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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필 '영원한 오빠'이자 '대중가요계 황제'라 불리는 조용필(60)도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 조용필 홈피
▲ 조용필 '영원한 오빠'이자 '대중가요계 황제'라 불리는 조용필(60)도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 조용필 홈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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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의 그 찻집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 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 '그 겨울의 찻집' 모두
"오빠! 해마다 겨울이 되면 가장 생각나는 노래가 뭐야?"
"넌?"
"조용필 오빠가 부른 '그 겨울의 찻집'!"
"체! 나보다 그 오빠가 더 좋아?"
1980년대 봄부터 나는 조용필 노래에 포옥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사실 고등학교 2학년 때 라디오만 틀면 자주 나오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떴을 때에도 조용필이 부르는 노래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이란 노랫말이 나이 지긋한 사람들 귀에나 쏘옥 들어갈 것 같은 구닥다리라서 그랬다.
게다가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란 노랫말은 그때 말 도마에 자주 올랐다. 혹자는 "형제 떠난"이란 노랫말을 두고 '일제 강제징용 때 끌려간 우리나라 사람들'이라고 좋게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혹자는 '부산항을 통해 물러간 패망한 일제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라며, 호된 채찍질을 했다.
그때 내가 좋아했던 노래는 노랫말이 마치 시처럼 들리는 '편지' '저 별과 달을'(어니언스)과 '긴 머리 소녀' '하얀 나비' '이름 모를 소녀'(김정호), '꽃반지 끼고'(은희), '모닥불'(박인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양희은) 등이었다. 1980년대 끝자락까지 나를 '오빠! 오빠! 무슨 노래 좋아해?'하며 잘 따르던 그 여자도 그랬다.
근데, 1980년 봄부터 '창밖의 여자'가 포근한 아지랑이처럼 내 가슴에 스며들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내 18번이 되어버렸다. 그때 나는 창원공단 노동현장에서 탁상선반에 매달려 쇠를 깎고 있었다. 매일 이어지는 야근과 철야, 3교대에 시달리면서도 나는 '창밖의 여자'를 부르며, 그 힘든 노동을 이겨냈다.
그 노래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었을까. 그해 늦은 봄날, 정말 '창밖의 여자'란 노래 속에 나오는 그 여자처럼 한 여자가 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여자도 '창밖의 여자'란 노래를 아주 좋아했고, 참 잘 불렀다. 그때부터 그 여자와 나는 조용필 앨범만 나오면 그 누구보다 가장 먼저 샀고, 서로에게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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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필 노랫말이 좋은 대중가요가 수많은 사람들 기억에 오래 남는 애창곡이다
ⓒ 조용필 홈피
▲ 조용필 노랫말이 좋은 대중가요가 수많은 사람들 기억에 오래 남는 애창곡이다
ⓒ 조용필 홈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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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내 사랑아!
"오빠! 이번 앨범에 실려 있는 '그 겨울의 찻집'이란 노래 어때?"
"노랫말이 시 같아서 참 좋아. 곡도 너무 좋고."
"근데,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 외로움을 마셔요'란 노랫말이 너무 슬프잖아."
"한 사람을 오죽 사랑했으면 차를 마시면서 외로움을 마신다고 했겠어? 나는 말이야,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란 노랫말이 너무 맘에 들어."
창원공단 안에 있는 같은 회사 공장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던 나와 그 여자는 하루가 멀다시피 자주 만났다. 내가 야근을 하면 그 여자가 공원 벤치에 앉아 종이 커피를 홀짝거리며 밤늦은 시간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자가 야근을 할 때면 나는 그 벤치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그리움에 온몸을 떨어야 했다.
나는 그 여자가 공장 철야근무 때문에 공장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날마다 그 벤치에 앉아 '그 겨울의 찻집'이란 노래를 나직하게 불렀다. 그 여자도 내가 공장 철야근무를 하거나 무슨 중요한 약속이 있어 만나지 못할 때마다 그 벤치에 혼자 오도카니 앉아 '그 겨울의 찻집'을 부르곤 한다고 했다.
그 여자와 나는 벚꽃이 함박눈처럼 휘날리는 봄날 밤에도, 밤 매미가 요란스레 우는 여름날 밤에도, 귀뚜라미가 가슴을 슬프게 후벼 파는 가을날 밤에도 '그 겨울의 찻집'을 불렀다. 손발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에는 둘이 울산 정자 바닷가 산기슭에 둥지를 틀고 있는 하얀 찻집에 앉아 정말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그 노래를 불렀다.
