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누워있는 엄마도 많이 어지럽겠어요"
"묘지로 올라가는 이 계단 좀 봐. 그렇잖아도 급경사에 울퉁불퉁한 계단을 잘못 밟다가는 곧장 묘지로 직행하겠구먼. 손잡이라도 있어야지, 이거 위험해서 성묘 한번 제대로 할 수 있겠나."
"이게 뭐야. 묘지 가지고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자칫하면 발을 헛디뎌 뒤로 떨어질까 봐 절을 제대로 할 수가 있어야지."
지난 1월 27일(화) 오전 11시. 설날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장모님 성묘를 하기 위해 찾은 김해 영락공원묘원. 이날도 이 묘원에는 100여명 남짓한 사람들이 '절벽묘지' 앞에 술과 간단한 음식을 차려놓고 성묘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설날인 26일(월) 이곳 묘원으로 올라가는 2차선 차도가 너무 막혀 성묘를 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날 장인어른과 아내, 처가 식구, 조카들을 합쳐 10여명 남짓 탄 차 3대가 묘원 들머리에 들어서자 조카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꾸불꾸불한 도로를 타고 가는 차 바로 곁에 아스라한 낭떠러지가 한눈에 들여다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멘트 포장을 한 도로 곳곳이 마구 튀어나와 있어 차가 심하게 흔들린 탓도 있다.
아찔했다. 게다가 묘지 맞은편에서 차가 한 대 나오고 있어, 서둘러 조금 더 넓은 도로로 뒷걸음질을 쳐 묘지 쪽으로 바싹 붙여야 했다. 상대편 차는 창문을 열어 고개를 내밀고 절벽 쪽을 바라보며 마치 외줄타기하듯 겨우 빠져나갔다. 그 낭떠러지가 있는 곳에는 뾰쪽한 돌멩이만 촘촘히 박혀 있다.
기가 찰 일이다. 그때 처남이 "저기 안쪽에 조금 넓은 공터가 있으니 그쪽에서 차를 돌려 올 테니 먼저 내리십시오. 여기 올 때마다 겁이 나서 원..." 했다. 차에서 내려 장모님 묘지가 있는 곳으로 놓인 울퉁불퉁한 시멘트 계단을 행여 돌부리에라도 걸릴까 조심조심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보자 어지럼증이 일었다.
장모님 묘소에 도착하자 동서가 "아무리 묘지 장사라 해도 너무하는구먼요. 묘 한 기라도 더 쓰기 위해 이렇게 비좁게 해 놓은 것 아닙니까"라며 "다른 공원묘지에도 몇 번 가보았는데 이렇게 엉망진창인 곳은 처음 봐요" 한다.
처제도 한 마디 끼어든다. "저기 누워 있는 엄마도 많이 어지럽다 그러시겠어요. 엄마는 살아생전에도 높은 곳에는 잘 가시지 못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묘소 앞에서도 한꺼번에 다 절을 하지 못해 돌아가면서 엉거주춤 대충 절을 하고 나자 장인 어른은 위험한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폴짝거리는 손자, 손녀들 챙기느라 바쁘다.
"아무리 돈이 좋다 해도 산 사람 생각도 해야지"
성묘를 끝내고 아슬아슬한 시멘트 계단을 조심조심 밟으며 내려오고 있는데, 저만치 성묘객 한 사람이 산마루에 우뚝 선 묘원 건물을 행해 삿대질을 몇 번씩이나 한다. 가까이 다가가 "왜 그러냐?"라고 묻자 "아, 보시면 모르겠어요. 아무리 죽은 사람 돈이 좋다 해도 산 사람 생각도 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라며, 막말을 내뱉는다.
'절벽도로'로 내려오자 성묘를 온 사람들 몇몇이 비석처럼 모여 서서 웅성거린다. 모두들 위험표지판과 안전시설 하나 없는 '절벽도로'와 '절벽묘지'에 대해 입방아를 찧는 소리다. 서울에서 왔다는 김아무개(43)씨는 "지난 추석 때 관리사무소에 항의를 했는데,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 걸 보면 아예 '배 째라'는 소리 아닙니까?"라며, 혀를 끌끌 찼다.
