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소설들이 동시에 나오면 정말 난감한 걸까?

요시다 슈이치의 <사랑을 말해줘>, <사요나라 사요나라>

등록 2009.01.24 18:06수정 2009.01.2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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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이 나란히 출간됐다. 출판사 ‘은행나무’에서는 <사랑을 말해줘>가, 출판사 ‘노블마인’에서는 <사요나라 사요나라>가 출간됐는데 공교롭게도 두 소설은 모두 ‘사랑’을 말하고 있다. 이런 경우라면 걱정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작품의 우열을 논하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작가 입장에서나 독자 입장에서 그렇게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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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해줘>겉표지 ⓒ 은행나무

<사랑을 말해줘>겉표지 ⓒ 은행나무

<사랑을 말해줘>는 방송국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순페이가 교쿄를 공원에서 만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교쿄는 듣지 못한다. 상대방 입모양을 보거나 메모를 봐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순페이는 그것에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동정이나 연민을 품지 않는다. 그저 사랑할 뿐이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그리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만큼, 또한 도시에 익숙한 만큼 순페이는 온갖 소리에 둘러싸여 있다. 반면에 교쿄는 완벽한 정적 속에서도 살고 있는 여성이다. 남자들이 뒤에서 격하게 싸움을 하더라도 교쿄는 그것을 모른 채 앞의 풍경을 보면서 미소를 짓는 그런 여자다.

 

이질감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순페이는 점차 그것을 느낀다. 그리고 교코를 더 배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 때문에 그렇지 못해 점차 소홀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순페이가 파키스탄 취재 건으로 성공을 거둔 사이 쿄교는 순페이의 곁을 떠난다. 홀로 남겨진 순페이는 그제야 교쿄를 찾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정적 속으로 숨어 들어간 것처럼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소통을 하지 못한 그들의 사랑은 이대로 끝난 것일까?

 

<사랑을 말해줘>는 이렇듯 극단적으로 다른 남녀를 통해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그 이면에는 ‘관계맺기’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 담겨져 있다. 소설은 여러 번에 걸쳐 소통의 어려움과 소중함을 상기시킨다. 반가운 내용이다. 같은 언어를 쓰더라도 서로 소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소설이 던지는 말들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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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사요나라>겉표지 ⓒ 노블마인

<사요나라 사요나라>겉표지 ⓒ 노블마인

<사요나라 사요나라>는 ‘운명의 상대’였지만 가장 불행한 방법으로 만나야 했던 남자와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도쿄 근교에서 아이가 시체로 발견된다. 유력한 용의자는 엄마다. 경찰서에 간 엄마는 옆집에 사는 오자키를 공범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오자키의 과거를 조사하게 된다. 그 결과 오자키가 학생 시절에 집단강간 사건에 연루됐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건 주간지의 입장으로 볼 때 대단한 특종이었다. 과거에 범죄를 저질렀던 남자가 현재에는 옆집 여자와 공모하여 아이를 죽였다는 내용이니 오죽 그럴까? 그런데 이상하다. <사요나라 사요나라>의 오자키는 그렇게 파렴치한으로 보이지 않는다. 기자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오자키뿐만 아니라 피해여성까지 더 조사하게 된다. 그 결과 알게 되는 것은, 비극적인 것이었다. 어쩌면 가장 행복했을 수도 있었을 남자와 여자가 강간으로 인해 불행한 만남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요나라 사요나라>는 불편한 내용이다. 가해자 남자가 피해자 여성을 계속 찾았다는 그런 내용은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요시다 슈이치가 남자의 그 마음을,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사죄하고 싶어 하는, 그러면서도 진실하게 사랑하는, 동시에 지켜주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애틋하게 그려냈기에 소설은 불쾌하지 않다. 또 하나의 사랑 이야기로 아름답다. 비록 해피엔딩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사랑을 말해줘>가 관계 맺기와 소통의 어려움, 그리고 중요함을 이야기했다면 <사요나라 사요나라>는 미스터리적인 기법으로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을 그려냈다. 그래서일까. 전자는 연애소설로써의 즐거움을 톡톡히 느끼게 해주는데 반해 후자는 추상적인 사랑의 풍경을 감상하게 해준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연애소설이지만 그 맛이 사뭇 다른 셈이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출간됐고 더군다나 모두 연애소설을 표방하고 있는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들이었다. 앞서 말했듯 걱정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소설의 끝에 이르면 이것이 기우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둘 다 러브 스토리였지만 저마다의 개성으로 힘이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비교하며 읽는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그래서일까. 이런 일은 작가나 독자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라고 했는데 소설을 읽고 나자 그런 생각이 바뀌었다. 작가나 독자 모두 만족할 것이다. 좋은 소설들이기에 그렇게 되는 것이리라.

2009.01.24 18:06 ⓒ 2009 OhmyNews

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은행나무, 2009


#요시다 슈이치 #연애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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