1980년대 끝자락 그해 겨울. 바람 센 그날, 그 여자는 '헤어지자'라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마치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란 노랫말처럼 겨울바람 속으로 걸어가고 말았다. 그때에도 나는 울산 정자에 있는 그 하얀 찻집에 앉아 그 여자를 기다렸다. '그 겨울의 찻집'이란 노랫말에는 지금까지도 내 이십대 사랑이 한숨을 내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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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인자 김희갑 부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김희갑, 양인자, 인드라 ⓒ 인드라 카페
▲ 양인자 김희갑 부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김희갑, 양인자, 인드라
ⓒ 인드라 카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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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인자씨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싶다
해마다 겨울이 오면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가 '그 겨울의 찻집'이다. 나는 지금도 그 여자가 몹시 그리운 날이면 이 노래를 부른다. 지난해,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가 날밤을 새운 뒤에도 가까운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이 노래를 나직하게 불렀다. 그 여자를 생각하며 외로움을 마셨다.
살가운 벗과 오랜만에 만나 술로 날밤을 새울 때에도 나는 이 노래를 부르며 그 여자를 떠올렸다. 나는 지금도 '그 겨울의 찻집'이란 노랫말에서 내 이십대 안타까운 사랑을 애타게 찾고 있고, 그 여자를 그리워하고 있다. 나에게 '그 겨울의 찻집'은 곧 나 자신이고, 그 찻집에 걸린 '마른 꽃'은 곧 이십대 때 내 곁을 떠난 그 여자로 새겨져 있다.
그렇다고 이 노래가 거슬리는 노랫말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 노랫말에서도 두어 군데 거슬리는 곳은 있다. 내가 글을 쓸 때 가장 신경 쓰고 있는, 한글문화연구회 박용수 이사장이 "'의'자를 쓰지 않아야 우리말이 튼튼해진다"고 말한 바로 그 '의'자가 쓸데없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 겨울의 찻집'이란 노랫말을 지었다면 노래 제목을 '그 겨울 그 찻집'으로 지었을 것이다. 이 노래에 들어 있는 노랫말 '이른 아침의 그 찻집'도 '이른 아침 그 찻집'으로, '그대 나의 사랑아'는 '그대 내 사랑아'로 바꾸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노랫말을 짓고, 곡을 붙인 양인자, 김희갑 부부에게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의' 때문에 약간 거슬리기는 하지만 이 정도 노랫말만 해도 요즈음 유행하는,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노랫말, 국적불명인 노랫말에 비하면 잘 빚어낸 한 편 시에 버금갈 정도니까. 나는 이 자리를 빌어 이렇게 아름다고도 가슴 적시는 노랫말을 붙힌 양인자 씨에게 오히려 '정말 고맙습니다'란 인사를 하고 싶다.
노랫말이 아름다운 '그 겨울의 찻집'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중 하나다. MBC FM '오미희의 가요 응접실'에서 뽑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요 100'에서 2위(1위 김종환 '사랑을 위하여')를 차지했고, KBS 2라디오 해피FM(106.1㎒, 603㎑) '이호섭 임수민의 희망가요'(연출 박성철 김호상)에서 뽑은 '한국인의 열창 성인가요 30선, 당신의 애창곡은?'에서도 2위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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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필 노랫말이 아름다운 '그 겨울의 찻집'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중 하나다
ⓒ 조용필 홈피
▲ 조용필 노랫말이 아름다운 '그 겨울의 찻집'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중 하나다
ⓒ 조용필 홈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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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 문화가 담긴 노랫말 제대로 써야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나고 죽어가는 대중문화는 한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중 사람들 대부분이 즐겨 부르는 대중가요는 예로부터 노래를 아주 좋아하는 우리 민족에게 떼어놓을 수 없는 놀이문화이다. 대중가요란 사람들 대부분이 즐겨 따라 부르는, 특히 방송이나 음반 등을 통해 널리 퍼지는 노래를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 부르고, 그 수많은 사람들이 곳곳에 퍼뜨리는 대중가요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스스로 좋아하는 대중가요를 통해 희로애락을 드러내기도 하고, 대중가요 또한 이러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대중가요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힘은 아주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글쓴이 또한 어릴 때부터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처럼 위대한 음악가가 창작한 음악보다 따라 부르기 쉽고 피부에 직접 와 닿는 대중가요를 훨씬 더 좋아했다. 글쓴이는 말을 배우면서부터 대중가요 가락보다 노랫말이 좋은 노래를 더 즐겨 불렀다. 가락은 노랫말을 더 빨리 외우기 위한 디딤돌이었다.
뜻이 깊고 마음이 와 닿는 노랫말에 담긴 뜻을 되새기며 자꾸 흥얼거리다 보면 어디에서 가락을 더 빨리 세고 높게 해야 하고, 어디에서 가락을 늦추며 부드럽고 낮게 해야 하는지 환하게 보였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떤 노래를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고, 어떤 노래가 그대로 묻혀버리고 마는지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글쓴이는 그때부터 노랫말이 좋은 대중가요를 즐겨 불렀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리고 노랫말이 좋은 대중가요가 수많은 사람들 기억에 오래 남는 애창곡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그렇다고 다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대중가요에서 한 시대 문화가 담긴 노랫말이 차지하는 무게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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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필 1980년대 봄부터 나는 조용필 노래에 포옥 빠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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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필 1980년대 봄부터 나는 조용필 노래에 포옥 빠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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