 담당 국장이 오마이뉴스 전화 인터뷰를 통해 말한 바를 알게 되어 참고할 부분이 조금 있었다. 그 행사를 바라보는 시각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단순한 표현 차이인지 또는 사실과 진실의 미묘한 차이를 (서로 자기 주장에 따라) 달리 보는 분명한 해석 차이인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백번 양보해서, 원래 계획한 행사 취지에 맞지 않는 장면들을 '솎아낸' 탁월한(?) 영상 기술에 대해서는 더 이상 가타부타 말하지 않겠다. 그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다만, 유독 올해 ‘제야의 종’은 온 국민에게 희망을 알리는 종이 아니라 걱정스런 미래를 알리는 위험신호로 보였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래, 이것 역시 해석 차이일 뿐이라고 해도 좋다. 어느 쪽 해석으로 더 기우는지는 국민이 잘 알 테니 말이다.)

 

'제야의 종' 타종 행사는 본래 갖가지 희망을 온 세상에 알리고 나누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상당수 국민 특히 그 자리에 나와 '행사 취지에 반하는 행동'을 한 이들은 걱정스런 마음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희망을 말할 수 없는 '진짜 현실'을 토해내고 싶어 했다. 그건 바로 ‘행사 목적’을 강조한 주장과 ‘진짜 현실’을 강조한 주장이 맞선 사건 그 자체였다.

 

해마다 열리는 '제야의 종' 타종식과 새해맞이 행사는 그때그때 의미가 달라진다. 올해 ‘제야의 종’ 타종식은 아무리 보아도 밝은 희망을 알리는 벅찬 울림이 아니라 걱정스런 미래를 경고하는 불안한 신호로 들릴 뿐이었다. 행사 취지니 어쩌니 하는 말은 이미 충분히 알아듣겠으니 더 이상은 말하지 말 것이며, 그 반면에 국민 다수가 느끼는 불안과 걱정이 결코 ‘사실이 아닌 것이 아니다’는 분명한 사실만큼은 부디 받아들여주길 바란다.

 

사실이야 취사선택해서 각기 달리 주장할 수 있다 치자. 그러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국민 다수가 대한민국 미래에 대해 이미 서로 같이 느끼는 불안하고 걱정스런 마음마저 '입막음' 당하거나 '왜곡'(!)당해서는 안 되는 일 아닌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진짜 걱정스러운 건 바로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말하건대 나도 '희망 2009 대한민국'을 노래하고 싶다!

2009.01.02 17:23 ⓒ 2009 OhmyNews
#제야의 종 #KBS #MBC #가는 해 오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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