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누구를 위하여 전을 부쳤나?

밥과 가족이란 이름의 유대, 일요일 아침 풍경

등록 2009.01.18 15:37수정 2009.01.19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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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다는 기축년 새해가 밝아온 월초. 위드블로그에서 보내온 책 <2008년 이효석 문학상 작품수상집>에서 수상작인 김애란님의 <칼자국>이란 단편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고향인 인천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자신의 어머니와 다름없이, 집안 살림과 딸자식을 건사해 온 우리의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절절히 노래한 소설을 읽고 오르골로 연주되는 태교음악을 떠올렸다.


연이어 작품집 속에 있는, 이미 상을 받은 작가인 박민규님의 자선작 <낮잠>도 읽었다. 그 속에서 아내가 죽은 뒤 늙고 병든 노인이 철없는 자식들에게 재산을 모두 나눠주고 요양원에서 쓸쓸히 지내다, 추억속의 첫사랑을 만나 사랑이란 풋풋한 감정과 행복의 순간을 맞지만 한 번 잠들면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낮잠에 빠지는 슬프지만 덤덤하기도 한 이야기를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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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어제 버섯전과 호박전을 부쳐냈다. 가족을 위해... ⓒ 이장연


그렇게 어머니와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두 편의 소설을 통해, 한평생 대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땅을 일구며 살아온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각기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가족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죽어서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가족이란 이름의 유대를 글로 담아봐야겠다는 생각도. 그 유대와 인연의 번뇌를 끊기 위해 산으로 절로 들어간 수행자의 마음도.  

올초 인터넷을 통해 본 무료 토정비결에서, "가운이 대길하여 자손이 영귀하고 화목의 기운이 찾아들어 봄바람에 눈이 녹듯이 반목이 해소된다" "크게 길할 운의 기운이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니 운수대통할 징조가 보인다" "하늘의 복과 조상의 덕이 큰 시기니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주변사람을 대해야 한다" "땅과 하늘의 기운을 받아 잉태하는 기운이 있으니 새 식구가 들어 오거나 자손이 잉태되는 희소식이 있다" 란 그리 나쁘지 않은 운해석도 떠올랐다.

밥과 가족 그리고 유대

부모와 가족의 의미나 소중함을 모르는 나이가 아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가족 특히 결혼에 대한 인연이나 미련을 버린지 오래라 소설속의 이야기나 운세는 깊게 다가오지 않는다. 다만 가족이 있음으로 해서 내가 살아있고 살아갈 수 있는 근원과 힘을 얻는다는 것에 늘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하는 것은, 장손이란 이유(?)가 아니라더라도 평생 짊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회피하고 방관하려 해도 그럴 수 없다는 것도.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적 세계관을 상징하는 인드라망에서 벗어나는 순간까지는 말이다.


암튼 어제(17일) 어머니와 제부는 오후쯤 아버지께 동생집에서 어린조카를 돌보게 하고는, 집에서 잡채에 들어갈 것들을 볶아내기도 하고 느타리버섯과 당근 등 야채를 찢고 썰어 밀가루 옷을 묻혀 버섯전과 호박전을 붙여냈다. 갈비찜과 생선을 조려낼 요량으로 베란다 가득 재료 준비도 하고 말이다. 설이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지지고 볶는 일을 한 이유는, 설 전에 할아버지 생신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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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를 끝내고 둘러앉아 다과를 즐기는 가족들, 더 많은 가족들이 있지만... ⓒ 이장연


그래서 어머니는 할머니가 그래왔듯이 제부와 함께 일년에 몇 번 모이지 못하는 대가족이 따뜻한 밥 한끼 둘러앉아 어울려 먹게 하려고 저녁까지 분주하게 움직였다. 덕분에 도서관에서 느직이 돌아와 어머니가 챙겨준 호박전과 버섯전으로 배터지게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18일) 아침 팔순을 넘긴 할아버지, 할머니, 둘째.막내 작은 아버지 가족들, 결혼한 사촌 여동생과 처남, 어린조카까지 집에 모여 거실에 상을 두 개나 펴서는 시원한 쇠고기 무국과 부침개, 잡채, 생선조림, 갈비찜 등으로 식사했다. 식사가 얼추 끝나자 외국계기업에 다니다 그만뒀다는 사촌 여동생은 웬일인지 딸기와 한라봉, 사과를 깍고 조각내 다과상을 차리고 차 주문을 받아 커피까지 타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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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결혼 생각이 없다는 사촌여동생이 딸기 좀 먹고 도서관에 가라했다. 자신도 백수라 오빠따라 도서관에서 공부 좀 해야겠다면서... ⓒ 이장연


가족과 함께 아니 누군가 함께 밥을 같이 먹는다는 행위는 바로 생명을 교감하고 유대를 돈독히 하는 상징의식과 같다. 머리가 컸다고 그 상징의식에서 늘 벗어나려 하는 나는, 오늘도 느직이 일어나 간만에 보는 얼굴들과 인사하고 구석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그러다 문득 "이게 바로 가족이구나"라는 것을, 그 따스한 기운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비쩍 마른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가며 "오빠! 제발 밥 좀 먹어라!"라고 살갑게구는 결혼한 사촌 여동생과 어느새 키가 훌쩍 커버려 작은 아버지의 젊은 모습과 똑닮은 사촌 남동생들 그리고 주름진 작은 아버지와 어머니들을 보면서.

그리고 희망보다 걱정과 불안이 엄습하고 있지만 '기축년 새해 가족 모두 건강하고 복 많이 짓길...' 밥을 먹으면서 빌었다. 나와 유대로 이어진 가족들의 안녕과 행복을. 감나무 아래서 할머니가 정화수 떠놓고 둥근 보름달을 향해 절하면서 올리던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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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함께 먹는다는 행위는 가족간의 유대를 돈독히 하는 일종의 상징의식이다. 농사꾼 집안에서는 특히... ⓒ 이장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가족 #밥 #유대 #부침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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