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사라져간 3천년의 신비 '월아천'

70년대부터 이어진 가뭄에 말라가는 사막의 샘

등록 2009.01.29 14:36수정 2009.01.2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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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3천년의 신비를 간직해온 웨야취안(月牙泉-초승달 모습을 한 샘).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 앞에서는 신비도 사라지고 말았다. 현재는 인공적으로 설치된 지하수로를 통해 물을 공급받고 있다

3천년의 신비를 간직해온 웨야취안(月牙泉-초승달 모습을 한 샘).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 앞에서는 신비도 사라지고 말았다. 현재는 인공적으로 설치된 지하수로를 통해 물을 공급받고 있다 ⓒ 맛객


인터넷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보고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사막 한가운데에 자리한 초승달모양의 웨야취안(月牙泉-웨야는 중국말로 초승달이라는 뜻)이 경이롭게 보였기 때문이다.(웨야취안은 문자 그대로 초승달 모양 샘물이다)

실제로도 웨야취안은 경이롭다 못해 신비로운 곳이다. 사막에 있는 샘이 3천 년 동안 한 번도 마르지 않았다고 하니 말이다. 전설에 의하면 둔황이 사막이 되자 이를 슬퍼한 선녀의 눈물이 고여 샘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리고 샘 안에 초승달을 던져 빛을 찾게 하였다고 한다. 오늘날까지 그 눈물이 마르지 않고 있으니, 선녀의 슬픔이 어느 정도였는지 미뤄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선녀의 눈물보다 더욱 슬픈 건 이제 더 이상 웨야취안은 천사의 눈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곳의 물은 이미 자연성을 상실한 인공적인 연못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어찌된 까닭인지 추적해보았다.

신비는 사라졌지만 보다 중요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웨야취안

a 밍사산(鳴沙山).  중국 서북지방인 간쑤성 둔황에서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다. 바람에 모래가 날리는 소리가 우는 듯해 이름 붙여졌다

밍사산(鳴沙山). 중국 서북지방인 간쑤성 둔황에서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다. 바람에 모래가 날리는 소리가 우는 듯해 이름 붙여졌다 ⓒ 맛객


중국 서북지방인 간쑤성의 사막도시 둔황. 실크로드의 관문이자 신라 혜초스님의 수행기인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모가오쿠(莫高窟)가 바로 둔황에 있다. 이곳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밍사산(鳴沙山). 산 전체가 모래로 덮여있는 사막산이다. 바람에 모래가 날리는 소리가 꼭 모래가 우는 것처럼 들린다 하여 밍사산으로 불리운다. 웨야취안은 밍사산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a  작년 겨울, 웨야취안 근처에서 물공사가 한창이다. 현재는 공사가 끝나 웨야취안과 물길이 이어졌다

작년 겨울, 웨야취안 근처에서 물공사가 한창이다. 현재는 공사가 끝나 웨야취안과 물길이 이어졌다 ⓒ 맛객


2008년 2월 이곳을 찾았을 때, 덤프트럭이 요란하게 오고 갔다. 우리를 낙타에 태워 밍사산과 웨야취안을 안내한 장진푸(張進福.43)의 설명에 의하면 연못 공사가 한창이라고 한다. 웬 연못이냐? 물었다. 웨야취안의 샘이 거의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말라가자, 또 다른 샘을 만들어 웨야취안에 물을 댈 목적이라고 한다. 공사는 2007년 10월부터 시작되었다. 물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곳을 지나치자 드디어 웨야취안이 시야에 들어온다.

a  바닥이 드러날절도로 웨야취안의 수심은 얕아졌다. 하지만 지하수로를 통해 물을 공급받기 시작하면서 다시 철로 된 울타리까지 물이 차올랐다

바닥이 드러날절도로 웨야취안의 수심은 얕아졌다. 하지만 지하수로를 통해 물을 공급받기 시작하면서 다시 철로 된 울타리까지 물이 차올랐다 ⓒ 맛객


한장의 사진으로 나를 감탄케 했던 바로 그 웨야취안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감동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감동도 잠시, 웨야취안의 현실 앞에서 착잡한 마음 금할 길 없었다.


