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노조, 대법에 투쟁 선포... '속기용역' 반대

서울법원청사서 대규모 투쟁 결의대회 갖고 전면전 불사 의사 다져

등록 2009.02.01 20:12수정 2009.02.0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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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노조가 31일 서울법원청사 1층 대회의실에서 속기용역 저지를 위한 투쟁 결의대회를 갖고 있는 모습 ⓒ 신종철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사법부에서조차 어려운 노동자들이 더욱 짓밟히고 고통 받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법원가족, 법원가족’ 하지만 우리는 지금 필요에 의해 입양됐다가 다시 버려지는 고아 같은 심정이다."

이는 대법원이 지난해 11월부터 안산지원 등 4곳에서 속기업무의 효율화 명목으로 속기풀제와 속기원들의 업무 부담을 줄여 준다는 명목으로 외부에 속기 용역을 시범 실시하고 있는 것에 대한 법원 속기원 600명의 절규와 같은 분통의 목소리다.

대법원이 작성한 ‘속기용역 시범실시 계획(안)’에 따르면, 앞으로의 신문조서작성은 ▲법원 속기사들이 법정에 참여하지 않고 녹음파일을 듣고 녹취서를 작성하고 ▲도급용역 방식으로 외부업체에도 녹취서 작성을 맡기며 ▲기존의 속기사와 속기용역을 포함하는 풀(pool)제 도입 등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일반직공무원들은 속기용역은 부실재판으로 인한 사법불신을 초래하고, 법정의 발언들이 외부 업체에 파일 형태로 넘어가기 때문에 개인정보유출 가능성이 높은 매우 위험한 제도라고 경고한다.

대법원장 방문 때보다 훨씬 더 많이 모여 투쟁 결의 다져

이에 법원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오병욱)은 31일 서울법원종합청사 1층 대회의실에서 ‘속기풀제 및 용역화 저지를 위한 전조합원 결의대회’를 갖고 반대 투쟁을 적극 펼쳐 나가기로 결의하며 법원행정처에 전면전을 선포했다.

이 대회의실은 지난 2006년 9월 이용훈 대법원장이 전국 법원 순시 당시 강연을 가졌던 곳. 당시 대법원장의 방문임에도 520석 규모의 대회의실을 가득 채우지 못했으나, 이날 결의대회에는 통로까지 가득 메울 정도로 속기원과 법원공무원들 600명 정도가 참석해 투쟁 결의가 얼마나 뜨거운지를 반영했다.


오병욱 위원장 "법원도 속도전과 밀어붙이기로 구조조정 가속화"

오병욱 법원노조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속도전이 용산참사로 힘없는 서민들을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어 서민들이 죽어가고 있고 노동자들은 실직으로 길바닥에 내팽개쳐지고 있다"며 "그러나 정부에서는 누구 하나 책임지는 자가 없고,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현정부를 비판했다.

이어 오 위원장은 "법원도 속도전과 밀어붙이기식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그 첫 단계가 속기풀제 용역화"라며 "이 문제는 속기조합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첫 단계를 막아내지 못하면 수면 아래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실무관풀제, 참여관풀제, 기능직풀제를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오 위원장은 "눈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전국적인 1인 시위를 70일 넘게 이어왔다"며 "기관(법원행정처)의 수없는 방해와 술책에도 넘어가지 않고 오늘 여기까지 투쟁을 이어온 것은 절반의 승리를 거둔 것"이라고 조합원들을 격려했다.

그는 "우리는 앞으로 더 큰 투쟁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다. 어떤 술책에도 흔들리지 않는 우리를 보고 기관은 서서히 긴장하고 불안해 하고 있다"며 "전진하고 있는 우리의 승리는 확정적이다"고 말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오 위원장은 "대화조차도 거부하던 법원행정처가 대화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고지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라며 "신이 우리에게 분노의 감정을 준 것은 정당한 권리를 침해받았을 때 사용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 함께한 오늘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값진 하루가 될 것임을 믿는다. 반드시 승리하자"고 조합원들에게 승리의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권영길 "법원행정처가 밀고 나가면 양의 탈을 쓴 늑대와 같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연대사에서 "양심의 보루라고 일컬어지는 법원에서 속기노동자들을 용역화시킨다고 한다, 법원은 속기노동자들의 과중된 업무를 줄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맞느냐"고 호응을 이끌어내며 "법원 당국이 이를 계속 밀고 나간다면 양의 탈을 쓴 늑대와 같은 것이다. 법원은 속기사 문제를 즉각 철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권 의원은 "법원노동자들의 승리를 향해 전진, 또 전진하자"고 목소리를 높였고, 이에 법원공무원들은 큰 박수로 화답했다. 또한 사회를 맡은 현상훈 법원노조 사무총장은 "속기용역 전면실시 총단결로 막아내자", "비정규직 양산하는 속기용역 막아내자"라는 구호를 선창하며 분위기를 북돋웠다.

