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도 좋아하는 마트의 카트. 100원밖에 안 한다.
김귀현
2007년 6월 반지하에 입주한 후, 살림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첫 단독 장보기'에 도전했다. '홈 더하기'라는 굴지의 대형 마트였다. 없는 거 빼놓고 다 있었다. 시식용 음식도 푸짐했다. '파라다이스'였다.
밥상·행거·바가지 등을 카트에 담으며 리빙 코너를 접수하고, 식품 코너로 향했다. 정말 별천지였다. 그중 육류 코너가 백미였다. 시식용 삼겹살을 한 조각 베어 무니, 아니 입에 털어 넣으니(작아서 베어 물 수 없다) 살살 녹는다. 삼겹살 말고 다른 고기들도 '날 카트에 넣어'하며 유혹했다. 30분여를 고기 코너에서 서성이다 삼겹살 한 팩을 카트에 넣었다. 냉동식품도 매력적이었다. 구워주는 만두·돈가스 등을 먹어보니, 그 맛을 못 잊어 안 살 수 없었다.
세면도구와 세제도 사야 했다. 우리나라의 좋은 풍습인 '원 플러스 원'이 날 반겼다. 하나 가격으로 두 개를 산다 생각하니, 돈을 쓰러 와서 돈을 번다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증정품 달린 세제와 샴푸는 부피가 꽤 컸다. 혼자 쓰긴 좀 많은 양이었다. 그래도 공짜가 어딘가!
마지막으로 채소 사기에 도전했다. 최대 난관이었다. 뭘 얼마나 사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한참을 방황하다 순간 고개를 돌리니 양파와 감자가 다소곳이 봉지에 담겨 있었다. 정말 싸다! 3000원 정도였는데 꽤 많은 양이 들어있었다. 얼른 카트에 담았다.
세 시간을 미아처럼 떠돌아다니며 장보기를 마쳤다. 완벽한 장보기라 생각하고 당당히 계산대에 섰다. 순식간에 합계가 됐고, 금액을 본 순간 입이 '뜨악' 벌어졌다. 모니터엔 '200,000'이란 숫자가 선명했다. 이사 후 첫 장보기인지라 밥상, 냄비, X팔 프라이팬, 행거 등을 사는 데 많은 돈이 들긴 했지만 20만원은 좀 심했다.
난 분명히 싼 것만 골랐고, 내가 필요한 것만 샀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원 플러스 원'으로 분명 돈 쓰러 와서 돈 벌었는데…. 억울해도 소용없다. 분루을 삼키고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나 장본 후부터가 본게임 시작이었다. 무분별한 장보기가 불러일으킨 시련들이 곧바로 들이닥쳤다.
우선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프라이팬에 구웠더니 기름이 스멀스멀 새어나왔다. 금세 기름이 바다를 이뤘다. 뭔가 이상했다. 노릇해져야할 삼겹살은 점점 암울한 회색빛을 띤다. 입안에 넣어보니 시식했을 때의 그 맛이 아니다. 분명 시식 코너에선 살살 녹았던 고기다. 근데 집에선 녹기는커녕 고무줄처럼 질기기만 했다.
냉동 만두도 구웠다. 겉은 다 타고 속은 얼음이다. 마치 '찰떡 아이스'를 먹는 느낌이다. 돈가스도 그랬다. 튀기는 중 튀김옷이 반 정도 벗겨져 '세미 누드'가 됐다. 고기는 또 어찌나 질기던지…. 시식에 혹해서 산 음식들을 집에서 먹으니 그 맛이 안 났다. 시식용 음식엔 뭔가 입맛을 돋우는 약을 타나? 내 요리 실력, 아니 조리 실력을 원망해야 하나?
양파 한 망과 감자 한 봉지도 혼자서 먹으려니 그 양이 꽤 많았다. 찌개나 카레를 할 때는 두 개 정도만 필요했다. 남은 놈들은 냉장고 '신선칸'에 보관했다. 당연히 신선함이 유지될 줄 알았다. 며칠 후 냉장고를 열었더니, 양파는 분비물 흘리며 처참하게 썩어가고 있었다. 감자는 더했다. 이것들이 서로 눈이 맞았는지 새 생명을 잉태하고 있었다.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묵찌빠"란 구전동요가 참으로 구슬프게 들렸다.
