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성인지적(性認知的)
.. 이렇게 성인지적(性認知的) 예산이란 정부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효과를 평가해 정부의 예산 체계와 편성에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 《심상정-당당한 아름다움》(레디앙,2008) 124쪽
‘평가(評價)해’는 ‘따져서’나 ‘헤아려서’로 손봅니다. “정부의 예산 체계와 편성(編成)에”는 “정부가 예산 틀거리를 짤 때에”나 “정부가 예산 틀을 잡을 때에”로 손질하고, “반영(反映)하는 것을”은 “담아내는 일을”로 손질합니다.
┌ 성인지적 : x
├ 성인지 : x
│
├ 성인지적(性認知的) 예산
│→ 성별 인지 예산
│→ 성별 따른 예산
│→ 성별을 헤아리는 예산
│→ 성평등 예산
└ …
국어사전에 없는 ‘성인지적’이요 ‘성인지’입니다. ‘성인지’라 하면, 으레 ‘성인 잡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니 이 낱말을 풀이해야 하는 자리에는 한자로 ‘性認知的’을 따로 밝히거나 붙여야 합니다. 따로 밝히거나 붙이지 않으면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 성인지 : 性 + 認知 = 성을 인지한다
├ 인지(認知) : 어떤 사실을 인정하여 앎
└→ 성별을 받아들여서 안다 / 성별에 따라 다른 삶을 받아들여 안다
서로 알아들을 만한 말을 해야 할 우리들입니다.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쓰면서 따로 풀이말을 달거나 한자를 붙인다고 해서, 또는 알파벳을 써넣거나 길디긴 낱말풀이를 한다고 해서,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몇 번 들어도 금세 잊습니다. 쉬 머리에 남을 말을 써야 합니다.
자랑하려고 쓰는 말이 아니요, 서로 담을 쌓으며 뽐내려고 하는 말이 아니며, 계급을 나누거나 아래를 내려다보고자 펼치는 말이 아닙니다. 함께 일하자고 건네는 말이요, 같이 어울리자고 들려주는 말이며, 누구나 넉넉히 받아들이자면서 나누는 말입니다.
┌ 성별 인식 예산 / 성별 인지 예산
└ 성별 살피는 예산 / 성별 보듬는 예산
새로운 정책을 꾀하려니 새로운 낱말을 쓰게 됩니다. 아직 낯선 정책을 펼치려니 아직 낯선 말을 쓰고 맙니다. 그런데, 새로운 정책이라고 하여 사람들이 영 못 알아들을 말을 써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아직 낯선 정책이라고 하여 사람들이 도무지 헤아리기 어려운 말을 써야 하는가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정책일수록 사람들한테 좀더 가까이 느껴질 만한 말을 쓰고, 낯선 정책일수록 사람들이 좀더 빨리 알아보면서 받아들일 말을 써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정책을 꾀하는 사람과 정책을 펼칠 사람 모두, 사람들 삶과 터전과 문화를 고이 돌아보는 가운데 가장 알맞고 손쉽고 고운 말을 찾아야 하지 않느냐 싶어요.
ㄴ. 못(池)
.. 청도 가면 못(池) 있는 동네에 이가가 많았어요 .. 《박경용 엮음-이두이, 1925년 12월 25일 생》(눈빛,2005) 41쪽
할머니 한 분이 “못 있는 동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할머니가 무슨 ‘못’을 말한다고 생각할까요. ‘망치로 박는 못’을 생각할까요, 아니면 ‘물이 있는 못’을 생각할까요. 요즈음은 ‘못’이라 말하는 사람이 몹시 드물고, 모두들 ‘호수(湖水)’라고만 하니까, ‘못’ 같은 낱말은 뜬금없다고 느끼지는 않을는지요.
┌ 호수(湖水) : 땅이 우묵하게 들어가 물이 괴어 있는 곳. 못이나 늪보다 훨씬 넓고 깊다
│ - 옛날 마을이 있었던 호수 한가운데 / 호수같이 맑은 두 눈 /
│ 조그만 산에 안긴 바다는 호수처럼 고요하나
│
├ 호수 한가운데 → 못 한가운데
├ 호수같이 맑은 두 눈 → 못같이 맑은 두 눈 / 샘물같이 맑은 두 눈
└ 호수처럼 고요하나 → 못처럼 고요하나
국어사전에서 ‘못’을 찾아보면, “넓고 오목하게 팬 땅에 물이 괴어 있는 곳. 늪보다 작다”고 풀이를 합니다. ‘호수’ 풀이를 보면, “못이나 늪보다 훨씬 넓고 깊다”고 적어 놓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백두산 ‘천지(天池)’를 ‘하늘못’이라고도 일컬어 왔습니다.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있는 못이라 ‘하늘못’이라 했는지 모르지만, 그 넓은 백두산 물도 ‘못’입니다. 연을 심은 못도 ‘연못’이고요.
┌ 못 있는 동네
│
├ 연못 있는 동네
└ 못(연못) 있는 동네
가만히 보면, 적잖은 분들은 ‘물결’은 작은 모습을 가리키고, ‘파도(波濤)’는 큰 모습을 가리키는 듯 여깁니다. 그러나 물결이나 파도가 매한가지입니다. 물결은 토박이말이고, 파도는 한자말일 뿐입니다. ‘해’와 ‘태양(太陽)’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는 토박이말이고 하나는 한자말입니다. ‘못’과 ‘호수’도 다르지 않아서, 어느 한쪽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없어요. 하나는 토박이말이고 하나는 한자말로 갈리기만 합니다. 둘 사이에 다를 대목이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 문화를 일구거나 북돋워 오지 않던 흐름을 꺾지 못하고,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깎아내립니다. 우리 스스로 토박이말이 쓰일 자리를 좁힙니다. 우리 스스로 똑같은 뜻으로 똑같은 자리에 넣을 낱말로는 한자말을 우러르고 토박이말을 업신여깁니다. 토박이말로 적으면 헷갈려 하고, 한자말로 적으면 또렷하다고 생각하고 맙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공유하기
묶음표에 갇힌 한자말 (18) 성인지적(性認知的)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