심상정 "법원공무원들의 성스러운 투쟁에 참여하겠다"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도 단상에 올라 먼저 "법원에 좋은 일로 온 적이 없다. 법원건물이 고압적인 자세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어 기분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심 공동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30일 TV토론에 나와 용산참사에 대해 사과나 조의 표현도 없어 모욕감을 느꼈다. 노동자와 서민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며 "법치는 국민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 국민을 머슴 부리듯이 해서는 안 된다"고 MB정부를 비판했다.

심 대표는 그러면서 "법원공무원들의 고단하고 성스러운 투쟁에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하기 위해 법원에 왔다"고 말해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는 "속기풀제 제지는 너무나 정당한 생존권 투쟁이다.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며 "일자리는 삶의 터전이고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이다. 우리가 우리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 대표는 끝으로 "법원공무원 동지들의 구조조정 저지 투쟁에, 좋은 정치로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돼야 하는데 지금은 힘이 부족하다"면서 "그래도 여러분들의 투쟁에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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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대회가 끝난 뒤 법원공무원들이 속기용역 반대 등의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머리 위에 올린 뒤 다함께 찢으며 투쟁 결의를 다지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모습. ⓒ 신종철


손영태 전공노 위원장 "죽을 각오로 싸워야 이긴다"

"싸우려면 죽을 각오로 싸워야 이긴다. 속기사들은 법원행정처장을 두려워하지 말라. 속기사들을 국회처럼 일반직화 시키는 게 꿈이다. 법원공무원노조 투쟁에 동참해 한 번 구속돼 보겠다. 투쟁 현장에서 만나자."

손영태 전국공무원노조위원장은 이처럼 말해 큰 함성을 받았다. 또 정헌재 전국민주공무원노조위원장도 다음과 같이 말해 박수를 받았다.

"법원행정처가 속기사 문제를 감언이설로 덮고 있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다. 이제 투쟁의 깃발을 올렸다. 중요한 것은 승리를 자신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민공노 6만 조합원들도 힘을 보태겠다."

곽승주 초대 위원장 "법원행정처 탁상행정 깨부수기 위해 모였다"

법원노조 초대 위원장이었던 곽승주 전 위원장도 다음과 같은 말로 분위기를 띄웠다.

"이렇게 강당이 꽉 찬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합원들이 많이 모이면 승리한다. 서울남부지법에서 판사가 직원들을 억류하는 사태 때 모든 조합원들이 촛불을 들고 사법민주화를 외쳤다. 처음으로 사법부 수뇌부가 두 번이나 사과를 했다”며 “과거엔 법원을 비판하면 승진은 끝났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이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을 보며 승리를 확신한다."

"속기사 동지들이 싸우고 있는 것은 법원행정처의 잘못된 탁상행정을 깨부수기 위한 것이다. 오병욱 위원장 중심으로 1만 조합원들이 똘똘 뭉쳐 정의가 흐르는 법원을 만들어내자."

오철안 영남본부장 "법원행정처, 속기사 자존심 짓밟는 새빨간 거짓말"

규탄발언에 나선 오철안 법원노조 영남지역본부장은 "법원행정처는 속기사의 업무경감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속기사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래서 전국 법원에서 1인 시위를 한 것"이라며 "효율성과 경제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탁상행정"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오히려 업무가중 정책임이 드러났다"며 "조합원들과 소통하지 않고 법원행정처의 독선과 아집으로 만들어낸 정책"이라고 법원행정처를 비판했다.

오 본부장은 "속기 직렬을 공중분해시키고 이를 계기로 일반직을 구조조정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법불신을 초래하고 대국민 사법서비스의 질을 저하시키는 잘못된 속기풀제는 당연히 폐지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노사실무회를 개최해 법원행정처가 그 테이블에 나올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며 "법원행정처가 두 귀를 막고 듣지 않으려 하면 귀를 열도록 하겠다. 법원행정처와 극단적으로 가고 싶지 않지만 법원행정처가 속기풀제를 강행하면 저항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일방행정, 탁상행정 법원행정처를 규탄한다"고 선창하며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함찬희 속기원 “인권 최후 보루 사법부조차 어려운 노동자를 짓밟아”

자유발언에 나선 수원지법 소속 함찬희 속기원은 “그동안 과중한 업무와 부당한 대우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이를 악물고 기계처럼 일해 오다가 이제 좀 일이 많다고 푸념했더니 속기사들의 업무량 감소와 업무효율화라는 사탕발림으로 속기풀제 용역화를 시행하려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함 속기원은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사법부에서조차 어려운 노동자들이 더욱 짓밟히고 고통 받고 있다”며 “앞으로 누구도 우리의 편안하고 안전한 근무여건을 보장해줄 수 없고, 불안한 환경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만큼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큰 힘을 모으자”고 단결을 촉구했다.

강보배 속기원 “필요에 의해 입양됐다 버려지는 고아 심정”

의정부지법 소속 강보배 속기원은 “속기풀제를 전면 실시하면 법원에서 일을 하면서도 마음은 법원 밖으로 쫓겨난 기분이 들 것”이라며 “법원행정처는 ‘법원가족, 법원가족’ 하지만 우리는 지금 필요에 의해 입양됐다가 다시 버려지는 고아 같은 심정”이라고 법원행정처에 야속한 마음을 표시했다.