'원 플러스 원'도 애물단지가 됐다. 혼자 살다 보니, 게다가 대용량을 샀더니 샴푸건 세제건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그대로 난 열심히 씻는 편이다). 머리는 매일 감으려 노력하니, 샴푸는 그런 대로 빨리 줄어들어 증정품까지 다 썼는데, 세제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정해년에 산 세제를 기축년까지 쓰고 있다. 벌써 '3년차'다. '플러스 원'으로 받았던 증정품은 포장조차 뜯지 않았다.
'선택과 집중' 필요한 장보기... 난 한 놈만 패!

▲ 자취생들이여, 동네 시장으로 가라! 저렴한 가격에 필요한 양만 살 수 있다.
김귀현
이런저런 실패를 겪은 이후 대형 마트엔 잘 가지 않는다. 석 달 전 집 근처에 '임아트'가 생겼지만 근처도 안 갔다. 마트가 '최저가격'으로 파는 건 확실하지만, 그만큼 많이 사게 된다. 혼자 사는 자취생은 그만큼 많이 살 필요가 없다. 요즘엔 마트 대신 가까운 동네 시장을 찾는다. 이곳이야말로 '완전 파라다이스'!. 마트만큼이나 가격이 싸고, 필요한 만큼만 살 수 있다.
돼지 뒷다리살이 한 근에 7000원이면 "3000원 어치만 주세요"하고 먹을 만큼만 산다. 한 팩이나 살 필요 없다. 채소도 한두 개씩 파니 필요한 만큼만 산다. 그날 다 먹어치우니 싹 날 걱정도 없다.
최근엔 '선택과 집중' 기술을 주로 사용한다. 이거다 싶은 찬거리만 산다. 요리할 때 그것만 넣는다. 요즘은 건강을 위해 고기를 뺀 '감자 카레'나 '양파 카레'를 주로 해먹는다. 김치찌개엔 군더더기 다 덜어내고 오로지 김치와 참치만 넣는다. 재료가 남지 않고 요리하기도 편하다. '한 놈'만 패는 거다. 자취생에게 '1식 3찬'은 그저 사치일 뿐이다.
생활용품 구입할 때는 '다있소'나 동네 할인 화장품 판매점을 이용한다. '다있소'에선 웬만한 물건을 3000원 이하로 구입할 수 있다. 특히 못도 내 맘대로 못 박는 셋방살이의 설움은 '다있소'의 '접착용 고리'가 달래준다. 할인 화장품 판매점에선 적은 양의 샴푸나 바디 클렌저를 아주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마트에서 덩치 큰 놈을 '증정품'까지 받아가며 사지 않아도 된다.
더 싼 곳도 있다. 2호선 신촌역과 4호선 길음역 주변 길거리에선 이런저런 생필품을 아주 싼 가격에 판매한다. 노란 두부 박스에 가지런히 담겨있다. 최근엔 순면 행주를 3개에 1000원, 아주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 '이태리 타월'을 2장에 천원에 구입했다. 가슴이 뛰었다.
물론 어머니만큼 '터미네이터식 장보기'를 하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뭘 사려면 그 앞에 서서 몇 분씩 꼭 고민한다. 이쯤 되면 항상 '어머니가 그립다', '난 엄마뿐이고' 등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이번엔 설도 지났고 가족 친지들에게 '쪼일 만큼 쪼였으니' 좀 다르게 마무리 할까 한다. '터미네이터'의 눈을 가진 나의 반쪽을 찾고 싶다. 장보기할 때 물건만 골라주면 된다. 장바구니는 당연히 내가 든다. 못 미더우시겠지만, 요리까지 내가 하리다. 그녀와 함께라면 햇빛 들지 않는 이 개미지옥 같은 반지하도 충분히 아름다울 텐데….
아, 오늘따라 외풍이 더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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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볼 때도 '선택과 집중'... 난 한 놈만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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