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근처 우물에 숨겨진 무서운 비밀

[자전거 세계일주 94] 멕시코 치첸이차(Chichen Itza)

등록 2009.02.17 10:04수정 2009.02.1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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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첸이차 마야 어로 '우물가의 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치첸이차마야 어로 '우물가의 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문종성

“자전거는 밖에다 세워두시고, 입장료는 10달러 되겠습니다.”
“아니, 자전거를 밖에다 세워두다 뭐라도 잃어버리면 어떡해요? 사무실에라도 맡기면 안 될까요?”
“그건 곤란합니다. 자전거 세워 놓을 공간이 없어요. 여기 입구 옆에다 세워놓고 입장하시죠. 그럼, 전 이만.”

멕시코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거대 마야문명인 치첸이차를 보기위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려온 길이다. 하지만 푸른 상념을 깨뜨리는 불친절한 직원의 말은 타 유적지의 두세 배인 입장료 10달러의 압박마저 상쇄시켰다. 비싸고, 불친절하다면 미련없이 뒤돌아서는 게 당당한 내 길. 하지만 이번엔 아니다. 그 직원은 정글 도로를 헤치고 예까지 거친 호흡으로 달려온 자전거 여행자가 관람을 포기하는 무모한 베팅은 하지 않을 거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이곳이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한 죽기 전 꼭 가 봐야 할 곳 13위에 랭크됐단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투표방법과 선정기준에 대한 논란의 여지를 남기긴 했지만 어쨌든 ‘新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공표되기도 했다. 이만하면 치첸이차 유적을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개런티다. 해서 직원 말대로 불안함 가득 안고 자전거를 입구 바깥에 세워놓고 티켓을 끊었다. 10달러. 이틀 치 생활비를 투자한 만큼 반드시 뽕은 뽑아야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진 채.

목조 가면 마야인들의 늠름한 기상을 느낄 수 있다.
목조 가면마야인들의 늠름한 기상을 느낄 수 있다.문종성

유적지 입구부터 각종 공예품과 직물, 기념품 등을 파는 인디오들의 노점좌판이 줄을 이었다. 여행자들에게 물건 하나 팔아보겠다고 흥정을 걸어오는 표정들이 저마다 제각각이다. 코 묻은 아이와 늙은 노파가 합세해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눈빛을 보내는가 하면, 곰살궂은 표정으로 장사하는 여인네는 서양 노인 여행자들만 주 타킷으로 삼는다. 한 젊은 친구는 제법 유창한 영어로 상품의 특별함과 구매해야 하는 이유를 열렬히 토해내는가 하면, 물건을 조막만한 손에 쥐고 내내 손님 뒤꽁무니만 쫓아오는 아이들도 있다.

주위가 정글인데도 마야문명의 흔적만은 노란 대지 위에 벌판처럼 펼쳐져 있었다. 유난히 세찬 바람이 불고 쓸려온 모래가 시선을 덮을 때에도 독야청청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피라미드가 보인다. 한 눈에 봐도 치첸이차의 중심으로 보여지는 건축물, 마야의 코찰케아틀(Quetzalcoatl) 신인  쿠쿨칸(Kukulcan)이라고도 부르는 카스티요(El Castillo)다. 

까스띠요(El Castillo) 스페인 어로 '성(城)'이란 뜻이며 9세기 초에 완성된 거대한 건축물이다. 피라미드 자체가 마야의 달력을 나타내고 있는데 사방의 계단 91개와 정상의 1단을 더하며 총 365개의 계단이 된다.
까스띠요(El Castillo)스페인 어로 '성(城)'이란 뜻이며 9세기 초에 완성된 거대한 건축물이다. 피라미드 자체가 마야의 달력을 나타내고 있는데 사방의 계단 91개와 정상의 1단을 더하며 총 365개의 계단이 된다. 문종성

멕시코 피라미드에 대해서, 특히 마야문명이 이룩한 건축학적 기술이나 천문학적 성과를 더 설명한다면 입만 아플 것 같다. 이미 몬테 알반 등에서 마야문명의 진면목을 맛보지 않았던가. 그러나 한 번 더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봐도봐도 신기한 지적 과학과 감성적 예술의 창조적 만남에 이리도 감탄해 마지않을 수 없는 것을.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였다. 이 카스티요 역시 마야인의 달력을 피라미드에 쏙 투영시킨 건축학의 승리였다. 바닥부터 위로 오르는 계단이 91개, 그리고 꼭대기에 하나 더. 계단의 합이 총 365. 거기에 이 신전은 9층 기단으로 구성되어 중앙계단으로 나누기 때문에 18이라는 숫자가 나오는데 이것은 1년을 18개월로 나누는 마야인의 생활과 꼭 맞는다.


