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은 꽁꽁, 바람은 쌩쌩" 신명나는 얼음판

[윤희경의 山村日記] 팽이 속으로 아버지가 달려온다

등록 2009.01.27 16:40수정 2009.01.2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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꽝꽝 언 북한강 상류 얼음판 ⓒ 윤희경

꽝꽝 언 북한강 상류 얼음판 ⓒ 윤희경

북한강 상류엔 매일처럼 계속되는 강추위와 찬바람에 온 세상이 탱탱하다. 가는 곳마다 눈과 얼음을 주제로 한 다양한 체험행사로 썰매타기, 팽이치기, 빙어낚시로 꽁꽁한 얼음판이 시끌벅적하다.

 

물안개 피어나던 강물은 혹한을 견디다 못해 자신을 얼려내느라 쩌렁쩌렁한 울음으로 강과 산을 흔들고 있다. 미끌미끌한 빙판 위로 발을 옮겨놓을 때마다 얼음판이 쫙- 갈라질 듯 꽈당거리는 바람에 그만 가슴이 섬뜩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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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속 빙어, 유리알처럼 맑아 뱃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 윤희경

얼음속 빙어, 유리알처럼 맑아 뱃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 윤희경

하얀 빙판 위엔 매일처럼 얼음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태공도 있고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도 있다. 얼음장 깨어내 저마다 물웅덩일 하나씩 껴안고 바위처럼 앉아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를 닦듯 가부좌를 틀고 고기가 올 때를 기다리는 태공도 있다. 가족나들이 식구들은 고기가 잡히면 더 좋고, 안 잡혀도 소풍 나온 기분으로 얼음판을 뛰노는 모습들은 보기만 해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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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어찌가 간당거리면 가슴이 저려온다. ⓒ 윤희경

빙어찌가 간당거리면 가슴이 저려온다. ⓒ 윤희경

얼음 속 저 아래 요정들과 눈 맞춤 하다 찌(水標)가 간당거리면, 가슴 두근두근 시린 손 호호 불어 속살이 훤히 내비치는 빙어를 낚아내는 함성으로 강바람을 몰아낸다. 이곳 북한강 상류의 겨울은 춥되 추운 것이 아니며, 눈은 쌓여도 잠자는 겨울이 아니다. 산과 얼음판이 그대로 살아 움직거리니 세상 사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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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에 갈무리해 놓은 빙어떼 ⓒ 윤희경

얼음 속에 갈무리해 놓은 빙어떼 ⓒ 윤희경

 

빙어는 겨울철에 가장 많이 잡히는 고기중의 하나다. 빙어는 어부들의 겨울 소득원으로도 짭짤한 몫 돈을 안겨주지만, 겨울강과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과 짜릿한 손맛을 선물한다.

 

빙어는 얼음 결을 닮아 피라미보다 더 날씬하고 멸치처럼 하얗게 반짝거린다. 자세히 보면 은어와 비슷하다. 빙어는 예부터 오이 냄새가 난다하여 ‘과어(瓜魚)’라 부르기도 하고, 찬물을 좋아해 빙어란 별명을 얻었다. 찬물을 좋아하다 보니 여름내 시원한 호수바닥에서 살다 강물이 얼어붙기 시작하면 표면으로 떼를 지어 몰려나온다.

 

오늘 아침, 꽝꽝거리는 빙판 위엔 벌써 빙어 낚시꾼들로 가득하다. 저마다 써래(쇠칼)로 얼음구멍을 두어 개씩 파놓고 견지나 소형 릴낚시대로 빙어를 끌어올린다. 날씨가 추워 그런지 입질이 왕성하고 곧잘 잡혀 모두들 재미가 쏠쏠하다 야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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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빙어를! '아빠, 빙어는 언제 잡힐까' ⓒ 윤희경

아빠와 함께 빙어를! '아빠, 빙어는 언제 잡힐까' ⓒ 윤희경

빙어가 낚시 끝에 물려 파닥거릴 때 떨림이 어떤 맛인지 낚시를 해 본 사람은 다 안다. 오랫동안 속을 태워낸 첫사랑 여인의 손끝을 처음 잡았을 때 파르르 떨려오던 그런 느낌,  아님 또 뽑기 놀이에서 일등을 뽑아냈을 때의 저려오던 기쁨 같은 게 아닐까 싶다.