부산에서 왔다는 이아무개(25)씨는 "지난해 가을에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는데, 부산에 묘지가 없어 할 수 없이 이곳으로 모셨다. 장례를 치를 때는 하도 경황이 없어 잘 몰랐었는데, 지금 와서 다시 살펴보니 이곳 묘원이 이렇게 위험한 곳인 줄 미처 몰랐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이장할 수도 없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마산에서 왔다는 서아무개(47)씨는 "마산진동묘원은 도로도 널찍하고, 묘지시설도 참 잘 되어 있다. 이곳에 삼촌이 묻혀 있는데, 성묘를 올 때마다 황천길을 걷는 기분"이라며, "묘원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어떻게 허가를 받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도 몰래 슬며시 분통이 터지기 시작했다. 나 또한 진동공원묘원에 몇 번 갔었다. 한 번은 고인이 된 서양화가 현재호 선생에게 분향하기 위해서였고, 또 몇 번은 시인 이선관 선생과 시인 정규화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였다. 하지만 장모님이 묻혀 있는 이곳에서 설 뒷날부터 묘원 관리소 사람들과 맞붙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요, 거기가 좀 위험하긴 해요"
그로부터 10여일이 훨씬 지난 11일(수) 김해시청 교통행정과에 손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다른 분이 받으며 "담당자가 어제 당직을 섰기 때문에 지금 자리에 없습니다. 자세한 위치와 장소를 알려주시면 담당자에게 알려 곧바로 현장에 나가도록 하거나 전화번호를 알려주시면 담당자에게 내일 아침 곧바로 전화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영락공원묘원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묘원 관리 담당자를 바꿔달라"고 하자, 자신이 담당자인 듯 "말해보라"고 했다. "묘원으로 가는 도로가 너무 비좁고 위험하지 않나?"라고 묻자 "그쪽에는 내리막이기 때문에 길을 더 넓힐 수가 없다"라고 못 박은 뒤 "걸어가는 게 나을 텐데"라는 알쏭달쏭한 답을 했다.
"그렇다면 위험표지판이나 안전시설이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라고 다시 묻자 관계자는 "나무를 심으려 해도 도로가 더 비좁아지기 때문에 심을 수가 없다. 절벽 쪽으로 쇠말뚝을 박아 안전시설을 하려고 해도 처음 도로를 낼 때 너무 좁게 잡아가지고 박을 만한 여유 공간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묘지는 또 왜 그렇게 비좁고 위험하게 만들었느냐?"고 묻자 관계자는 "묘지 쪽 경사도가 너무 심해 묘지터를 좁힐 수밖에 없었다. 묘지를 계단식으로 만든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 말에 따르면 비좁은 도로에 돌멩이를 군데군데 박아놓은 것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계속 그렇게 위험하게 둘 거냐? 만약 안전사고라도 생기면 그땐 어떡하려고 그러느냐?"고 따지듯 묻자, 관계자는 "그래요. 거기가 좀 위험하긴 해요. 우리도 한번 연구해 볼게요"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해시 교통행정과 관계자는 12일 오전 10시 전화통화에서 "현장을 한번 보고 위험표지판이나 안전시설을 하든지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다시 김해시청 안내전화를 걸어 "공원묘원 허가 및 관리를 담당하는 곳은 어디냐?"고 묻자 "여성가족부"라고 하면서 전화를 돌려줬다. 여성가족부 담당자에게 "이 공원묘원 언제 시공했느냐?"고 묻자 "자료를 찾아봐야겠다. 허가는 경남도에서 한다. 공원묘원에 전화를 한번 해보겠다. 그곳에서 어떻게 할 건지…"라고 말했다.
기가 찰 일이다. 정월대보름날 화왕산 억새 태우기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는 참사가 일어난 것도 이러한 안전불감증 때문이었다. 해마다 명절 때나 성묘철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차를 몰고 몰려드는 김해 영락공원묘원. 이 묘원에도 화왕산과 같은 큰 참사가 일어날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소 잃고 난 뒤 외양간 고친다'는 옛말을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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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 '절벽묘지'... 성묘길이 황천길 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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