웨야취안은 추운 날씨로 인해 꽁꽁 얼어있었다. 하지만 얼음이 곧 샘 바닥일 정도로 바짝 마른 상태였다. 가장 깊은 곳이 1미터 안짝에 불과했다.(1960년대만 해도 수심이 7~8미터에 이르렀다) 76년도부터 비가 거의 안 오다시피 한데다 여름철 한낮 온도가 60도까지 오르는데 이유가 있었다. 강수량 부족은 둔황만의 문제가 아니라 간쑤성 전체 문제라고 한다.

웨야취안 주위로는 철로 된 울타리가 둘러져 있었다. 하지만 울타리와 물과의 거리가 10미터 이상이나 떨어져 있어, 관광객들은 울타리 안으로 다니고 있었다. 울타리가 세워진 게 86년도라고 한다. 20여 년 만에 샘이 어느 정도나 줄어들었는지 눈으로 확인되었다.


a  밍사산에서 태어난 장진푸씨가 웨야취안을 가리키며 가뭄을 이야기하고 있다

밍사산에서 태어난 장진푸씨가 웨야취안을 가리키며 가뭄을 이야기하고 있다 ⓒ 맛객


올해 42세인 장진푸씨는 밍사산 주변에서 태어나 쭈욱 웨야취안과 함께 해왔다. 그가 어린시절만 해도 당국은 웨야취안에 관심을 두진 않았다고 한다. 입장료를 받기 시작한 것도 1983년 무렵 일이다.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밍사산을 넘어와 웨야취안에서 멱을 감으며 놀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엔 물고기도 많았다. 특히 웨야취안에서 서식하는 메기는 불로장생으로 여겨질 정도로 중국 특산 물고기였다고 한다. 직접 물고기를 잡아먹고 자랐던 장진푸씨는 맛이 좋았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현재는 씨가 마른 상태이다.

a  수령이 120여년에 이르는 버드나무(오른쪽)가 힘겹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웨야취안이 줄어들면서 현재는 인공샘에 의지하고 있다

수령이 120여년에 이르는 버드나무(오른쪽)가 힘겹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웨야취안이 줄어들면서 현재는 인공샘에 의지하고 있다 ⓒ 맛객


웨야취안과 조금 떨어진 모래언덕에 한 그루 버드나무가 서 있다. 한눈에 봐도 힘겹게 생명을 지탱하는 듯 보였다. 나무의 수령은 120년. 청나라 말기부터 웨야취안과 동고동락 해온 셈이다. 하지만 갈수록 나무와 웨야취안의 거리는 멀어져 이제는 인간이 물을 대주어야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a  웨야취안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누각에 황사먼지가 자욱하다. 청나라 건물이었지만 66년 문화혁명 때 허물어졌다가 1990년에 복원되었다

웨야취안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누각에 황사먼지가 자욱하다. 청나라 건물이었지만 66년 문화혁명 때 허물어졌다가 1990년에 복원되었다 ⓒ 맛객


웨야취안과 환상의 조화를 이루는 누각은 역사가 담긴 것처럼 오래되어 보인다. 하지만 놀랍게도 1990년에 세워졌으며, 2000년에 다시 한번 수리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낡은 것처럼 보이는 건 황사 때문이라고 하니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원래는 청나라 건축물이었지만 66년 문화혁명 때 허물어지고 말았다. 역사적인 가치보다 관광용과 복원에 의의가 있는 셈이다.

사막에서 제일가는 천이라 하여 제일천(第一泉)으로 불리었고, 청나라때는 모래우물이라는 뜻의 사정(沙井)으로 통했던 웨야취안. 현재는 물공사가 끝나 울타리 너머까지 물이 차올랐다. 비록 오랜 세월동안 마르지 않는 신비는 사라졌지만, 현세에 신비보다 소중한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웨야취안 주변에는 다음과 같은 팻말이 세워져 있다.

'물을 사랑하라! 물은 세계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다.'

물과 국민앞에 진실하지 못한 분들이 부디 새겨들었으면 한다.
#웨야취안 #둔황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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