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새, 방에다 보라색 똥을 싸다

등록 2009.01.14 09:24수정 2009.01.1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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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혹시 우리 가족새한테 걸렸나 보다.

혹시 우리 가족새한테 걸렸나 보다. ⓒ 조찬현

혹시 우리 가족새한테 걸렸나 보다. ⓒ 조찬현

 

새똥

 

힘들게 체육대회 연습하고 나서

보람차게 집에 갈려도

새똥은 눈 깜짝할 새

내 가방을 하얀색으로 물들인다.

 

새똥도 똥이다.

똥 아니랄까봐 구린내가 진동한다.

우리 형도 새똥 맞았다.

혹시 우리 가족

새한테 걸렸나 보다.

 

동시 '새똥'은 섬진강 덕지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가 쓴 티 없이 맑은 시이다. 김용택 시인이 5년 동안 가르친 어린이들이 지은 예쁜 동시집 <우리 형 새 똥 맞았다>에 아이들이 직접 그린 재미있는 그림과 함께 실렸다. 새를 본 순간 문득 이 동시가 떠올라 가져왔다.

 

두려움 잊고 하늘로 날아오르다

 

a  갑자기 날아든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갑자기 날아든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 조찬현

갑자기 날아든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 조찬현

a  천정 모서리 종이상자에 앉은 새

천정 모서리 종이상자에 앉은 새 ⓒ 조찬현

천정 모서리 종이상자에 앉은 새 ⓒ 조찬현

 

창문을 열어놨더니 새 한 마리가 들어와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실례를 했다. 보라색 배설물이 널려있다. 아이쿠~ 이 녀석 보게, 내 옷에도 새똥을 쌌네. 난생 처음 본 보라색 새똥을 싼 이 녀석은 도대체 누구야.

 

갑자기 날아든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아무튼 반갑다.

 

이른 아침이다.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청소를 하고 있는데 녀석이 찾아든 것이다. 푸른 하늘을 맘껏 날아다니다 좁은 공간으로 날아든 녀석은 자신도 놀랐는지 천장을 배회하며 자리를 못 잡고 있다.

 

한참을 푸드덕거리던 녀석은 문을 활짝 열어놔도 놀란 탓인지 그 넓은 출입문을 쉬 찾아내질 못한다. 반가움이 이내 안타까움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천정 모서리 종이상자에 앉은 녀석은 까만 눈망울을 또록또록 뜨고 고개를 갸웃갸웃 두리번거린다. 깃털이 참 곱고 예쁘다.

 

얼마간 그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다소간의 안정을 찾은 듯 바닥으로 내려와 겅중겅중 뛰어다닌다. 방바닥을 돌아다니던 녀석은 창문으로 날아오르더니 몇 번을 퍼덕거린다. 출입문을 찾아내지 못하고 천정에서 대여섯 바퀴를 맴돌다 한참만에야 출입문을 통해 훨훨 날아갔다.

 

스스로 갇힌 새, 드디어 자유의 기쁨을 얻다

 

a  빛을 찾아야한다. 출입문을 찾아 활짝 열어젖히고 어둠에서 벗어나야 한다.

빛을 찾아야한다. 출입문을 찾아 활짝 열어젖히고 어둠에서 벗어나야 한다. ⓒ 조찬현

빛을 찾아야한다. 출입문을 찾아 활짝 열어젖히고 어둠에서 벗어나야 한다. ⓒ 조찬현

a  스스로 갇힌 새

스스로 갇힌 새 ⓒ 조찬현

스스로 갇힌 새 ⓒ 조찬현

 

이젠 자유다. 태양이 솟아오르는 동쪽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그간 얼마나 놀랐을까. 좁은 공간에 갇혀서. 새에게 괜스레 미안한 맘이 들었다.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다 싶다. 잠깐의 시간이지만 갇힘에서 벗어나 자유의 기쁨을 얻었으니 얼마나 좋을까.

 

나중에 살펴보니 녀석은 보라색 배설물을 여기저기 쏟아내고 날아갔다. 꽤나 놀란 모양이다. 이제 다시는 갇히지 말고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며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본다.

 

요즘 세상살이가 어렵다고들 한다. 휘청대는 경제에 모두들 살기가 힘들다고 한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오다 어둠이 드리운 예기치 못한 좁은 공간에 갇힌 듯하다. 빛을 찾아야 한다. 출입문을 찾아 활짝 열어젖히고 어둠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실을 직시하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우리는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 자신감이, 저력이, 희망이 있기 때문에. 어려움 훌훌 털어내고 다시 푸른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 두려움 잊고 하늘로 날아오른 한 마리 새처럼.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새똥 #자유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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