그는 “앞으로도 즐겁게 일하고 싶고, 일하면서 뿌듯함을 느끼고 싶고, 법원에서 제일 말단직이어도 지위와 상관없이 일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싶다”며 “내 밥그릇 하나만 챙기자는 심정으로 이기적인 속기사가 되고 싶지도 않고, 자부심을 갖고 내 일을 사랑하는 법원의 속기사가 되고 싶다”고 호소했다.

박종남 서울중앙지부 조합원도 “이명박 정부의 일자리 나누기는 완전히 모순투성이다. 속기사 동지들은 법원에 들어올 때 전문직이라는 자긍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며 “투쟁으로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고 법원노조의 단결을 촉구했다.

류명자 대표 “속기 용역은 선의를 가장한 나쁜 정책”

전국법원 소속 속기사 600명의 모임인 속기분과 류명자 대표는 이날 편지낭독을 통해 눈물을 글썽이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류 대표는 “속기 용역화와 관련해 일부 관리자들은 계약직 속기사들의 내부게시판 댓글달기와 1인 시위마저 감시하며 재계약을 운운한다는 말을 듣고, 이곳 법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들에게 몰인정하다 못해 비정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법원에 대한 서운함을 내비쳤다.

이어 “이번 속기용역이 법원행정처의 주장처럼 늘어나는 속기업무량을 감당할 수 없어 취한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구조조정이라는 밑그림에 계획된 선의를 가장한 나쁜 정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그리고 머지않아 그 구조조정의 칼날은 다른 직렬에게도 들불처럼 번져나갈 것”이라고 법원행정처를 비판했다.

그는 “그동안 속기사들은 용역과 계약직의 설움도 잊은 채 법원의 한 구성원으로서 늦은 시간까지 법정과 사무실에서 충혈된 눈과 뭉친 어깨로 묵묵히 일해 왔건만, 우리가 그토록 반대하는 속기용역 도입에 대한 법원의 집요한 집착에 속기사들이 마치 가을걷이 뒤의 허수아비처럼 버려진 느낌”이라고 한탄했다.

또 “속기사로 일한 지난 10년 동안 법원에서 동료들과 함께 울고 웃었고, 힘들었지만 많은 시간 법정과 사무실에서 속기에 열중하던 소중한 시간들도 있었기에 제게 법원은 단순히 생계를 이어주는 곳 이상의 의미”라며 “그리고 그동안 근무한 10년보다 더 많은 세월을 법원과 함께 할 것”이라고 법원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류 대표는 “이제 우리 속기사들이 법원 내의 주변인으로서의 작고 힘없는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니라 더불어 숲이 돼 이 법원에서 우리의 자리를 함께 지켜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라고 법원행정처에 속기용역화 반대를 간절히 호소했다.

속기분과 권경희 신임 대표 “업무경감이라는 소리는 사탕발림”

의정부지법에서 근무하며 최근 속기분과 신임 대표로 선출된 권경희 대표는 “속기사의 업무경감이라는 소리는 사탕발림이다. 법원행정처는 가장 기본적인 건강권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생각하는 법원의 미래에는 속기사가 없다”고 비판했다.

권 대표는 “법원행정처의 밑그림이 그렇다면 우리도 준비해야 한다. 속기사 600명은 적다면 적은 숫자이나 그래서 더욱 단결할 수 있다. 이 싸움은 길어질 수 있으니 절대 지치지 마라, 모두가 단결해 투쟁하면 충분히 승산 있는 싸움이 될 것이다”라고 단결과 투쟁에 똘똘 뭉칠 것을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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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손영태 전공노 위원장,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오병욱 법원노조 위원장이 투쟁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신종철


결의문 “모든 수단과 방법 총동원 끝까지 투쟁해 저지할 것”
   
법원노조는 이날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법원노조가 그동안 반대와 철회를 요구했으나 법원행정처는 묵묵부답하면서 시범실시를 강행했다”며 “힘없는 하위직이라고 해서 이렇게 철저히 무시하는 법원의 고위관료들에게 실망과 절망을 넘어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시범실시 결과 우려하고 지적한 수많은 문제점이 현실로 나타났고, 예상한 대로 실패한 정책임이 명백하게 드러났다”며 “법원행정처는 드러난 문제점을 인식하고 실패한 정책임을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법원노조와의 대화를 통한 속기풀제 및 용역화 정책의 폐기와 그 대안을 모색할 것과 내부적인 갈등을 발전적으로 해소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려는 모범적인 사용자로서 성실한 모습을 보여줄 것을 마지막으로 강력히 촉구한다”고 압박했다.

법원노조는 그러면서 “부실재판으로 인한 사법불신을 막기 위해 또 재판정보의 유출로 인한 국민들의 사생활 침해를 보호하기 위해 속기풀제 용역화를 반대하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저지 투쟁을 할 것을 결의한다”고 천명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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