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희망도 두 배 세배로 커졌으면

대전 유성오일장 새해 첫 장날 풍경

등록 2009.01.08 08:22수정 2009.01.08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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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일요일(1월4일)은 유성오일장이었다. 작정한 건 아니었지만 늦은 점심을 먹고 배낭을 둘러멨다. 날씨는 맑고 포근했다. 마침 동네에서 유성장까지 곧장 가는 마을버스가 있다. 대전시내버스노선이 전면 개편되어 중간에 시내버스를 갈아타는 경우였다면 장에 가는 길은 꽤나 번거로웠을 것이다.


a  장날에 꼭 사오는 품목중에 하나. 묵이다. 묵파는 아주머니도 변함없이 꼭 그 자리에서 묵을 파신다.

장날에 꼭 사오는 품목중에 하나. 묵이다. 묵파는 아주머니도 변함없이 꼭 그 자리에서 묵을 파신다. ⓒ 한미숙


a  동치미와 순두부를 파는 곳에도 손님들 발길이 계속 이어진다.

동치미와 순두부를 파는 곳에도 손님들 발길이 계속 이어진다. ⓒ 한미숙


a  아저씨가 따뜻한 모자를 고르고 아주머니는 열심히 설명해준다.

아저씨가 따뜻한 모자를 고르고 아주머니는 열심히 설명해준다. ⓒ 한미숙


a  모여있으니 빛깔이 더 고운 고무장갑. 한 켤레 1,000원, 두 켤레 1,000원 짜리가 있다.

모여있으니 빛깔이 더 고운 고무장갑. 한 켤레 1,000원, 두 켤레 1,000원 짜리가 있다. ⓒ 한미숙


장이 서는 날이면 가뜩이나 좁은 2차선도로가 더 복잡해진다. 차들이 다니는 길 한쪽에는 바구니마다 당근이며 달래, 버섯, 양파 등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무릎담요를 걸치거나 스티로폴 박스에 앉아 장사를 한다. 따뜻한 날씨에 주말이어서 그런지 유난히 사람들이 많았다.

유성장이 설 때마다 길이 막히는 건 예삿일이다. 사람들은 급하게 서두르지 않는다. 장날이니까 그저 그러려니 한다. 이런 느긋함과 진한 생활현장을 만나고 싶다면 유성장에 와보시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동심에 젖는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힘을 얻고 위로를 받는다.

a  늙은 호박, 엄나무, 식칼, 참게 ...모두 어디에서 와서 유성장에 모였을까요?

늙은 호박, 엄나무, 식칼, 참게 ...모두 어디에서 와서 유성장에 모였을까요? ⓒ 한미숙


시장으로 들어서는 골목엔 과일이나 생선, 생필품 등 온갖 다양한 물건들이 손님들을 기다린다. 뜨끈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손두부는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고, 팥죽을 쑤는 아주머니 손놀림이 더 바빠지는 장날. 어려워진 경제 때문인지 사람들은 싸고 양이 많은 물건 등에 몰린다. 동네마트에서 한 개 2,400원 하는 단호박은 같은 값에 두 개를 사고도 400원이 남는다. 큼지막한 손두부 한모가 1,000원, 한바구니 가득한 시금치 한 근도 1,000원이다.

a  멸치 한됫박을 사면 덤으로 따라오는 멸치도 솔찮히 많아요.

멸치 한됫박을 사면 덤으로 따라오는 멸치도 솔찮히 많아요. ⓒ 한미숙


a  여러가지 골라 담아 한근에 무조건 3,000원! 다양한 맛을 즐겨봐요.

여러가지 골라 담아 한근에 무조건 3,000원! 다양한 맛을 즐겨봐요. ⓒ 한미숙


트럭을 세워놓고 직접 과자를 굽는 곳에는 사람들이 바구니 하나씩을 들고 서 있다. 김이 들어간 센베이, 두부과자, 밤만쥬, 꽈배기, 생강과자 등 종류별로 열 가지도 넘는 과자를 늘어놓고 마음대로 골라 담아 한 근에 무조건 3,000원에 살 수 있는 과자코너인 것이다.

a  부부가 함께 일하는 '뻥튀기 아저씨네' 인기만점이에요.

부부가 함께 일하는 '뻥튀기 아저씨네' 인기만점이에요. ⓒ 한미숙


a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곡물들. 이름표가 꽂혀있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곡물들. 이름표가 꽂혀있다. ⓒ 한미숙


특히 곡물을 튀겨주는 ‘뻥튀기’ 아저씨네는 손님이 계속 이어진다. 아저씨는 일이 밀렸다고 서두는 법도 없다. 한 깡통(한방) 튀겨주는 데는 3,500원이다. 콩이나 쌀, 옥수수 말린 것이 수북이 담겨있는 깡통 속엔 이름표가 하나씩 꽂혀있다.


유성장의 뻥튀기 아저씨는 뻥을 맛나게 잘 튀기기로 소문이 났다. 충남 공주에서도 유성장의 뻥튀기 아저씨를 찾아온다. 부부가 같이 일하는 ‘뻥아저씨네’는 잠시라도 쉴 짬이 없다. 사람들은 자기 차례를 기다리면서 난롯가에 오종종 모여 사는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a  장을 보고 나면 배가 출출해진다. 단골 국밥집에 가서 다 먹을 때까지 따끈한 국밥을 먹어야 마무리가 되는 유성장. 난 이 국밥을 먹으려고 유성장에 갈 때도 있다.

장을 보고 나면 배가 출출해진다. 단골 국밥집에 가서 다 먹을 때까지 따끈한 국밥을 먹어야 마무리가 되는 유성장. 난 이 국밥을 먹으려고 유성장에 갈 때도 있다. ⓒ 한미숙


경제가 어렵다고 다들 아우성이다. 신나고 희망찬 뉴스를 듣기는 참 어려운 시절이다. 새해는 기축년(己丑年)이 아니라 긴축년(緊縮年)이라는 말로 어려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유성장 한 가운데 있으니, 시장사람들의 기운이 왠지 모를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것 같다.  


“뻥이요~”

한 깡통 담았던 옥수수 알갱이가 ‘뻥이요~’ 하자마자 다섯 배 크기까지 부풀었다. 강냉이 ‘한 짐’ 짊어지고 가는 아주머니 얼굴이 환하다. 우리네 희망도 뻥처럼 커다랗게 부풀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유성장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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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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