 

하얀 설산과 얼음판, 푸른 강물, 시원한 겨울바람은 그대로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내린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팽이도 치고 얼음축구와 눈썰매도 함께 타며 동심을 키워내는 일, 아이들에겐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이 될 것임을.

 

북한강 얼음판에 연휴를 즐기며 흥겹게 노니는 가족들과 함께하다 보니 나의 어린 시절이 어제처럼 가물가물 그리워온다. 옛날 아버지와 썰매타기, 팽이치기를 하던 그 해 겨울은 추운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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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쌩쌩, 썰매는 씽씽, 그 해 겨울은 따스했네. ⓒ 윤희경

바람은 쌩쌩, 썰매는 씽씽, 그 해 겨울은 따스했네. ⓒ 윤희경

 

두발을 벌려 썰매에 올려놓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속도가 붙어 빠르게 달리는 법을 배우고, 힘이 부치면 책상다리를 하고 느긋하게 앉거나 엎드려 끌어 달라 응석을 부렸다. 편안하게 얼음을 지치고 쌩쌩한 얼음판을 가르며 달리던 아버진 하늘을 나는 바람이었다. 썰매를 타다 손발이 시리면 모닥불 살라 손발을 녹이고, 오줌이 급하면 아버지 앞에 예사로 고추를 내놓고 하늘을 바라보며 마려움을 해결하고도 부끄럼을 몰랐다. 달랑달랑 요령을 흔들어대도 잠지를 단 것이 자랑스럽기만 했다. 저녁엔 쩍쩍 갈라진 손등에 쇠죽 쑨 등겨나 오줌 물을 발라 주물러 비벼 줬다. 그러면 튼 손이 부드럽게 되살아나곤 했다. 아버지 손은 아리게 터진 손등을 아물게 하는 약손이었다.

 

얼마나 신명나던 팽이 놀이었던가. 박달나무 한 쪽을 잘라 달걀모양의 팽이를 만들고 팽이채에 헝겊오라기를 단단히 매어달면 팽이놀이는 시작된다.  아버진, 팽이 위에 크레용으로 오색 빛을 그려 넣고 아래쪽 뾰족한 끝에단 못대가리를 박아 동그랗게 갈아주었다. 팽이가 돌기 시작하면 무지개빛 오색 꿈을 꾸었고, 팽이 끝에선 얼음나라 요정들의 노래가 들려왔다. 아무리 날씨가 쌩쌩해도 추운 줄 몰랐고 팽이치기 놀이는 온종일 얼음장을 녹여냈다.

 

'팽이야 돌아라, 팽글팽글 돌아라, 바람개비보다도 더 빨리 돌돌 돌아라.' 응얼거리며 팽이채를 돌려 매질을 해댔다. 팽이는 자꾸자꾸 맞아야 넘어지지 않고 일어나 돌고, 기운이 거세어야 옆의 팽이와 ‘딱’하고 박치기를 해도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이때 배웠다. 매질을 잘못하거나 속도가 느리면 비실비실 쓰러지기 때문에 불이 나게 처대야 했다. 매를 맞아야 살아나는 신명을 알았고, 아픈 시련을 겪은 후라야 꿈이 깨고 피어남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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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이야 돌아라, 팽이 속에 세월이 감겨온다. ⓒ 윤희경

팽이야 돌아라, 팽이 속에 세월이 감겨온다. ⓒ 윤희경

팽글팽글 잘도 돌아가는 팽이, 매끝에 정이 든다고나 할까, 돌다가 신명이 잡히면 매질이 없어도 팽이는 홀로 돈다. 세상을 살다보니 시린 풍상 앞에 이런저런 고통을 견디어내야만 의젓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이치와 진리를 가르쳐 준 팽이.

 

팽이 돌기 속에 세월이 감겨온다. 꿈속처럼 아른거리는 옛날을 어찌 잊으랴. 하얀 햇살이 얼음 살 위로 쏟아지기 시작하면 아직도 가슴엔 따스한 바람이 일어난다. 추억과 눈물이 아롱거리는 눈부신 얼음판.

 

어쩌면 그 해 겨울이 가장 행복하고 따스했던 겨울 축제의 마지막 날이었는지 모른다. 조무래기들이 재잘대는 얼음판 위, 팽이 속으로 아버지가 세월을 감아 돌리며 달려온다. 앉은뱅이 썰매를 타고 씽씽 달려온다.

2009.01.27 16:40 ⓒ 2009 OhmyNews
#빙어낚시 #빙어와 찌 #얼음판 #썰매타기 #팽이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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