치첸이사의 하이라이트 까스띠요 피라미드 정면 모습.
치첸이사의 하이라이트까스띠요 피라미드 정면 모습.문종성

그런데 그런 숫자놀음보다 나를 더 당황시킨 것은 따로 있었다. 왠지 보기만 해도 숨이 차다 했더니 여기 경사각이 흐트러짐 없는 45도를 유지한단다. 갑자기 지난 멕시코시티에서 테오티우아칸의 어질어질했던 피라미드 등정기가 생각나 아찔해진다. 다행인지 다리가 후들거릴 일은 생기지 않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밟고 올라간 통에 유적이 훼손이 많이 되어 지금은 유적에 오르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카스티요의 백미라던 빨간 재규어 상과 차끄 몰 상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은 불행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요거? 몬테 알반에도 있었던 거잖아?”
왠지 반갑다고나 해야 할까. 구기장(Juego de Pelota)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반가움이 앞서 촐랑촐랑 잔디 위를 뛰어버렸다. 기억난다. 공놀이라기보다 신에게 바쳐질 제물을 결정하는 중요한 빅게임으로 신성한 종교의식에 더 가까웠던 몬테 알반의 그 귓전을 때리는 함성 소리. 


“이게 말이죠. 사실 경기장처럼 보이지만 종교 의식으로 보는 편이 더 타당하다니까요. 손을 사용하지 않고, 골을 넣어야 하는 경기죠. 가만 있자, 여기선 어디다 넣어야 되나?”
“가이드가 저 벽에 설치된 동그란 골문으로 넣어야 한다는군요.”
“그런가요? 아무튼 그거 알아요? 중요한 건 이 경기에서 지면 그걸로 끝. 제물로 바쳐진다는 군요. 후, 정말 끔찍하죠.”
“지금 가이드 하는 말 들었어요?”
“네?”
“이기는 팀의 캡틴이 영광스럽게 제물로 바쳐진다는데요?”

그룹 여행 온 서양여행자들 사이에서 조곤조곤 슬쩍 아는 체를 했더니 바로 직격탄이 날아온다. 그렇다면 몬테 알반에서 귀동냥으로 들은 정보는 다 무어란 말인가. 가이드가 설명을 다 마치고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재차 물어보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이긴 자가 제물로 바쳐진다.’

구기장(Juego de Pelota) 길이 150m의 중미 최대의 경기장이다. 마야 인의 경기는 오락이 아닌 풍요의 신에게 기원하는 종교 의식이었다.
구기장(Juego de Pelota)길이 150m의 중미 최대의 경기장이다. 마야 인의 경기는 오락이 아닌 풍요의 신에게 기원하는 종교 의식이었다.문종성

구기장 특별석 왕이나 높은 관료들이 이곳에서 경기를 관람했다.
구기장 특별석왕이나 높은 관료들이 이곳에서 경기를 관람했다.문종성

‘아니? 이겨서 죽을 거면 왜 이겨? 영광이 밥 먹여주나? 처자식 다 딸려서 죽으면 가족들은 어떻게 하지? 혹시 지면 평생 비참한 노예로 살던가 무리에서 쫓겨나는 거 아냐?’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타임머신 타고 마야문명 시절로 되돌아 가 상대방 수장이 나에게 “당신! 각오는 되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하나다. “나보다 훨씬 능력 있고, 신에 대한 믿음도 탁월하며, 왕에게 충성스러운 당신에게 어찌 감히 대적할 수 있으리요?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모든 영광을 깔끔히 넘기겠소. 난 패배자요.”

살아남는 자가 패배자, 죽는 자가 승리자?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종교로 귀결되면 모든 의문은 논란의 여지없이 종식될 수 있을 것이다. 목숨보다 귀한 그들의 믿음은 함부로 재단될 수 없는 것이기에. 여하튼 베일에 싸인 ‘마야 문명의 마지막 진실 - 경기 후 제물은 누가 되는가?’ 편의 명확한 해답에 대해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분발을 촉구한다.

전사(戰士)의 신전 신전 주변에는 전사의 부조가 새겨진 석주군으로 둘러싸여 있다. '천 개의 기둥을 가진 신전'이라고도 부른다.
전사(戰士)의 신전신전 주변에는 전사의 부조가 새겨진 석주군으로 둘러싸여 있다. '천 개의 기둥을 가진 신전'이라고도 부른다.문종성

사실 치첸이차의 매력은 피라미드도 구기장도 아니다. 나로서는 이미 테오티우아칸과 몬테 알반에서 봤던 장면을 데자뷰처럼 훑는다는 게 성에 차지 않는다. 치첸이차의 히든카드는 오히려 유적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숲 속의 여느 연못과는 그 아우라부터가 남다른 동굴 안 웅덩이 ‘세노떼(Cenote)’.

밀림의 습윤지대인 유카탄 최대 규모의 웅덩이인 이곳은 일단 그 규모에서 압도당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잘못해서 발이라도 삐끗한다면 메아리치는 함성을 끝으로 세상과 작별해야 한다.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쳐도 수십 미터의 튼튼한 밧줄이 없는 한 결코 올라올 길이 없는 공포스런 연못. 특이하게도 강이 없는 지역에 지반 함몰로 생겨난 이 웅덩이는 때문에 과거에 생명을 지켜주는 식수로 사용되어져 신성함을 불러 일으켜 왔다.

세노떼(Cenote Sagrado) 유카탄 최대의 동굴샘으로 '성스러운 샘'이라고 부른다. 비의 신인 차끄가 산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샘에는 무서운 비밀이 숨어 있다.
세노떼(Cenote Sagrado)유카탄 최대의 동굴샘으로 '성스러운 샘'이라고 부른다. 비의 신인 차끄가 산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샘에는 무서운 비밀이 숨어 있다. 문종성

그런데 한 선교사가 남긴 무서운 비밀의 기록은 이곳을 전혀 다른 이미지의 관광지로 만들어버렸다. 16세기에 마야인의 문화와 토착신앙을 경멸하면서도 선교활동을 펼치던 스페인 프란시스코 수도회 란다는 마야의 기록 문서들을 사교(邪敎) 책이라 규정하고 모두 불태워버리도록 지시했으며,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원주민들은 매를 때리거나 투옥시켰다.

그 일로 재판에 회부된 그는 마야인의 미개 문화를 근거로 들었고, 자신의 죄를 반박하기 위해 마야 상형 문자를 해독하는 연구에 골몰하기에 이른다. 급기야 마야의 각종 문헌들을 해독하고, 인디오들의 도움으로 관습, 풍습, 역법 등 거의 모든 문화를 섭렵한 뒤 주교가 되어 다시 멕시코로 돌아왔을 땐 그는 이제 마야문명의 해설자가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다.

그런 그가 남긴 세노떼에 관한 무서운 비밀이란 바로 이 연못이 제물의식을 치르던 장소였다는 사실이다. 란다가 남긴 ‘유카탄 견문기’라는 문헌에 의하면 염병이 돌거나 가뭄이 닥치는 등 불안한 징후가 보일 때마다 마야인들은 신에게 희생의 제물로서 산 사람을 연못에 던지는 풍습이 있었는데 던져진 희생물은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많은 제물의식이 그렇듯 거기에는 보석과 귀중품도 함께 투척되었다고 기록되었다.

재규어의 신전 경기장 동쪽 벽에 만들어져 있으며 벽에는 적나라한 전쟁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재규어는 마야 인에게 가장 공포의 대상이라고 한다.
재규어의 신전경기장 동쪽 벽에 만들어져 있으며 벽에는 적나라한 전쟁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재규어는 마야 인에게 가장 공포의 대상이라고 한다. 문종성

그런데 전설 같은 이 내용을 굳게 믿은 사람이 있었다. 40년 이상 유카탄 지역의 마야유적을 조사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던 미국 영사 톰슨이었다. 그는 무서운 용이 살고 있기에 연못에 들어가는 게 위험천만 하다는 원주민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각고의 노력 끝에 유골과 각종 장신구, 보석, 유물 등을 발굴하는데 성공했다. 전설이 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다만 제물의 대상이 여자였을 거란 추측이 빗나가 성인 남자나 어린이의 뼈도 나온 것은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아마도 어떤 미스테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상황 이외에도 반역자나 죄인을 제물 의식으로 바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많은 사람이 빠져 죽은 연못이 지금도 고요하게 서슬 퍼런 입을 벌리고 있는 곳. 더욱이 유적지 중 전사의 신전 위에는 인간의 심장을 올려놓은 차끄몰(Chacmool)을 통해 생인(生人)학살이 자행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연못과 제단의 살기어린 야만행위에 치첸이차의 오싹한 역사가 마음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쏨빤뜰리(Tzompantli) 산 제물의 해골을 대중에게 드러낸 장소. 마야 문명과는 다른 중앙고원 문화를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해골의 표정들이 다 제각각이다.
쏨빤뜰리(Tzompantli)산 제물의 해골을 대중에게 드러낸 장소. 마야 문명과는 다른 중앙고원 문화를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해골의 표정들이 다 제각각이다.문종성

화려한 마야 문명의 꽃을 피웠던 치첸이차의 모든 유적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메인 피라미드인 카스티요와 종교의식으로 목숨을 건 공놀이를 행했던 대형 구기장, 그리고 억지심청을 만들어 냈던 공포의 세노떼가 핵심인 것만은 분명하다.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신기한 문명과 역사, 과학과 예술, 거기에 입맛에 맞게 꾸며진 전설이 어우러지는 마야 문명의 유적들. 그런 신비한 곳이 있는 한 나는 자전거를 타고 계속 달려갈 것이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유적지든, 더 멋진 만남을 위하여!

덧붙이는 글 | 필자는 3월에 잠시 한국에 들러 순회강연 예정에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http://www.vision-trip.net 을 참고 하십시오.


덧붙이는 글 필자는 3월에 잠시 한국에 들러 순회강연 예정에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http://www.vision-trip.net 을 참고 하십시오.
#멕시코 #세계일주 #자전거여행 #피라미드 #라이딩인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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